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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 영근 신부님의 복음 묵상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2-12-29 조회수526 추천수6 반대(0) 신고

221229. 성탄 팔일 축제 제5일.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루카 2,30)
 
 
성탄 팔부 축제 제5일 입니다. 오늘 성모님께서는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치르시며,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십니다. 사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죄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적용되었던 모세의 율법규정을 지키지 않으셔도 되셨지만, 굳이 율법 아래에 있는 이들을 속량하시려고 율법의 지배를 받으셨습니다.
 
이를 사도 바오로는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 율법 아래에 있는 이들을 속량하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 되게 하는 자격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갈라 4,4-5) 
 
오늘 <복음>에서 시메온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습니다.”(루카 2,27-28).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루카 2,30)
 
여기서, 세 가지를 주의 깊게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시메온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습니다.”(루카 2,27).
 
그런데 우리는 무엇에 부추김 받고 있는지요? 성령에 이끌려 다니는지요? 혹 자신의 뜻을 이루려고 쫓아다니지는 않는지요? 대체 나는 지금 무엇에 깨어있는지요? 영의 움직임인지요? 아니면 내 마음의 움직임인지요?
 
그러니 자신이 무엇에 기대어 있는지? 무엇이 자신의 삶을 움직이게 하고 있는지?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동인이 무엇인지? 잘 들여다보아야 할 일입니다.
 
둘째, 시메온은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하느님을 찬미하였습니다.”(루카 2,27-28).
 
그런데 지금 내 팔에 무엇을 안고 있는지요? 아기예수님인가요? 아니면, 다 큰 자기 자신인가요? 혹 한 팔에는 아기예수님을, 다른 한 팔에는 자기 자신을 안고 있지는 않는지요? 혹 공동체와 형제들을 안고 있기는 하는지요? 그래서 누구를 찬미하고 있는가요? 아기예수님인가요? 아니면, 자기 자신인가요?
 
그러니 진정, 나는 지금 누구를 품고 살아가고 있는지 제대로 들여다보아야 할 일입니다.
 
셋째, 시메온은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루카 2,30)라고 노래합니다. 그런데 나의 눈은 대체 무엇을 보고자 찾아 헤매는지요? 어디를 향하여 있고, 누구를 향하여 있는지요? 타인들인가요? 자기 자신인가요? 아니면, 진정 하느님인가요? 혹 겉의 화려함만 바라보고 탓만 하는 세속의 눈인가요? 속을 꿰뚫어보고 찬미와 영광을 노래하는 맑고 순수한 영의 눈인가요? 혹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희미해져가고 늙어가는 육체의 눈인가요? 아니면, 늙어갈수록 맑아져 가는 영의 눈인가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눈(관점)을 내려놓으면 신비를 바라보는 하느님의 맑은 영의 눈이 열릴 것입니다. ‘어린 아기에게서 구원을 보는’ 시메온의 눈처럼 열릴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관상의 눈이 열려 이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루카 2,30).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루카 2,30)
 
주님!
구원을 보는 눈을 열어 주소서.
포대기에 싸인 아기에게서, 알몸으로 매달린 십자가에서,
구원을 보게 하소서.
양팔로 제 삶의 무력함을 쳐들고, 구원과 자비의 찬미노래를 부르게 하소서.
무력함에서 흘러내리는 당신의 구원을 따라 관상의 삶을 살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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