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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6 연중 제34주간 토요일...독서,복음(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2-11-25 조회수216 추천수2 반대(0) 신고

1독서

<다시는 밤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의 빛이 되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22,1-7
주님의 천사는 수정처럼 빛나는 생명수의 강을
나 요한에게 1 보여 주었습니다.
그 강은 하느님과 어린양의 어좌에서 나와,
2 도성의 거리 한가운데를 흐르고 있었습니다.
강 이쪽저쪽에는 열두 번 열매를 맺는 생명나무가 있어서
다달이 열매를 내놓습니다.
그리고 그 나뭇잎은 민족들을 치료하는 데에 쓰입니다.

 

3 그곳에는 더 이상 하느님의 저주를 받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도성 안에는 하느님과 어린양의 어좌가 있어,
그분의 종들이 그분을 섬기며 4 그분의 얼굴을 뵐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마에는 그분의 이름이 적혀 있을 것입니다.
5 다시는 밤이 없고 등불도 햇빛도 필요 없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그들의 빛이 되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원무궁토록 다스릴 것입니다.

 

6 그 천사가 또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확실하고 참된 말씀이다.
주님, 곧 예언자들에게 영을 내려 주시는 하느님께서
머지않아 반드시 일어날 일들을 당신 종들에게 보여 주시려고
당신 천사를 보내신 것이다.
7 보라, 내가 곧 간다.
이 책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은 행복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해

1

22,1-5는 천상 예루살렘에 대한 현시를 마무리지으면서 동시에 지금까지의 묵시록 예언 부분을 마감하는 구절이다. 21장이 새 예루살렘의 외적 묘사였다면 이 단락은 그 내적 묘사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저자는 어린양과 하느님 옥좌의 현시에 주의를 기울인다. 옥좌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강은 낙원의 평화를 하느님과 인간들의 깨지지 않는 확고한 관계로 다시 회복시킬 것이다.

 

신비스런 열매를 맺는 생명의 나무가 자라는 강의 표상은 우리의 눈길을 창세 2장으로 돌리게 한다. “새로운 창조지상 낙원에 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이 부분에서 저자는 성전 동쪽 문턱에서 솟아나오는 물이야기를 전하는 에제 47,1-12를 재작업하며 따라가는 듯하다. 에제키엘이 비록 그 강(개울)생명수의 강이라고 직접 묘사하지는 않았지만 내용상 같은 의미다. “이 강이 흘러들어가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온갖 생물들이 번창하며 살 수 있다.

 

그러나 에제키엘은 이 강물이 성전에서 흘러나온다고 묘사하는 반면, 묵시록 저자는 하느님과 어린양이 성전이므로 그분의 옥좌에서 새 예루살렘이 흘러나온다고 한다. 따라서 여기 사용된 표상들은 생명이 하느님과 어린양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많은 교부들은 하느님과 어린양의 옥좌에서 흘러나오는 그 강에서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나오는 생명을 주는 성령의 활동을 상징적으로 보았다.

 

2

에제키엘은 강을 끼고 양쪽에 나무가 무성한 것이 보였다. ... 그 열매는 양식이 되고 그 잎은 약이 된다고 전한다. 그러나 묵시록 저자는 에제키엘이 열매나무 정도로그치지 않고 창세 2장 에덴 동산의 생명나무에까지 연결시킨다.

 

3

아담이 범죄한 후 인류는 생명나무는커녕 아예 에덴동산 자체에도 접근을 할 수 없었고, 오직 하느님의 저주만 무겁도록 짊어졌다. 이제 이 동산 접근금지 선고가 무효화한다. 이렇게 해서 신, 구약성서 전체의 맨 마지막 강들이 맨 처음 강들과 대조를 이룬다. , 성서 첫 책에서 잃었던 낙원이 마지막 책에서 되찾은 낙원으로 변한다.

 

4

구약성서 언어에서 하느님의 얼굴을 뵙다란 하느님 면전에서 예배를 드린다는 뜻이다.

 

출애 28,36-38에 의하면 대제관의 이마에는 야훼께 몸바친 성직자란 패를 붙였다고 한다. 묵시록 저자는 하느님의 도성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구약의 대제관처럼 이마에 하느님을 섬길 것이라고 말한다. 즉 이마에 하느님의 이름이 적혀 있다는 것은 선택된 사람들이 하느님께 완전히 속한다는 표지다. 여기서 하느님의 이름은 이미 19.123.12에서 암시한 하느님의 새로운 이름일 것이다.

 

그리스도의 내림

6,21절은 묵시록 전체를 마감하는 부분으로, 예언 부분에 나왔던 여러 가지 훈계들이 다시 한번 되풀이된다. 요한의 묵시록은 비참과 영광이 함께 어우러지며서 끝난다. 무서운 박해 속에서도 묵시록 저자가 희망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빨리 이 지상에 내려오시는 것이다. 비록 예수께서 금방 오시지는 않았지만, 당신 영을 통해 우리와 함께 계시고 바로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빨리 임하도록, 우리 마음을 준비시키고 계시다. 그래서 묵시록 저자는 하느님의 은총,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모든 사람에게 축원하는 마지막 인사로 끝을 맺는다.

 

6

주어가 분명하지는 않지만, 21.9의 천상 예루살렘을 저자에게 보여준 천사와는 다른 계시의 천사다.

 

이 구절의 표현들은 1.1의 말씀들을 상기시킨다. 저자는 자신의 예언이 하느님에게서 나온 것임을 강조하며 동시에 자신을 구약 예언자들 반열에 올려놓는다.

 

7

후반절 여섯째 행복선언은 첫째(1.3)와 같다. 문맥상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보라. 내가 곧 오겠다는 이미 2.163.11에 나왔고, 특히 이 마지막 부분에 세 번이나 거듭 나온다(7.12.20).

 

 

 

 

 

 

 

 

복음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깨어 있어라.>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34-3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리고 그날이 너희를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여라.
35 그날은 온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들이닥칠 것이다.
36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깨어 있으시오

21,34-36을 마르 13,33-37과 비교해 보면 낱말.문체.소재는 매우 상이한 반면 언제고 종말을 맞을 준비를 갖추라는 사상만은 같다. 루카가 특수사료를 옮겼다는 설이 있으나 그보다는 마르 13,33-37을 대폭 수정했다는 설이 옮겠다. 예를 들면, 루카는 주인을 기다리는 문지기 비유를 삭제했는데 그 까닭인즉 뜻이 같은, 주인을 기다리는 종들 비유를 이미 수록했기 때문이다.

 

34

루카는 향락과 생계 걱정을 여러 차례 경고한 바 있다. “그 날이 여러분에게 갑자기 닥쳐오지 않도록 하시오집주인이 갑자기 돌아와서 여러분이 잠자고 있는 것을 발견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마르 13.36)를 고친 것이다.

 

35

루카는 이사 24.17을 원용하여 35절을 꾸몇다.

 

36

어느 때나 깨어는 마르 13.33의 두 가지 낱말을 수용한 것이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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