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6일(금) 주님 공현 대축일 전 금요일...독서,복음(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3-01-05 조회수262 추천수3 반대(0) 신고

 

 

1독서

<성령과 물과 피>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5,5-13
사랑하는 여러분, 5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6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7 그래서 증언하는 것이 셋입니다.
8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9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아들인다면,
하느님의 증언은 더욱 중대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하느님의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에 관하여 친히 증언해 주셨습니다.

 

10 하느님의 아드님을 믿는 사람은 이 증언을 자신 안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는 하느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에 관하여 하신 증언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1 그 증언은 이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12 아드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고,
하느님의 아드님을 모시고 있지 않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13 내가 여러분에게,
곧 하느님의 아드님의 이름을 믿는 이들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해

6

6절에서 은 과거 예수의 세례를, “는 과거 예수의 죽음을 가리킨다. “물만 거쳐 오신 것이 아니라 물과 피를 거쳐 오셨습니다라는 기이한 표현은 위의 주석6에서 소개한 체린투스식 분리 그리스도론을 참작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분리 그리스도론 영지주의자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의 구원 효과를 부정했다. 이에 반해 요한서간집 필자는 예수의 죽음을 대속 구원사건으로 이해했다.

 

영은 과거 예수의 세례와 예수의 죽음이 이룩한 구원 효과를 현 시점에서 신도들에게 깨우쳐 주시는 분이시다. 성령의 역할과 관련하여 다음 세 단락이 중요한다.

 

요한 14.26: “협조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 주실 것이고 (내가) 여러분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상기시켜 주실 것입니다.”

1요한 2.20: “여러분은 거룩하신 분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으니, 여러분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1요한 2.27: “그분으로부터 받은 기름부음이 여러분안에 머물러 있으니 누가 여러분을 가르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분의 기름부음이 여러분에게 모든 일에 관해서 가르쳐 주시듯이, 또한 (이미)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신 대로 여러분은 그분 안에 머물러 있으십시오.”

 

암부르시우스.아우구스티누스. 크리소스토무스.알렉산드리아의 치릴루스 등 4~5세기 교부들은 물과 피가 세례성사의 성체성사를 가르킨다고 보았다. 오늘날 교부들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조하는 주석가는 없다. 그러나 슈트레커 등은 물과 피를 예수의 세례 사건과 죽음 사건과 관련시키면서 아울러 세례성사와 성체성사와도 관련시키는 입장을 취한다. 그런가 하면 게오르그 리히터는 물과 피는 강생을 가리킨다고 한다.

 

브라운은 군인들 가운데 하나가 창으로 예수의 옆구리를 찌르니 즉시 피와 물이 나왔다는 기록을 근거로 해서 6절의 물과 피는 오직 예수의 죽음을 뜻한다는 설을 강력히 내세운다. 여기에 소개한 학설들은 하나같이 기발하기는 하지만 설득력은 없어 보인다.

 

7

유다교 법정에서는 적어도 증인 2명을 불러서 그들의 증언이 일치하는가 여부에 따라 판결했다. 곧 증언 중심 재판이었다.

초월적 그리스도와 역사상 예수가 상일한 두 존재가 아니고 같은 분임을 증언하는, 특히 그분의 를 증언하는 증인들은 영과 물과 피 셋이요, 이 셋의 증언은 일치한다고 한다. 그럼 7-8절의 물과 피증인들은 도대체 누구, 무엇이냐? 세례성사와 성체성사를 뜻한다고 보는 설이 지배적이다.

 

258년에 순교한 치프리아누스 주교가 생시에 라틴어로 쓴 가톨릭 일치 일치론과 특히 600년 이후 라틴어 번역본 성경에는 7-8절이 다음과 같이 확장되어 있다: “하늘에서 증언하는 분들도 셋이니 아버지의 말씀과 성령 이렇게 샛입니다. 땅에서 증언하는 분들도 셋이니 영과 물과 피이며 이 셋은 일치합니다.” 이 가운데서 하늘에서아버지의 말씀과 성령 이렇게 셋입니다. 땅에서 증언하는 분들도 셋이니는 그리스어 원문에는 없는 라틴어역 가필이 분명하다. 이 가필을 요한 소절(小節)”이라 한다.

 

교황청 금사성에서는 1897113일자로, 모름지기 가톨릭 신앙인 요한 소절을 의심하거나 부정해서는 안된다는 결정을 내렸고, 이틀 후 레오 13세 교황은 이 결정을 추인했다. 원전비평상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우매한 결정이었다.

 

9

9절에 있는 하느님의 증언7-8절에 나오는 성령과 물과 피의 증언 외에 또 하나의 새로운 증언이라고 보는 설이 있다. 이와는 달리, 성령과 물과 피의 증언들을 합친 것이 하느님의 증언이라고 보는 설이 있는데, 후자의 설이 타당한 것 같다.

