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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87) 노랑차 뿡뿡이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22-12-15 조회수413 추천수0 반대(0) 신고

(487)  노랑차 뿡뿡이

 

제목: 노랑차 뿡뿡이

                                    성명: 이순의

 

 

 

겨울잠에서 아직 잠꼬대 중인 은행나무 가지에 새끼손톱 크기의 연두빛깔 아기손이 조막손을 쥐고 있다. 저 조막손이 손을 펴고 엄지손톱만큼 자라서 살랑살랑 흔들 때면 출발해야한다.

화사한 봄빛보다 내가 더 먼저 갈 길을 재촉해야 한다. 학교 운동장의 달리기 경주가 아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과의 시합이다.

나는 농부랑 사는 노랑차 뿡뿡이!

 

벌써 남풍 따라 서울까지 도착한 봄빛보다, 순풍에 돛을 단 봄께서 고랭지에 도착하기 전에 농부가 먼저 대지(大地)에서 새봄을 맞이할 수 있도록 태워다 드려야 한다. 농부는 할 일이 많다. 객토도 해야 하고, 퇴비도 뿌려야하고, 쟁기질이랑 밭가 정리도 해야 하고, 파종하기 전에 준비해야할 일들이 태산처럼 많다.

따스한 아지랑이 모락모락 피우면 땅의 얼음은 녹고, 냉기는 물러가고, 훈훈한 온기가 들녘에 펼쳐지면, 고랭지 들판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게 된다. 당귀도 심고, 감자도 심고, 대파며 무 배추 할 것 없이 온갖 농작물의 희망을 심고 가꾸려면 농심은 분심(分心)할 겨를이 없다. 그러니 나의 농부에게 분심(分心)이 들지 않도록 빨리 빨리 차바퀴를 굴려야 한다.

 

어쩌다가 이런 고생길에 들어 고단하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농부는 모른다. 그저 하늘땅과 동업한다는 말만 연거푸 쏟아낼 뿐, 농부가 아는 것은 별로 없어 보인다.

노랑차 뿡뿡이 나는 농부가 가자는 대로 가고, 하자는 대로 하고, 싣자는 대로 싣고, 내리자는 데서 내려주고, 멈추자는 데서 멈추면 되는 농부의 수레일 뿐이다. 농부도 모르는 농부의 길을 수레인 내가 어찌 가늠이나 할 것인가?

“뿡뿡아 가자. 출발!”

 

다행이다. 영동고속도로 중간쯤인 횡성고개에 올라서니 아직 수목은 잠을 자고, 산봉우리 꼭지 점 아래로는 하얀 눈으로 이불을 덮고 있으며, 계곡 계곡에서는 물을 가두어 흐르지 못하게 얼음 장벽으로 진을 치고 있다. 산꼭대기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창밖 겨울 풍경에 농부도 안심을 한다.

 

지난겨울! 25톤 덤프차의 육중한 바퀴가 보드란 흙을 주저앉히지 못할 만큼 땅이 꽁꽁 얼었을 때, 받아놓은 퇴비는 겨울 세찬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곰삭아 하얀 곰팡이 꽃으로 농부를 맞는다. 농부의 손은 주저 없이 그 곰팡이 핀 퇴비 한 덩어리를 쥐고, 부스스 으깨지는 촉감에 영양가 넘치는 미소를 짓는다.

트랙터와 굴착기는 짝을 이루고, 연신 퍼 먹여 배 채워 주는 굴착기의 손질에도 트랙터의 똥구멍은 똥 덩어리들을 사정없이 싸질러댄다. 밭은 온통 퇴비 밭이 되고, 살포된 퇴비는 미끄덩 미끄덩 소화효소를 뿜어댄다. 퇴비는 그렇게 먹거리가 된다.

“뿡뿡아, 고소허제. 겨울 내내 잘 곰삭아서 냄새가 구수허제?!”

농부의 감각은 다르다. 아니다. 달라야하는 것 같다.

손끝의 촉감은 보드랍고, 코끝의 냄새는 구수하고, 눈앞의 시선은 배부르며, 두 다리와 몸뗑이는 늘 바쁘다.

 

“뿡뿡아 가자.”

“뿡뿡아 가자.”

수백 번, 수천 번의 “가자.” 소리에 차가운 숨을 담다보니 느림보 봄께서 드디어 산골에 당도하였다. 고랭지의 들녘에 사람들이 분주하고 손놀림은 바쁘다. 도로에는 과학 영농의 온갖 장비들이 밭 자리를 찾아 이동하느라고 육중한 활보를 한다. 그리고 곧 여름이라는 선수가 따라붙는다. 혈기가 왕성하여 주체하기도 어렵고, 그 힘을 가늠하기도 어려운, 씨름을 하러 뛰어 온다. 겨울이 긴 고랭지의 여름살이는 치열하다 못해 상업적이기 까지 하여 결코 목가적일 수가 없다.

