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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작년 10월에 작성한 글: 코로나도 막지 못한 형제애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2-12-06 조회수360 추천수1 반대(0) 신고

 

만약 다른 부제를 단다면 하느님의 또 다른 이름은 사랑, 이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하라이렇게 붙이고 싶다. 107일 수요일에 나는 전주에 한 자매님을 만나러 갔다. 2년 전 유섬이 도보 순례 때 인연으로 지금까지 연락하고 지내는 자매님이다. 유일하게 연락을 하는 사이이다. 나보다 열네 살 연상이다. 원래 자매님이 전주교구 순례사목 담당하시는 신부님과 또 친분 있는 다른 분들도 초대를 해서 함께 만나자고 제안을 하셨지만 이번에는 그냥 자매님만 뵙고 싶다고 했다. 그럴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 혹시 수도원에 확실히 들어가게 되면 그때 그분들과 마지막 자리를 한번 마련하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었다. 수요일 오전에 10시 미사를 참례하신다고 하셔서 같이 미사를 봉헌하고 난 후에 식사를 하기로 사전에 약속을 했었다.

 

마산에서 720분에 출발했는데 네비가 알려주는 도착 시간이 거의 10시쯤이었다. 어떻게 운전을 요령껏 잘해 미사 10분 전에 도착을 했다. 그 자매님은 나에겐 아주 귀중한 하느님의 선물과도 같은 분이다. 순례 때 누나처럼 잘 챙겨주셨고, 지금까지도 영적으로도 참 많은 힘이 되어 주신 자매님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만나면 식사며, 후식으로 찻값까지 자매님께서 다 내주셨다. 내가 계산을 하려고 해도 한사코 말리신다. 전주에서는 무조건 자매님이 하셔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시는 것이다.

 

올 사순 때 문자로 예전에 암 선고를 받은 사실을 언급하시면서 나름 신앙 체험을 이야기 해 주셨다. 그때 정말 너무나도 놀랬었다. 마음이 아파서 자세히는 여쭈어보지 못했다. 한 달 전에 통화를 잠시 하려고 했는데 나중에 전화를 끊고 통화 시간을 보니 무려 1시간이 조금 넘었다. 길어야 30분 정도 되지 않았을까 생각했었다. 사순 때 자세히 물어볼 수가 없어서 자매님의 이런 사정을 알고 있을 대전교구에 있는 아는 누나한테 전화를 해서 대충 자매님의 소식을 알아봤었다.

 

누나도 아는 범위 내에서 이야기를 해 주어서 어느 정도는 안심이 되었다. 지금까지 어머니를 위해 549일 기도를 한 것 외에 남을 위해 9일 기도를 한 건 이 자매님이 처음이었다. 이걸 보면 얼마나 나에게 힘과 용기를 주신 분인지 알 수 있다. 중간에 하다가 사정이 있어서 중단했다가 다시 처음부터 해서 9일 기도를 끝마칠 수 있었다. 사실 이번에 자매님만 만나 뵙고 오려고 한 이유는 자매님의 투병 이야기가 걱정이 돼서 사적으로 보호를 해드리는 차원에서 그랬던 것이다.

 

유섬이 순례 때 공개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베드로 씨는 전주에 오면 우리 집에 재워줄 수 있다.”고 하실 정도로 관심과 애정을 듬뿍 주신 분이고 이제 이분과 인연이 된 지 만 2년이 된다.

 

평소 한 번씩 주시는 문자를 보면 내 마음이 참 행복하다. 나는 본당에 어머니처럼 생각하며 좋아하는 분이 한 분 계시고, 그분만큼이나 좋아하는 분이다. 왜 그 자매님을 그토록 좋아할까.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나를 얼마나 잘 챙겨주시는지 모른다. 자매님의 잔잔한 정에 감동을 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전주에 갈 때마다 다른 분들 보기에 미안할 정도로 잘 해주시는 것이었다. 자기에게 잘 해주시는데 그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을 테다.

 

2년 전 우리나라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 바오로 순교자 압송로 60킬로미터를 같이 무박으로 전주교구분들과 함께 걸으면서 영적으로 유익한 많은 이야기를 했었다. 얼마 전에 통화를 하면서 이제 연세라고 하긴 좀 그렇고, 나이가 예순 셋밖에 되지 않았는데 죽음을 자주 묵상한다고 해서 정말 가슴이 많이 아팠다. 나도 나의 죽음에 대해 많이 묵상을 하고 내 영혼을 생각할 때는 모르겠지만, 막상 자매님이 그런 걸 하신다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짠했다. 그래서 이번에 만나 아랫사람이지만 작은 위로를 전해드리려고 했던 것이다. 막상 만나려고 하는 시점에 전주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해 만나는 거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해 주셨다.

