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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림 제2주간 화요일 복음묵상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2-12-06 조회수380 추천수1 반대(0) 신고

 

 

오늘 복음 역시도 누구나 잘 아는 복음입니다. 수백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이 복음에 대해 묵상을 했겠습니까? 그렇다면 대부분 한 마리 양을 찾는 목자처럼 예수님과 하느님께서도 우리를 이렇게 사랑해 주신다고 하는 단순한 내용을 다 같이 묵상을 했을까? 아마도 특이한 관점으로 바라본 사람들도 많이 있었을 겁니다. 우리가 보지 못한 면을 본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오늘 새벽 세 시에 기상해서 묵상을 하고 묵상글을 작성하지만 사실 어제 점심 시간에 벌써 오늘 복음이 무엇인지를 보고 틈틈이 묵상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새로운 시각으로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세상에서 흔히 하는 말이 있습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얼핏보면 대단한 말 같지만 또 어찌 보면 무자비하고 가혹한 말과도 같습니다. 이건 생각의 관점의 차이에서 생기는 결과물입니다. 예전에 군 소령인가 하는 분이 불발된 수류탄을 자기 부대원의 생명을 위해 자신의 몸으로 자폭한 군인이 있었습니다. 이 군인은 군인의 입장에서 자기 한 목숨을 바쳐서 여러 귀중한 생명을 살리려고 자기가 희생해 귀중한 생명을 구한 것입니다. 이런 상황과 비슷한 상황에서는 전체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것은 거룩한 행동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과 연계해서 그럼 한번 이 부분을 생각해보죠. 만약 목자가 이런 관점을 가졌다면 어떤 판단을 했을까요? 한 마리 잃어버린 양을 찾다가 자칫 잘못하면 다른 양들도 잃어버릴 위험이 많기 때문에 그만 찾는 것을 포기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면 말입니다. 만약 그 목자가 그런 생각을 했다면 그 잃어버린 양은 단순한 실종이 아니라 생명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생생하게 이 복음을 좀 더 긴밀하게 이해를 하려면 어차피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 상황에서 이런 가정을 한번 해봤으면 합니다. 양들이 우리처럼 생각을 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가령 목자가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개념으로 생각해 잃어버린 한 마리를 찾는 것을 포기한다고 마음먹었다는 것을 아흔아흡 마리 양이 이런 상황을 알고 있다면 그 양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까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양도 있을 겁니다. 멀리 내다보는 양은 불안해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지금은 자기가 그런 입장에 놓이지 않게 됐지만 지금 안전한 위치에 있다고 해서 항상 늘 안전한 상태로만 지낼 수 있다고 보장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언제 나도 잃어버린 한 마리 양처럼 그런 처지가 될 상황이 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때의 상황도 그 양이 지금의 생각처럼 같은 생각을 할 수가 있을까요? 아닐 겁니다. 왜 그럴까요? 그런 상황이 실제 일어났을 땐 상황이 다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걸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까요? 이건 복음에서는 비유로 말씀했기 때문에 991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비율의 문제로 문제의 심각성을 판단하는 것도 아닙니다. 생명의 가치는 비율의 문제가 다 하나 하나의 생명은 다 같이 아흔아홉 마리만큼이나 한 마리도 똑같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똑같은 가치가 있기 때문에 한 마리는 더 이상 한 마리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돌아와서 이런 상황에서 그런 판단을 한 목자를 봤을 때 아흔아홉마리 양은 지금은 괜찮지만 다음에 자기가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되면 자신도 꼼짝없이 길을 잃고 자칫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불안해 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다소 조금은 위태로운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는 상황이 될 수도 있겠지만 한 마리의 잃어버린 양을 찾는 목자의 모습을 보고 그 양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될 것입니다. 자기가 그런 위험에 놓이게 되었을 때에는 그런 목자가 있어야만이 자기의 생명도 부지할 수가 있다고 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그 잃어버린 한 마리 양에만 초점을 맞추면 안 될 것입니다. 균형있게 양쪽 모두를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달리 생각한다면 한 마리도 그렇게 귀하게 생각하시고 포기하지 않으시려는 목자이신데 그렇다면 당연히 아흔아홉마리 양은 말할 것도 없다는 뜻을 가지고 계실 거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좀 더 나아가 오늘 비유에서 나오는 목자가 사람이라면 오늘 복음은 약간 이해가 되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 중에는 그냥 한 마리 찾는 걸 포기하는 사람도 개중에는 확률은 아주 희박하지만 인간이기 때문에 사람은 워낙 다양한 존재라 포기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은,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인간이 아니시기 때문에 오늘 복음을 보시면 절대 인간처럼 그런 일은 없을 거란 걸 묵상하게 됩니다. 바로 그 마음이 하느님의 마음이고 예수님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느님과 예수님의 구원 의지를 오늘 복음을 통해 묵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늘 우리가 잘 아는 복음이지만 오늘은 이런 관점에 초점을 두고 묵상해봤습니다. 결국 하느님은 한 영혼도 포기를 하지 않으시고 어떻게 해서든지 구원하시려고 하시는 그 마음을 우리가 알아라고 하는 무언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하기도 합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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