길고 긴 장마 비!

그리고 삼일 동안의 흐림과 다시 일주일 동안의 폭우!

이어서 맑음이 아니라 37도가 넘는 찜통더위와 열대야까지!

 

곡소리가 난다.

뿌리 작물은 뿌리작물 대로 영양분과 물이 풍부한 환경에서 일하기를 거부했다. 하늘의 해를 보고 목이 타야 물과 양분을 빨아들이려는 노동을 할 텐데 가만히 있어도 물 있고 배부르니 물렁한 약골이 되고, 잎 작물은 잎 작물대로 하늘의 해를 봐야 광합성을 하고 단단해질 텐데 초록 잎은 초록을 상실하여 물먹은 종잇장 같고, 밭고랑은 밭고랑대로 비 멈춘 날 없으니 물살에 흙이 깎여 작물 심어진 두둑을 잘라 먹고, 견디다 견디다 못 견디어 넘어진 작물은 썩는 냄새로 부고(訃告)를 대신한다.

 

그토록 기다리던 햇빛이 내리쬔들 무엇 하랴!

약골에, 종잇장에, 부고(訃告)까지 날린 작물들이 뜨거운 해를 이겨낼 기력이 있을 리가 천부당만부당하지를 않는가! 농부는 속이 문드러져 내려앉고, 작물들은 하루 이틀 만에 이글대는 태양빛과 더위에 타고 데서 몸져눕다 못해 축 늘어져 회복하여 일어날 기력을 상실했다. 농부의 좌절은 한계를 넘고, 걱정과 근심은 기약할 수 없는 절망으로 이끈다.

“뿡뿡아, 오대천 물이 넘실대는데......”

뿡뿡아, 우리 같이 높은 계곡에 올라가 저렇게 넘실대는 물속으로 풍덩 하고 한 번만 뛰어 내려 볼까?”

고생은 더 큰 고통을 담고, 슬픔은 더 큰 아픔을 낳고, 시련은 더 큰 기류를 타고, 엎친 데는 덮치게 되어 있는 것 같다.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서민물가를 잡아야 한다고 연일 농산물 값을 운운하고 있다. 배추가 한포기에 얼마고, 무가 한 개에 얼마고, 마치 채소 값 상승으로 농부들이 떼돈을 벌어 떼거지로 부자가 되는 것 같은! 부자 된 농부들이 서민 백성들을 마치 굶겨 죽이기라도 할 것처럼 착각을 홍보하고 있다. 심지어 같은 농토를 일구어 함께 자연재해를 겪고 있는 농부인 사람들조차 나는 뭐를 심었더니 다 버렸는데 당신은 뭐를 심어서 돈을 긁었지요? 라는 식의 불목(不睦)은 서로가 서로의 속을 후비는 경계심만 키울 뿐이었다.

“이보세요. 우리 집 대문 앞에 판사랑 의사랑 명함에 사자 붙은 총각들이 내 딸이랑 혼인하고 싶어서 줄을 섰는데, 혼기 찬 내 자식이 비 맞고 해 떠서 병이 들어 누웠으니 잘난 총각들이 다 무슨 소용이단 말이오? 나는 공들여 잘 키운다고 키운 내 새끼를 잃게 되었소.”

오죽한 농부의 너스레인가?!

 

누군가 사람이 농부의 농토에 이런 해코지를 했다면 입에 게거품을 물고 목숨까지 걸며 쌈박 질을 서슴지 않았을 것이나, 하늘과 자연이 주는 시련 앞에서 농부는 묵묵히 순응하여 참고 견디어 살아내고 있다.

그런데 열 받은 아스팔트의 폭염이 턱까지 차올라 흥건한 땀으로 젖어 지쳐버린 한낮에, 웬 경찰차까지 출동하여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

 

바쁜 농부들의 트랙터와 장비차량들마저 난데없는 교통체증을 만나 길을 가지 못한다. 도로가의 밭에는 인산인해를 이루고, 낯선 부자들의 차들이 알만 한 각각의 상표를 자랑하며 트렁크 뚜껑을 열거나 차문을 열고, 보란 듯이 농촌의 도로를 점령하고 있다. 출하하지 못하고 서러운 밭 자리에서 농부의 피눈물에 잠기거나 타져버린 농작물을 명품의 차를 타고 오신 도시인들은 낭만에 초 처먹는 공짜서리를 하고 있다. 상품성이 떨어진 농산물을 돈을 주고 사려하지는 않으면서, 못난이 공짜 서리는 서슴없이, 동정심도 없이, 줍고 줍고 싣고 싣고 더 많이 줍고 싣기를 반복하여 경쟁하고 있다.