 

조금 고민은 됐지만 조심을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만나기로 했다. 그만큼 신앙 안에서 나에겐 각별한 존재이시기 때문이다. 만나기 전에 대구교구 한티가는길 45.6킬로미터를 완주했었다. 나의 영혼을 위해 하루 만에 다 완주하려는 계획을 하면서 한 달 전 통화를 한 후에 지향을 변경했다. 자매님의 영·육간 건강을 위해 봉헌하기로 했었다. 이 사실을 먼저 문자로 알려드렸다. 가실성당에서 새벽 420분에 출발해서 성지에 6시쯤에 도착한 후 저녁에 숙소에서 잘 완주했다고 문자를 보내드리니 고맙다고 하는 답장을 주셨다.

 

난 사실 이 지향을 바꿀 때 조금 고민을 했던 게 사실이다. 지금이 어쩌면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이고, 내가 수도자로 살 기회가 될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에 일단 내 자신의 영혼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해, 순교자들의 삶과 넋을 기리며 하느님께 좀 더 잘 갈 수 있도록 기도를 하는 게 무엇보다 더 중요했던 것이었다. 그랬던 내가 생각을 바꾼 결정적인 이유는 수도자는 물론 자신을 위해 기도도 해야 되겠지만, 한번은 가르멜 수도원에서 신부님께서 강론을 하셨는데 아주 기억에 남는 강론이 하나 있었다. 수도자가 자신의 영혼만을 위해 기도하며 산다면 그처럼 불쌍한 수도자도 없다는 강론이었다. 난 지금 수도자의 신분이 아니다. 하지만 수도자를 희망하는 사람이라 이때 그런 걸 한번 실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변경을 했던 것이었다.

 

처음엔 이런 순수한 생각이었다. 나중에는 이런 생각도 했었다. 만약 이런 사정을 하느님께서 보시면 나 자신이 남을 위해 기도를 봉헌했어도, 덤으로 그 지향이 선하면 원래 내가 처음 생각한 지향도 고려해 주실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인간적인 생각이지만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는 그때 문자로 자매님을 위해 지향을 변경했다고 해도 그렇게 고마워하실 필요가 없다고 했다. 운전을 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매님이 혹시 나를 위해 생미사를 봉헌하실 것 같은 느낌이 많이 들었다. 왜냐하면 며칠 있으면 수도원에 잠시 피정하러 가기도 하고 또 자매님 영혼을 위해 한티가는길을 걸으면서 하느님께 봉헌한 거에 대해 고마움을 전하시려고 그렇게 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자매님 본당에 도착한 후에 성전 안으로 들어가 십자성호를 긋고 자리를 앉는데, 거의 11개월 만에 뵙지만 한눈에 뒷모습을 보면서 어떤 분이 자매님인지 금방 알아볼 수가 있었다. 미사를 봉헌하면서 신부님께서 미사 지향을 언급하실 때 나를 위한 생미사가 봉헌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었고, 처음으로 타교구에서 누군가가 나를 위해 미사 봉헌해 주시는 감사함에 울컥했었다.

 

한편으로는 부담을 안겨드리는 것은 아닌지 하는 그런 마음도 들었던 게 사실이었다. 이번에 감사함으로 받고 이 감사함을 다른 방식으로 보답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부담을 내려놓기로 했었다.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다. 자매님의 인품을 보면 분명 그렇게 하실 분이었다. 미사 후에 식사 시간이 너무 이르기 때문에 식당 주차장에 주차를 한 후에, 코로나 때문에 그냥 커피숍에 가지 않고 주변에 호수가 있고 산책로가 잘 정비가 돼 있어서 호수를 따라 한 시간 정도 산책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때 조심스럽게 그동안 걱정했던 자매님의 암 투병 사실에 대해 여쭤봤던 것이었다.

 

사실 나는 어떤 암인지 대전에 사는 한 자매님을 통해 알고 있었고, 지금은 거의 완치 수준의 상태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희망했는데 사실 세 번의 암이 발병된 사실을 듣고 정말 가슴이 아팠다. 그런 이야기를 하시면서도 조금의 두려움도 없었고, 신앙적으로 담담히 받아들이는 모습에 숙연함까지 느낄 수가 있었다. 전혀 환자라는 게 의식이 되지 않았었다. 그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나름 중요한 교훈을 많이 얻었고, 역시 내가 처음에 유섬이 도보순례를 하면서 자매님의 영혼이 아름답다고 느꼈는데 그때 내가 느낀 그 느낌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점심 식사를 한 후에 차로 얼마 떨어져 있지 않는 거리이고, 자매님이 평소 자주 미사를 하러 초남이 성지에 가시는지라 초남이 성지에 가서 새롭게 바뀐 성지의 모습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낸 후 헤어졌다. 거의 다섯 시간을 자매님과 함께 지낸 시간이었지만 나에겐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그날 친구들과 원래는 약속을 하지 않았더라면 서울에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 가야 되는데, 그것도 친구의 양해를 구하고 나를 만나주신 거에 대해선 참으로 감사한 마음을 잊을 수가 없었다.