 

11

생명또는 영원한 생명은 요한 1서에 열세 차례 나온다. 요한 1서에서는 그냥 생명도 전부 영원한 생명을 뜻한다. 영원한 생명이란 하느님의 삶이요 종말론적 구원이다. 영생은 요한 1서의 시작 주제이며 결론이다.

 

 

 

 

 

 

 

 

 

 

복음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11
그때에 요한은 7 이렇게 선포하였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9 그 무렵에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오시어,
요르단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10 그리고 물에서 올라오신 예수님께서는
곧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께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11 이어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7

1`세기에 그리스도교와 요한교가 대립하여 서로 자기네 교조가 더 위대하다고 주장했다. 7절은 그리스도교에서 예수의 우위성을 주장하려고 만든 말인 것 같다. 예수님이 세례자보다 시기적으로 늦게 출현했으나 품위로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하다는 것이다. 주인이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종이 그 신발끈을 풀어주는 법인데, 세례자는 예수께 그런 일을 해드릴 자격조차 없다고 한다. 비슷한 말이 어록을 베낀 마태 3.11 그리고 요한 1.27에도 있다.

 

8

어록에 의하면 요한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분이 오시리라 예고했다. 그러나 실제로 요한은 나는 여러분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지만 그분은 여러분에게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것입니다라고 했을 것이다. 그 뜻인즉 요한의 물 세례를 거부하면 하느님의 불 세례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 하느님의 엄한 심판을 받으리라는 경고다.

 

그럼 마르코가 불 세례 대신 성령 세례를, 어록작가가 불 세례와 더불어 성령 세례를 내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1세기 그리스도교계에서 요한교를 상대로 세례논쟁을 벌인 일이 있었다. 그때 그리스도인들은 주장하기를 요한교 세례에는 성령이 작용하지 않고 오직 자기네 세례에만 성령이 내린다고 했다. 이런 배경에서 여러분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것입니다로 고쳤을 것이다.

 

세례를 받으시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에 정말 시현을 보시고 말씀을 들으셨을까? 그랬다고 속단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과 업적, 죽음과 부활을 체험하면서 그분이야말로 하느님의 영으로 사신 하느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그 확신을 세례사화에 소급하여 투사했다고 보는 견해가 옳겠다. , 세례사화에는 예수님 자신의 체험보다 교회의 체험이 담겨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때 예수님 자신은 아무런 체험도 하시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다. 사료가 너무 간략해서 비록 그 체험 내용을 밝힐 도리는 없지만 그때 예수께서 강한 소명의식을 지니셨기에 세례를 받으신 다음부터 고향과 친척과 직업을 등지고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이룩하는 일에 헌신하셨던 것이다.

 

9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신 때를 막연히 그 무렵이라 한다. 루카 3.1에 의하면 요한이 세례운동을 전개한 시기는 로마의 티베리우스 황제가 즉위한 지 15년째 되던 해였다. 환산하면 27년경이다. 그리고 떠나오신 곳을 일컬어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 하는데 사실 예수님은 그곳에서 자라시고 기술자로 일하셨다.

 

10

마르코복음 세례사화에 의하면 예수님 홀로 신비로운 체험을 하신다. 먼저 시현의 내용을 살피면 하늘이 갈라져천지가 상통하게 되고, 하느님의 영이 ....예수께 내려그분은 하느님의 힘으로 살게 되신다. 그런데 하느님의 영을 비둘기처럼으로 표현한 이유는 아무래도 하늘에서 움직이는 동물은 새이고 새 가운데 영물은 비둘기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11

10절에 있는 시현의 설명어인데 하느님께서 예수의 정체를 밝히신다. 하느님의 영이 내린 예수는 하느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다”. 그 옛날 이스라엘과 유다의 왕정시대에는 하느님이 새로 즉위한 임금을 양자로 삼아 너는 내 아들이다라고 하셨는데 이제 예수님은 한결 더 깊은 뜻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시다. 그래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하신다. 여기 사랑하는 아들은 요한계 문헌에 나오는 외아들과 같은 뜻이다. 히브리어 야히드는 사랑하는”,“유일무이한두 가지 뜻을 지닌 낱말이다. 아울러 예수님 자신도 그리고 초대교회도 하느님과 예수의 관계를 유일무이한 부자관계로 보았다. 그런데 마르코 복음사가는 예수께서 수난하실 때까지 당신이 하느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심을 숨기셨다고 한다.

 

나는 너를 어여삐 여겼노라는 단순히 하느님의 마음에 들었다는 뜻이 아니라 하느님이 일정한 사명을 부여하려고 선택하셨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사 42.1야훼의 종이라는 신비스런 인물이 자신은 무죄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의 죄를 대신 속죄하려고 고난을 겪는다는 내용의 시가 첫 구절이다. 그렇다면 예수님도 저 야훼의 종처럼 살아가도록 선택되셨다는 뜻이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