“뿡뿡아, 비싼 차를 타지를 말던가? 거지처럼 주서 먹지를 말던가? 주인 잘못 만나 고생 허는 우리 뿡뿡이랑 같이 저 명품 차들이랑 고급 공짜손님들을 구경 허는 경험도 재미있구먼! 우리는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도 먹을거리 주서 먹는 팔자는 아니니까 이것도 다 농부에게 주어진 특혜인거지. 뿡뿡아, 죽지만 말고 살자! 죽지만 말고 오래오래 같이 살자!”

 

농부는 또 그렇게 체념하고 수긍하며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여름을 이겨 내고 있었다. 하늘은 농부를 떼로 부자를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고 한다. 농산물 값이 아무리 금값이라고 떠들어도 단 한 번도 금값이 된 적도 없다고 한다. 더구나 그 비싸다는 시기가 오래 또는 지속된 적도 없는 반짝의 잠깐이다 보니, 그 이유는 농부에게 주어진 숙명이 백성을 먹여 사람을 살려야 하기 때문이란다.

썩을 것은 썩고, 녹을 것도 다 녹고, 타버릴 것들은 타져 없어도 그렇다고 해서 가을 들판이 텅 빈 것은 결코 아니었다. 농부의 삶이 백성을 먹여 사람을 살리는 운명이라서인지?! 가을 들판에는 여름의 평지풍파(平地風波) 속에서도 농부가 공들여 놓은 결실들이 언제나 많다. 감자도 있고 당귀도 있고 옥수수랑 가지랑 호박이랑 들깨며 콩도 있고, 이것저것 거두어 들여 먹이고 먹고 살아야 할 농부의 손길을 기다리는 일거리들은 늘 존재한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봄 초록은 산 아래서 산위를 향해 여름을 달고 온다지만, 가을은 찬 서리와 함께 산 위에서 내려와 산 아래로 곤두박질친다.

산봉우리의 단풍 꽃이 화려해지고, 조막손 은행잎은 황금 손을 흔들고, 관광버스의 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산을 오르면, 그 황혼의 고움이 산 아래까지 내려오기 전에 농부는 배부른 겨울을 준비해야 한다. 하늘과 땅이 허락하고 자연이 남겨준 만큼의 남은 풍요를 서둘러 서둘러 수확해야한다. 젊은 방황과 소용돌이의 여름은 뒤돌아볼 겨를이 없다. 농부는 수난의 여름을 열심히 살았고 최선을 다 했다.

따가운 가을 햇살에 익고 말라서 투명한 홍색 고운 고추도 제법 넉넉하고, 토닥토닥 막대질로 털어 갈무리한 들깨는 더 넉넉하여 기름도 짜고 가루도 내서 팔아도 될 것 같고, 늙은 호박은 겨울철 몸보신이 될 것 이며, 검은 콩 서리태는 소박한 결실로 내년을 기약하는 종자와 겨울 양식으로 가름하여 저장한다. 그리고 농부라는 운명에게 허락된 만큼의 만족한 겨울을 맞이할 것이다.

 

세월은 반복하여 흐르고, 농부의 수고하는 노고는 한결같아도, 노랑차 뿡뿡이 나는 서울 강릉 간 영동 고속도로를 달려 더 이상 하산하지 않아도 된다. 긴장하며 분주하게 산 윗동네와 산 아래동네를 오르락내리락 하지 않아서 좋기도 하다. 하얀 눈으로 덮은 꽁꽁 얼은 고랭지의 겨울 밭 자리에 나다니며 객토하는 일을 감독하기도하고, 퇴비를 받기도 하고... 곱고 포근한 설경(雪景)이라는 이불을 덮고 겨울잠을 자며 새로운 봄맞이를 준비할 때까지 쉬기도 한다.

“뿡뿡아, 우리는 주소가 산골이야. 뿡뿡이는 산골 사는 차고요. 나는 산골 농민이고요.”

농부는 그토록 고난과 애환을 이겨 살아낸 고랭지에서 노력하고 극복하며 성실했던 만큼의 터를 잡았다. 이제는 삶의 끝자락까지 머물러 농부의 생으로 장식할 준비를 하고 있다,

농부가 흐른 땀의 결실은 한 겨울동안에도 백성의 삼시 세끼를 채우고 있다. 

나는 고랭지 농부를 따라 사는 노랑차 뿡뿡이!

- 끝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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