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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 영근 신부님의 복음 묵상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2-12-04 조회수384 추천수2 반대(0) 신고

221204. 대림 제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시다.”(마태 3,11)

 
오늘은 대림 2주일입니다. 그리고 인권주일이고 사회교리주간입니다.
 
우리는 지난 <대림 1주일>에 ‘그분이 오시니, 기뻐하고 깨어 준비하고 기다리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제 한 걸음 더 다가 온 주님을 맞이할 채비를 서둘러라 하십니다. 곧 그분을 맞이하는데 합당한 자가 되라 하십니다. 동시에,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려줍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우리가 기다리는 분이 “주님의 영이 머무르는 분”(이사 1,2)으로 소개합니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오신 그분이 “할례 받은 이들의 종”(로마 15,8)이 되셨음을 말합니다.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오시는 분을 다음과 같이 증언합니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시다.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마태 3,11)
 
<첫째 증언>은 그분께서는 자신보다 “뒤에 오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여기에서 선포되고 있는 것은 사실 “뒤”가 아닌, “지금” 입니다. 시기적으로는 “뒤”지만, 시점으로는 “지금”입니다.
 
이는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려오던 그분이 ‘드디어 오신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그분이 지금 ‘막 오고 계신다.’는 긴박한 상황을 강조해 줍니다. 곧 그분께서 미래가 아닌, ‘지금’ “오신다.”는 선포입니다. 그리하여, 요한은 우리의 관심을 자기 자신이 아닌, ‘지금 오시는 분’에게로 집중시킵니다. 자신은 단지 그분의 ‘길을 닦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삶의 자세입니다. ‘주님을 주인 되게 하는 일’입입니다. 자신을 주변으로 밀치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지금 바로 여기에 우리의 주님으로 오십니다.
 
<둘째 증언>은 그분께서는 “자신보다 뒤에 오시는 분이지만 자신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자신은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다.”고 말합니다. 곧 “종” 될 자격마저 없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례자 요한의 겸손한 인격을 만납니다. 사실, 타인을 자신보다 더 능력 있는 이로 인정해준다는 것은 쉽지 않는 일입니다. 더군다나 자신보다 어리고 후배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종’의 자격마저도 없다고 말합니다. 참으로 영웅적인 겸손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신원을 정확히 알고 깨달은 데서 나오는 겸손입니다.
 
그래서 <셋째 증언>에서 요한은 그분께서는 당신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분”이라는 사실을 밝힙니다. 여기에서 세례자 요한과 그분과의 근본적인 차이가 드러납니다. 곧 ‘신원의 차이’와 ‘사명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납니다. 세례자 요한은 비록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표시’로 물로 세례를 베풀었지만, 결코 죄를 용서할 수는 없었습니다.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은 하느님께만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단지 죄의 용서를 받을 수 있는 준비를 시켰을 뿐입니다. 그는 성령을 불어넣을 그릇과 그 공간은 만들 수 있었지만, 그 그릇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은 오직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분”이라는 말은 그분께서 ‘용서할 수 있는 분이요, 생명을 불어넣으시는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이 오셔서 바로 이 일을 하실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사명이었다면, 예수님께서는 그 그릇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 그 사명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대림 제2주일을 맞으면서, 우리의 정체성과 사명을 되새겨 보아야 할 일입니다. 우리가 세례 때 이미 받은 “새로운 생명”과 “용서”를 선포하고 증거하고 전파해야 할 사명을 명심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늘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를 새겨들어야 할 일입니다.
 
오늘 <알렐루야 환호송>에서는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모든 사람이 하느님이 구원을 보리라.”

이는 단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준비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곧 이 세상과 이 시대가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주님의 길을 마련하라는 외침입니다.
 
이를 오늘 <화답송>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님, 이 시대에 정의와 평화가 꽃피게 하소서.”(시편 72,7 참조).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마태 3,3)

주님!
사방이 탁 트여 어디 하나 숨을 곳이 없는 곳,
발가벗겨진 광야로 불러내어 제 실상을 보게 하소서.
회개의 영을 불어 넣으시어 굽은 데를 곧게 하소서.
낮아지고 작아지고 무력해지고 가난해지는
당신의 길을 걷게 하소서.

당신을 위하여 걷고 당신과 함께 걷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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