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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대림 제3주간 금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2-12-15 조회수909 추천수5 반대(0)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읽고 있습니다. 20세기에 있었던 사건들 중에 인류의 지성과 역사에 큰 영향을 주었던 사건들을 선별하여 그 사실을 알려주고, 저자의 해석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 드레퓌스사건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드레퓌스는 현역 육군 대위였습니다. 그는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불행이 찾아왔습니다. 조국을 배반하고 군사기밀을 독일에 팔아넘겼다는 혐의를 받았습니다. 본인은 무죄를 주장하였지만 군사법정은 드레퓌스에게 유죄를 선고하였고, 악마의 섬이라는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군국주의자, 극단적인 애국주의자, 그에 동조하는 언론, 민족주의자들은 드레퓌스의 유죄를 주장하였습니다. 증거는 조작되었고,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이권과 자신들의 권위를 지키는 것이라면 한 사람의 젊은 장교는 희생되어도 좋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진실이 드러나는 것보다 자신들의 잘못이 드러나는 것을 감추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드레퓌스에게는 그의 무죄를 증언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남편의 무죄를 믿는 사랑스러운 아내가 있었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서 재심을 청구하였습니다. 드레퓌스가 무고하게 감옥에 갇혔다는 것을 알았던 군인이 있었습니다. 그 군인은 상부에 드레퓌스의 무죄를 보고하였지만 국방부는 사건은 은폐하려고 하였습니다. 드레퓌스의 무죄를 보고했던 군인은 오히려 직책을 상실하고 아프리카로 전출되었습니다.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하는 깨어있는 시민들이 있었습니다. 공정과 정의를 실천해야 한다는 사명을 지녔던 언론사가 있었습니다. 양심을 따라서 진실을 지키려는 지성인이 있었습니다. 당대의 지성인이었던 에밀졸라나는 고발한다.’라는 글을 통해서 드레퓌스 사건의 부당함을 알렸습니다. 드레퓌스 사건은 거짓과 진실의 싸움이 되었습니다. 권위주의와 자유주의의 싸움이 되었습니다. 군국주의와 민주주의의 싸움이 되었습니다. 프랑스는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으로 드레퓌스의 무죄를 선언하였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의 선봉에 서게 되었습니다. 드레퓌스는 무죄를 선고받았고, 군인으로 복권되었습니다.

 

드레퓌스 사건은 프랑스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현대사에도 또 다른 드레퓌스 사건이 있었습니다.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박종철 사건이 있었습니다. 정권을 유지하려는 정부가 있었습니다. 그 정권의 입맛에 맞도록 기사를 쓰는 언론이 있었습니다. 정권의 앞잡이가 되어서 무고한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었던 사법부가 있었습니다.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고문과 살인까지도 서슴지 않았던 조직이 있었습니다. 나와 나의 가정과 상관이 없다면 불의와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일에 관여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진실과 정의를 밝히려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진실한 보도를 하려는 그래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려는 언론도 있었습니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다는 신념을 가졌던 깨어있는 시민들이 있었습니다. 거리를 가득 메웠던 시민들이 있었고, 그들을 응원했던 넥타이 부대도 있었습니다. 이들의 증언에 동참하는 버스기사와 택시기사들의 경적응원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제들이 있었습니다. 명동성당에서 고인을 기억하는 미사가 있었고, 진실을 증언하는 사제가 있었습니다. 자유와 민주를 위한 들불이 타올랐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직선제 민주주의를 되찾았습니다. 박종철의 억울한 죽음도 밝혀졌습니다. 거짓과 불의에 맞섰던 깨어있는 시민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진실을 알리려는 언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양심과 정의를 지키려는 지성인과 종교인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너희는 공정을 지키고 정의를 실천하여라. 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나의 의로움이 곧 드러나리라. 주님을 섬기고 주님의 이름을 사랑하며 주님의 종이 되려고 주님을 따르는 이방인들,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않고 나의 계약을 준수하는 모든 이들,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리리라.” 우리가 공정을 지키고 정의를 실천하여 주님의 뜻을 드러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은 하느님의 나라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세상은 기도하는 집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오늘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이다.” 맞습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이 하느님의 뜻을 드러낸다면, 하느님의 의로움을 드러낸다면 임마누엘주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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