 

전주를 다녀온 후에 한글날 본당에 미사를 봉헌하러 갔다. 나중에 전주에 가게 되면, 그때 나를 위해 미사를 봉헌해 주신 감사함 때문에 자매님 본당에서 자매님을 위해 미사를 봉헌해드리려고 했지만, 그냥 자매님 본당에 전화 통화로 사무장님께 간곡히 부탁해 미사를 봉헌해드렸다. 오후에 문자가 왔었다. 확실한 것은 모르지만 미사 참례를 하시지 않았던 모양이신 것 같다. 신부님께서 수요일 미사 후에 성당 밖에서 인사를 나누고 마산에서 온 걸 아셨기에 미사를 봉헌한 사람이 아마 나라는 사실을 자매님께 전해주시면서 전화로 건강을 기원한다고 하셨던 모양이다.

 

그런 소식을 전해 듣고 고맙다는 뜻을 전하셨던 것이었다. 나도 답장을 재미있게 보내드렸다. “기브앤 테이크 같은 느낌은 조금은 계산적인 것 같아서 싫고 그냥 순수하게 하고 싶어서 했다.”고 했고, 잘 지내다 또 보자고 하는 문자에 라고 대답을 하며 살짝 누나라는 애칭을 사용하며 사랑하니깐 했다고 했다. “여기서, 사랑은 신앙 안에서 하는 형제애입니다. 그러니 사랑이라는 말에 놀라지 마시구요.ㅎㅎ라고 하니 네버! 고마워요.”라고 답장을 보내주셨다. 네버라는 말에 빵 터졌다. “절대 놀라지 않을 것이다.”라는 뜻일 것이다. 그동안 만나서 아니면 문자나, 전화로 통화를 하면서 나의 성격과 내가 또 어떤 사람인지 특히 유섬이 도보순례 때 1011일을 같이 하면서 지켜보셨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말을 해도 그 말의 의미가 어떤 의미였는지 충분히 아신다는 그런 뜻일 것이다.

 

자매님을 만나기 위해 왕복 450킬로미터를 운전하며 만나 몸은 약간 피곤한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참 행복했다. 누구에게나 아픈 가정사가 있겠지만, 개신교 때부터 하느님을 믿지 않는 가정에서 항상 믿음을 유지하게끔 희망이 되고 힘이 되는 성경 내용이 하나 있다. 이집트 총리 자리까지 올랐던 요셉의 일생을 보면서 희망을 가졌던 것이었다.

 

지금은 가족들이 나의 신앙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신앙 안에서 막내 동생이 하느님을 믿고 신앙을 가진 게 아니 이 지상에서 알면 좋겠지만 언젠가 분명 하늘나라에서라도 알게 되면, 그땐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것처럼 그런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그나마 지금까지 신앙에 여러 차례 고비가 있었지만 잘 이기고 왔던 것이었다. 인간적으로 보면 조금은 가슴 아프지만, 신앙적으로는 전주에 사시는 자매님과 또 본당에 내 마음속 깊은 곳에 항상 어머니처럼 생각하는 분이 계신다는 게 아주 큰 힘이 되고, 그분들의 잔잔한 사랑에 마치 하느님과 성모님의 사랑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어서 참으로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신앙 안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신앙인이라면 모름지기 모든 것을 신앙과 믿음의 눈으로 바라봐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또한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비록 그 자매님과 육적으로는 피 한 방울 섞이지는 않았지만 정말 실제로 피를 나눈 형제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하느님께서 이 자매님과 나와의 이런 형제애를 보시면 참 흐뭇해하실 것 같다. 만약 모든 사람이 이런 모습으로 서로서로 사랑한다면 그곳이 천국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율법을 하나로 축약해 표현한다면 사랑이라고 했다. 사랑을 완성하면 그가 바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사람이 될 것이다. 사랑은 혼자만의 사랑으로는 서로 사랑할 수가 없고, 그런 사랑은 불완전한 사랑일 테다. 서로가 이처럼 애틋하게 신앙 안에서 진정한 형제애로 배려하고 이해할 때 아름다운 형제애가 싹튼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런 사랑을 이 세상에서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이미 하늘나라를 이 땅에서 체험한 사람일 것입니다.

 

마산과 전주가 가까운 거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몸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영적으로 신앙 안에서 느끼는 형제애는 마치 지근거리에 있는 것 같다. 이런 형제애를 통해서 또 한 번 느끼는 것이지만 하느님의 또 다른 이름은 사랑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실감하며 이런 아름다운 사랑이 언제나 변함없이 누구에게나 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 사람은 분명 하느님을 만나 지복직관의 은총을 누리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요즘 팬데믹으로 아무리 살기 힘들고 팍팍하다고 할지라도 조금만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살피면서 힘든 형제나 자매가 있다면, 서로 따뜻한 형제애로 이해하고 감싸 안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오히려 거창하고 어려운 계명을 지키려고 힘쓰는 사람보다, 이런 사람이 순수하게 하느님의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하는 게 어쩌면 더 하늘나라 문 앞에 가까이 갈 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하느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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