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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8 대림 제4주일...독서,복음(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2-12-17 조회수297 추천수0 반대(0) 신고

오늘은 대림 제4주일입니다. 대림초 네 개의 촛불이 모두 밝혀졌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오실 때가 찬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 드러나는 요셉처럼 주님께 순명하고자 하는 믿음이 없다면, 그분께서 오신다고 하여도 우리에게 큰 기쁨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성탄을 준비하면서, 우리의 말과 행동의 기준을 인간의 상식보다 하느님의 뜻에 두기로 다짐해야 하겠습니다.

 

 

 

 

 

 

 

 

1독서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할 것입니다.>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7,10-14
그 무렵 10 주님께서 아하즈에게 이르셨다.
11 “너는 주 너의 하느님께 너를 위하여 표징을 청하여라.
저 저승 깊은 곳에 있는 것이든,
저 위 높은 곳에 있는 것이든 아무것이나 청하여라.”
12 아하즈가 대답하였다.
저는 청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시험하지 않으렵니다.”

 

13 그러자 이사야가 말하였다.
다윗 왕실은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여
나의 하느님까지 성가시게 하려 합니까?
14 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할 것입니다.

 

 

 

 

 

 

 

 

2독서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후손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시작입니다. 1,1-7
1 그리스도 예수님의 종으로서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
하느님의 복음을 위하여 선택을 받은 바오로가 이 편지를 씁니다.
2 이 복음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미리 성경에 약속해 놓으신 것으로,
3 당신 아드님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분께서는 육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셨고,
4 거룩한 영으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시어,
힘을 지니신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확인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5 우리는 바로 그분을 통하여 사도직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이는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들에게 믿음의 순종을 일깨우려는 것입니다.
6 여러분도 그들 가운데에서 부르심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7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이들로서
하느님께 사랑받는 로마의 모든 신자에게 인사합니다.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해

인사

고대 그리스인들의 편지는 발신인. 수신인 이름과 축복인사로 시작되는 것이 관례였다. 바오로는 이러한 편지양식에 따라 로마서를 발신인- 수신인-축복인사로 시작한다. 1절은 7절에 계속되고, 관계절로 서술된 2-6절은 한 문장으로서 발신인 바오로의 복음내용을 소개하면서 자기 사도직이 하느님께 기원한다고 한다. 여섯 절에 걸쳐 자기를 로마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소개한 것은 그가 이 공동체를 창립하지 않았고 개인적 친분이 없기 때문이다.

 

 

1

이라는 말은 구약성서에서 하느님을 충실히 섬긴 아브라함, 모세,여호수아. 다윗과 예언자들에게 적용된 영예스러운 칭호다. 바오로는 이러한 칭호를 자기에게 적용해서 그리스도의 뜻에 순종하는 종으로서 그들과 동등한 위치에 선다고 암시한다.

 

바오로는 적들이 자기 사도적 권위를 문제삼을 경우 자기가 사도임을 강조했다. 1절에서 사도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그의 사도직을 로마 그리스도인들이 문제삼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사도직을 받았음을 알리기 위함이다. 그의 사도직의 토대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 뵙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데 있다. 그래서 바오로는 이방인들의 사도로 자처한다.

 

복음이라는 이사야의 기쁜 소식을 전하다라는 말에 연결되는 것 같다. 바빌로니아로 유배간 이스라엘 백성이 귀향한다는 기쁜 소식은 그리스도의 구원을 예언하는 것으로 해석되어 왔다. 복음의 내용의 3-4절에 서술되어 있는데, 이상하게도 그리스도의 죽음과 묻히심에 관한 언급이 없다.

 

가려내졌다라는 완료수동태는 하느님이 당신 뜻에 따라 바오로를 속적 영역에서 거룩한 영역으로 지속적으로 성별하셨음을 암시한다. 갈라 1.15에서는 하느님이 바오로를 어머니의 태중에서부터 가려내셨다고 한다. 바오로는 이 선별을 통해 예레미야나 이사야 같은 대예언자 반열에 서게 되었다.

