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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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메히틸다 수녀님을 본당에서 뵈면서 느낀 점입니다.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2-12-11 조회수432 추천수4 반대(0) 신고

 

지난 주일에 교중 미사 후에 대림시기도 있고 해서 유튜브에서도 많이 알려진 웃음치료사로 활동하고 계신 메히틸다 수녀님을 저희 본당에서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본당 지휘자님께서 초청하셔서 특강을 들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여러 차례 수녀님을 유튜브에서 뵈었기 때문에 낯설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본당에서 수녀님의 강의와 특강, 아코디언 연주를 제가 동영상 촬영하면서 수녀님에 대해 느낀 점이 있었습니다. 요즘 아무리 영상이 발달돼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에 대한 이미지는 실제 화면으로 보는 느낌과 육안으로 보는 느낌에는 차이가 나는 게 사실입니다. 저는 이런 부분에 약간 예민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수녀님 특강을 촬영하면서 특히나 좀 더 가까이에서 수녀님의 모습을 뵐 수 있었습니다. 촬영을 하고 난 후귀가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수녀님에 대한 인상을 가지고 묵상해봤습니다. 유튜브에서 보는 느낌과는 확연하게 달랐습니다. 어떻게 설명을 드려야 하고 표현을 해야 할지 무척 어렵긴하지만 제가 느낀 느낌 그대로 가감없이 전하고 싶습니다. 지난 화요일에는 레지오 훈화 때 본당 수녀님이 메히틸다 수녀님을 화제로 해서 훈화를 해 주셨습니다. 저도 수녀님의 훈화에 전적으로 공감을 했습니다. 

 

본당 수녀님께서 말씀하시길 올해 여든 두 살이시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여든 하나로 알고 있었습니다. 아무튼 여든이 넘으신 연세이십니다. 얼굴 표정이 참 맑으셨습니다. 표정만으로 봐서는 여든을 넘긴 분의 얼굴이라고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수녀님께서 성형을 하셨을 리는 만무한 일입니다. 세상에는 사람들이 타인의 외모를 보고 외모를 평가할 때 우리 보통 사람들이 가지는 시각으로 사람의 외모를 평가합니다. 보통 미의 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도 중요하지만 저는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생각하는 게 있습니다. 사람의 얼굴에서 묻어나는 영혼의 순수성이 가져다주는 미가 저는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우리가 신앙인이라서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신앙을 떠나서도 세상에서도 흔히 하는 말로 얼굴보다 마음이 더 고와야지 하는 말을 하는 경우처럼 말입니다. 영혼이라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영혼도 마음에 좌우되는 것과 같지 않을까요. 어떻게 보면 영혼이라는 것은 마음의 옷과도 같은 것이 될 것입니다.

 

저는 수녀님의 얼굴에서 할머니 수녀님이라는 이미지보다도 아이와 같은 동심의 이미지가 묻어나는 얼굴이라는 게 느껴졌습니다. 아무리 요즘 성형수술이 발달돼 있다고 해도 그런 이미지는 절대 인공적인 수술로도 만들어내지 못할 것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면 인간이 다른 건 몰라도 영혼을 성형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이렇게도 표현할 수가 있습니다. 자신의 얼굴의 미추를 말하는 게 아니고 영혼이 맑은 얼굴을 가지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자신 스스로가 성형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자신의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영혼의 숨결은 지금까지 자신이 늘 가지고 품어왔던 마음의 응결체이고 그게 고스란히 얼굴에 묻어져 나오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평소 어떤 마음을 품고 사느냐에 따라 자신의 얼굴에서 어떤 영혼이 그려질지는 당연한 이야기일 겁니다. 

 

저는 그날 생각했습니다. 메히틸다 수녀님처럼 그런 해맑은 얼굴을 할 수 있다는 건 하루이틀 그리고 몇 년 수양을 해서 되는 게 아닐 것 같았습니다. 끊임없이 자신의 마음에 하느님의 마음을 품으려고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절대 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누구는 그렇게 말할 겁니다. 수도자로 살면 늘 기도하고 사시니 그렇게 되지 않겠느냐고 말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만약 그 말이 맞다면 모든 수도자의 얼굴이 그 수녀님처럼 해맑으면 그 말이 맞는 말이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은 그 수녀님이 수녀님이라서 또는 수도자라서 그런 모습을 띄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분 나름대로 아름다운 마음과 천사의 마음으로 살려고 무진장 노력을 하셨기에 오늘의 그런 모습을 가질 수 있었을 겁니다. 

 

우리는 수도복을 입지 않았다고 해서 수도자가 아닌 게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평신도이지만, 또 수도복을 입지는 않았지만 수도자와 같은 마음으로 살면 우리도 수도자처럼 수도자도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어떤 수도원 신부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수도원에서 살아도 속인처럼 사는 사람이 있고, 속세에 살아도 영혼은 수도자처럼 사는 사람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지금 자신이 어디에 사느냐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어떤 마음으로 하느님을 바라보고 또 자신의 마음에 어떤 마음을 품고 사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수도자인 신분으로 살기 때문에 메히틸다 수녀님처럼 맑은 영혼을 지닐 수 있는 게 아니라, 진정 수도자의 삶을 몸소 살아내시고 그런 과정에서 하느님의 마음을 품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하시기 때문에 수녀님 얼굴에서 투명하고 맑은 영혼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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