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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2.12.10)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2-12-10 조회수561 추천수4 반대(0) 신고

 

2022년 12월 10일

대림 제2주간 토요일

복음 마태 17,10-13

산에서 내려올 때에

10 제자들이 예수님께,

“율법 학자들은 어찌하여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하고 물었다.

11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과연 엘리야가 와서

모든 것을 바로잡을 것이다.

12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그처럼 사람의 아들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13 그제야 제자들은 그것이 세례자

요한을 두고 하신 말씀인 줄을 깨달았다. 


멕시코 초현실주의 화가인 프리다 칼로의

일대기를 다룬 ‘프리다’(2002)의 주인공은

셀마 헤이엑(프라 칼로 역)입니다.

그녀는 유니세프 대사로 활동하는 등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이면서 사회 안에서

자기 역할에 늘 충실했습니다.

그런 그녀가 관계에 대한 말을

남긴 적이 있습니다.

“당신이 상처받지 않는다면 그들에겐

아무런 힘이 없는 겁니다.

누군가 당신에게 다른 언어로 욕을 한다면

당신은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할 거예요.

당신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런 말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바로 ‘당신’이기 때문이에요.”

알아듣지 못하는 욕은 내게 의미로

다가오지 못합니다. 이처럼 내가

상처받지 않으려면 상대의 말과 행동이

나 자신에게 의미로 다가오지 않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확대해석해서 더 큰 의미로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상처의 크기는 점점 커지고 이로 인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가 되고 맙니다.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 할까요?

특히 관계 안에서 상처를 주는 의미가 아닌,

힘을 얻을 수 있는 의미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욕을 많이 먹는 사람이

있었을까 싶습니다. 절대로 욕 먹을 일이

아닌데도, 자기들과 다르다는 이유를

예수님을 향해 “틀렸다”라며 화를 내는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의 말과 행동은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예전에 댓글 테러를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분명 사실과 다름에도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다가오는데

정말로 끔찍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 공간에

정이란 것이 뚝 떨어졌습니다.

그만큼 상처를 많이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에 대해

정이 뚝 떨어지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럼에도

열정적으로 인간의 구원을 위해

자기 생명까지도 바치십니다.

하느님이니까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완벽한 인간이시기도 하기에

과연 가능할까 싶은 것입니다.

그들의 말과 행동에 의미를

두지 않으신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상처받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세례자 요한에게 했던 율법학자들의

모습을 꾸짖으시기까지 하십니다.

주님 뜻과 반대되는 모습에 의미를

두지 말아야 합니다. 의미를 두고

힘들어하면 할수록 그 잘못된 말과

행동에 힘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철저히 주님께 향하는 사람만이

주님의 의미 안에서 주님과 함께

기뻐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패배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길은

실패의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다.

(찰스 케터린)

(엘리야가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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