 

2

바오로는 하느님이 구약성서에서 예언자들을 통해 예고하신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하셨다고 보고 그들이 그리스도를 예언했다고 말한다. 바오로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약속이 성경”, 즉 구약성서에 기록되어 있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성취되었다고 보았다. 그것은 초대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이다.

 

3

바오로는 메시아에 관한 예언인 2열왕(LXX)7,12-14에 의거하여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부활하신 메시아께 적용한 것 같다. 이 칭호는 예수가 하느님과 독특한 관계를 맺고 계시며 그분과 같은 본성을 가지신 분임을 강조한다.

 

직역하면 육에 따라서”, 이 말은 하느님의 아들이 인간적 출신으로 혹은 혈통으로는 연약한 인간조건을 취해 사람이 되셨음을 뜻한다.

 

직역은 다윗의 씨”, 예수가 다윗의 가문에서 나셨다는 말은 약속된 메시아라는 뜻이다.

 

4

4.24; 8.11; 10.9 참조.

 

그리스도는 영적 힘에 의해 연약한 인간조건을 벗어나 부활의 권능을 띠셨다. “거룩함의 영은 삼위일체의 성령이 아니라 하느님이 역사 안에 현존하시는 영적 힘을 가리킨다. 로마서에서는 아직 후기 신학의 삼위일체 교리가 발전되지 않았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칭호는 하느님의 아들이 이방 민족들의 구원을 위한 바오로의 사도직에 현존하시는 것을 서술하는 데 쓰였다. 이 칭호를 바오로는 공동체 안에서 구원활동을 하시는 그리스도의 현존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했다.

 

예수는 부활하시기 전에는 연약한 인간조건하에서 하느님의 아들이었고 부활하신 지금은 권능을 띤 하느님의 아들로서 당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부활의 생명을 베푸신다. 부활로써 하느님의 아들 신분을 획득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오시기 전, 부활 전부터 하느님의 아들이시다.

 

5

직역하면 은총과 사도직”, 증언법 표현이다. 바오로는 은총을 통해 그리스도께 회개하고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사도직을 수행했다. “사도직은 바오로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도록 파견된 것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한 말이다. 하느님의 은총이 그의 사도직에 힘을 부여한다.

 

6

8,28-29; 9.24; 1고린 1.9; 2디모 1,9-10 참조.

 

7

성도라는 말은 속적 영역에서 분리되어 거룩하신 하느님의 현존 속에 살도록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을 지칭한다.

 

하느님의 사랑은 로마 그리스도인들을 성도로 부터 선택하신 데서 드러났고 당신 아들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입증되었다.

 

8,15 참조.

 

예언자들은 메시아가 당신 나라에서 평화의 군주로서 영원한 평화를 보증하고 영원히 주권을 행사하시리라고 예언했다. 7절에서 평화는 메시아가 주는 행복, 구원을 뜻한다.

 

 

 

 

 

 

 

 

 

 

 

 

복음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자손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시리라.>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8-24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2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24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족보에서는 예수의 정체를 밝혀 아브라함의 아들이요 다윗의 아들이신 ... 그리스도라 했다. 이제 예수의 잉태와 탄생 이야기에서는 어떻게 해서 그분이 다윗의 아들이 되셨는지 그 까닭을 설명한다. 그것은 다윗의 아들 요셉이 비록 마리아와 성관계는 맺지 않았지만 그녀와 정혼하고 동거하면서 그녀에게서 태어난 아기 예수를 자기 아들로 삼았기 때문이라 한다. 예수 아기가 비록 요셉의 친아들은 아니지만 합법적인 아들인 까닭에 다윗의 후손인 요셉의 가계를 물려받았다고 한다.

 

이처럼 마태오는 예수께서 다윗의 후손이 되신 까닭을 밝힐 뿐 아니라, 예수께서 다윗의 후손이 되신 까닭을 밝힐 뿐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그분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수태되었다고 한다. 또한 성령으로 수태되신 그분의 실명 예수를 풀이하여 그는 자기 백성을 그 죄에서 구원할 것입니다라 하고 또한 그분의 존칭 임마누엘을 풀이하여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 한다.

