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조금만 더 있으면 올 이가 오리라. (히브10,3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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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2-12-19 | 조회수535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2022년 12월 19일 [대림 제4주간 월요일] 입당송(히브10,37-38) 37 “조금만 더 있으면 올 이가 오리라. 지체하지 않으리라. 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그러나 뒤로 물러서는 자는 내 마음이 기꺼워하지 않는다.” = 뒤로 물러서는 것 구약(舊約), 그 옛 계약에 멈춘 삶이다. 곧 내 뜻, 소원을 위한 제사(祭祀) 행위(行爲)의 신앙이다. (구약의 완성은 신약이다) 오늘 독서와 복음을 보면 마노아의 아내와 즈카르야의 아내 엘리사벳, 그녀들에게 ‘임신할 수 없는 몸이어서 자식을 낳지 못하였다.’고 성경(聖經)이 전(傳)한다. 곧 구약으로는 약속의 후손을 낳을 수 없다는 것이다. 구원자(그리스도)를 낳을 수 없다는 것이다.(갈라3,6) 그래서 엘리사벳이 다섯(구약-율법)을 숨어있어야 할 치욕(恥辱)이라 한 것이다.(루가1,24-25) 일 년에 한 번씩 성탄(聖誕)시기로 돌아가면서, 다시 원점(原點)으로 돌아가 머무는 신앙(信仰)이 될까 걱정이 앞선다. 그러니까 지금은 제사(祭祀) 열심히 드리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릴 때가 아니라, 우리의 죄(罪)로 죽으셨다 부활(復活)하시어 우리를 의롭게, 거룩하게 하신 그 새 계약의 그리스도를 진리(眞理)로 믿어 그분과 한 몸이 될 때라는 것이다. 언제까지 초보적(初步的) 신앙(信仰)을 걷게 할 것인가?~~ (히브6,1-2) 1 그러므로 그리스도에 관한 초보적인 교리를 놓아두고 성숙한 경지로 나아갑시다. 다시 기초를 닦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 기초는 곧 죽음의 행실에서 돌아서는 회개와 하느님에 대한 믿음, 2 세례에 관한 가르침과 안수, 죽은 이들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입니다. = 하느님의 오른쪽, 곧 진리의 영, 성령으로 다시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분의 가르침으로 진리를 깨달아 감사와 영광을 드리는 사람이 되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지금은 육신(肉身)을 입으신 예수님이 아닌, 거룩한 영(靈)이신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야 할 때라는 것이다. (로마1,3-4) 3 당신 아드님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분께서는 육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셨고, 4 거룩한 영으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시어, 힘을 지니신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확인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본기도> 하느님, *거룩한 동정녀의 출산을 통하여 영광의 빛을 세상에 드러내셨으니 저희가 언제나 이 강생의 놀라운 신비를 온전한 믿음과 경건한 마음으로 거행하게 하소서. = ‘거룩한 동정녀의 출산을 통하여’가 아니다. 동정녀(처녀), 곧 비어있어 거룩하지 못한 쓴물(마리아)에 거룩한 씨(말씀- 예수)가 들어오셔서 우리의 영광(榮光), 생명(生命)의 빛으로 탄생하셨기에 쓴물들인 우리가 거룩하게 되는 신비(神秘)인 것이다. (히브10,9-10참조) 또한 우리의 생명, 빛의 표징(標徵)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誕生)을 기리는 행(行)함보다, 다른 보호자, 곧 그리스도의 영, 진리의 영으로 오신 성령(聖靈)을 받아 그분과 하나 되어 그분의 가르침을 받는 것이 더욱 중요(重要)하다는 것이다. 옛 계약으로 돌아가 우리의 죄를 기억해 내어 고백하는 것보다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않겠다하신 그 하느님의 약속, 곧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의 말씀을 믿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히브10,17-18) 17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나는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의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리라.” 18 이러한 것들이 용서된 곳에는 더 이상 죄 때문에 바치는 예물이 필요 없습니다. (히브10,28-29) 28 모세의 율법을 무시한 자는 둘이나 세 증인의 말에 따라 가차 없이 처형됩니다. 29 그렇다면 하느님의 아드님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해 준 계약의 피를 더러운 것으로 여기고, 은총의 성령을 모독한 자는 얼마나 더 나쁜 벌을 받아야 마땅하겠습니까? = 믿지 않는 것, 의탁하지 않는 것, 그래서 자꾸 죄를 기억해 내어 용서를 청하는 것,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피를 더러운 것으로 여기며 모독(冒瀆)하는 것이다. (반성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죄를 지어도 상관없다는 말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로 용서받았음을 믿는 이는 아무렇게나 막 살지 못한다) 그러면 잘못, 죄를 졌을 때 어떻게 하나? 그 잘못, 죄를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으로 용서(容恕)하신 하느님의 사랑, 자비(慈悲)에 감사(感謝)를 드리는 것이 먼저다. (로마3,25-26) 25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내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는 믿음으로 얻어집니다. 사람들이 이전에 지은 죄들을 용서하시어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려고 그리하신 것입니다. 26 이 죄들은 하느님께서 관용을 베푸실 때에 저질러졌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어, 당신께서 의로우신 분이며 또 예수님을 믿는 이를 의롭게 하시는 분임을 드러내십니다. = 현세(現世)에서도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영원한 자유를 사는 것’이 우리 신앙의 목적(目的)이다. * 사제(司祭)께서~ 구원(救援)이란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놓은 착각(錯覺)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헛된 규범, 엄격주의, 완벽주의, 자기혐오, 죄책감에서 해방(解放)되는 것이 구원일 수도 있습니다. (마르7,7-8) 7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8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이사55,8-9) 8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주님의 말씀이다. 9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이 있듯이 내 길은 너희 길 위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 위에 드높이 있다. ☨ 영원한 보호자,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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