 

1,18-25의 예수 탄생 이야기는 모세 탄생 전설, 곧 모세의 아버지 암람, 그의 누이 미리암, 이집트 임금 파라오가 모세 탄생 꿈을 꾸었다는 전설들의 영향을 받은 것같다. 루카 1,26-38의 예수 잉태 이야기에도 천사가 나타나지만 요셉에게 나타나지 않고 마리아에게 나타나는 점이 다르다.

 

18

옛 이스라엘 관습에 따르면 처녀는 결혼한 다음에도 숫처녀로 그냥 친정에 눌러 살다가 일년쯤 지나 시가로 옮겨간 다음 비로소 성생활을 시작했다. 18절의 정혼하다동사는, 결혼은 했으되 아직 성생활은 하지 않는 그런 상태를 가리킨다. 루카 역시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했을 때의 상태를 두고 정혼했다꼬 한다.

 

19

이스라엘에서는 분인이 간음하면 원칙적으로 돌로 쳐죽였다. 잘봐주는 경우라야 남편이 이혼장을 만들고 증인 두 사람과 함께 서명한 다음 부인에게 건네줌으로써 부인을 소박했으니, 이것이 합법적 이혼절차였다. 이제 19절에서는 요셉을 평하여 의롭다고 하는데, 유다교에서는 율법을 곧이곧대로 지키는 사람을 의롭다고 했다. 따라서 유다교인 관점에서는 요셉이 공적으로 이혼절차를 밟아 마리아를 소박했어야만 의로운 사람이라 할 수 있었다.

 

공적 이혼절차를 포기하고 남몰래 마리아를 소박하기로 작정한요셉은 유다교인들이 보기에는 불의한 사람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요셉을 일컬어 의롭다고 한 것은 그리스도인 관점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보기에는 마리아가 어떻게 해서 아기를 갖게 되었는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공적 이혼절차를 밟지 않은 요셉이야말로 의로운 사람이었다.

 

21

마태오는 예수라는 이름을 나름대로 풀이하여 그는 자기 백성을 그 죄에서 구원할 것입니다라 한다. 통속적 어원 풀이로 예수는 야훼께서 구원하신다라는 뜻이다.

 

22

마태오는 구약의 예언이 예수 사건으로 성취되었다는 말을 자주 한다. 이 도식 가운데서 가장 돋보이는 것이 이른바 성취인용문이다. 성취인용문은 예수 사건 이야기, “주께서 예언자를 시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라는 고정적 도입구, 구약성경 인용문, 이렇게 세 부분으로 짜여 있다. 1,22-23은 마태오복음에 나오는 맨 첫 번 성취인용문이다.

 

23

23절은 이사 7.14 인용문이다. 히브리 원문에서는 젊은 여자가 잉태하여...”라 하는데, 마태오는 칠십인역을 따랐다. 마태오가 보기에 하느님은 예수의 가계를 치밀한 수치로 계획하고 실현하셨을 뿐 아니라 또한 예수로 하여금 성령으로 말미암아 처녀에게서 탄생하겠끔 예정하고 추진하셨다. 그 결과 예수는 단지 다윗의 가계에 속하는 다윗의 아들 메시아일 뿐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하느님의 영으로 창조된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마태오는 강조한다.

 

예수께서 실제로 임마누엘이라 불린 적은 없다. 그러니 임마누엘은 실명이 아니고 예수의 정체를 드러내는 존칭이다. 히브리어 임마누엘을 풀이하면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라는 뜻이다. 그러니 예수를 일컬어 임마누엘이라 한 것은 그분이야말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드러내셨다는 뜻이다. 예수께서 본질적으로 숨어 계신 하느님을 우리가 느끼고 듣고 볼 수 있게 해주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생각과 말씀과 행적 하나하나에 영원하신 분의 뜻이 서려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로 예수님은 하느님의 현신이라 해도 좋겠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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