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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7일(토) 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독서,복음(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3-01-06 조회수225 추천수1 반대(0) 신고

 

 

1독서

<우리가 무엇을 청하든지 그분께서 들어 주신다.>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5,14-21
우리가 하느님의 아드님에 14 대하여 가지는 확신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그분의 뜻에 따라 청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15 우리가 무엇을 청하든지 그분께서 들어 주신다는 것을 알면,
우리가 그분께 청한 것을 받는다는 것도 압니다.

 

16 누구든지 자기 형제가 죄를 짓는 것을 볼 때에
그것이 죽을죄가 아니면, 그를 위하여 청하십시오.
하느님께서 그에게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이는 죽을죄가 아닌 죄를 짓는 이들에게 해당됩니다.
죽을죄가 있는데,
그러한 죄 때문에 간구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17 모든 불의는 죄입니다.
그러나 죽을죄가 아닌 것도 있습니다.
18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나신 분께서 그를 지켜 주시어
악마가 그에게 손을 대지 못합니다.

 

19 우리는 하느님께 속한 사람들이고
온 세상은 악마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압니다.
20 또한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오시어
우리에게 참되신 분을 알도록 이해력을 주신 것도 압니다.
우리는 참되신 분 안에 있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분께서 참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21 자녀 여러분, 우상을 조심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해

14

14절에선, 하느님의 뜻대로 청하면 청허하신다는 확신을 피력하는데, 같은 내용의 확신이 3,21-22에도 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청해야지 우리 욕심대로 청해선 안된다는 가르침이 마르 14.36; 야고4.3에 나온다.

1요한 3,21-22: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청하는 것은 다 그분으로부터 더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 그분앞에서 당신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마르 14.36:“아빠 아버지, 당신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소서, 그러나 제가 뜻하는 대로가 아니고 당신이 뜻하시는 대로 하소서.”

야고 4.3: “여러분은 청해도 받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여러분의 쾌락에 낭비하려고 잘못 청하기 때문입니다.”

 

15

15ㄴ절에서는,지난날에 교우들이 하느님의 뜻대로 청해서 은혜를 받은, 기도 체험을 회상시킨다. 같은 내용의 말씀이 마르 11.24에 있다. “여러분이 기도하며 청하는 것은 모두 받는다고 믿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16

16-17절은 청도에 관한 두 가지 훈계다. 요한계 교우들이 어쩌다 죄를 짓거든 대신해서 용서를 비는 청도를 드리라고 한다. ? 교우들이 죽을 죄를 지은 것은 아니니 하느님이 생명을 주시리라는 것이다. 풀이하면, 교우들이 그리스도요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를 배반하는 영지주의 이단죄, 영원한 죽음에 이를 죄를 지은 것은 아니고, 영원한 생명을 얻어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영원한 죽음에 이를 죄를 지은 영지주의 이단자들을 위해서는 용서를 비는 청도를 드리지 말라고 한다. 필자는 영지주의 이단자들과 그리스도 신앙을 두고 혈투를 하는 상황에서 이런 모진 말을 한다. 같은 맥락에서 이단자들을 집에 받아들이지도 말고 그에게 인사하지도 마십시오. 그에게 인사하는 이는 그의 나쁜 행실에 동조하는 것입니다라고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예수께서도 세상을 위한 청도를 사양하셨다: “세상을 위해서 청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제게 주신 이들을 위해서 청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아버지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18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이는 그리스도인을 뜻한다. 그리스도인은 죄를 짓지 않는다는 원론적 선언이다. 18ㄴ절의 뜻인즉,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인을 지켜 주시는 까닭에 악마가 범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20

20ㄱㄴ절: 세상은 비록 악마의 지배를 받고 있을지라도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을 확신한다. ? 하느님의 아들 예수께서 지난날에 오시어 참되신 하느님을 알려주셨고, 지금 하느님과 예수의 품안에서 나날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20ㄷ절: “이분은 참되신 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본래의 요한복음 필자는 시작과 끝에서 예수를 하느님이시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요한1서 필자도 시작에서 예수를 영원한 생명이라 하고, 끝에서 참되신 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라고 한다. 이는 예수께 드린 지고한 존칭이다. 신약성서을 통틀어 요한복음과 요한 1서에만 나오는 극존칭이다.

머리말과 맺음말은 어휘상으로나 내용상으로 닮았거나 같다.

 

21

21절의 우상들은 그리스도이신 예수께 대한 믿음과 형제 사랑을 저버린 영지주의 이단사상 또는 그 이단자들을 가리키겠다.

 

 

 

 

 

 

 

 

 

 

 

 

 

복음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셨다.>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1
그때에 1 갈릴래아 카나에서 혼인 잔치가 있었는데,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에 계셨다.
2 예수님도 제자들과 함께 그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으셨다.
3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 하였다.
4 예수님께서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5 그분의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말하였다.
6 거기에는 유다인들의 정결례에 쓰는 돌로 된 물독 여섯 개가 놓여 있었는데,
모두 두세 동이들이였다.
7 예수님께서 일꾼들에게 물독에 물을 채워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물독마다 가득 채우자,
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시,
이제는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어라.” 하셨다.
그들은 곧 그것을 날라 갔다.
9 과방장은 포도주가 된 물을 맛보고
그것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지 못하였지만,
물을 퍼 간 일꾼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과방장이 신랑을 불러 10 그에게 말하였다.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하면 그보다 못한 것을 내놓는데,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셨군요.”
11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가나 혼인잔치: 첫 번 표징

이 대목은 요한복음 일곱 표징사화 가운데 하나다, “표징은 예수의 기적을 가리키는 요한복음 특유 용어로서, “영광을 드러내는 예수와 그를 파견한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야기됨을 뜻한다. 기적 자체보다는 기적을 행한 예수의 인격에 중점을 둔 그리스도론적 용어다. 11절에도 요약되어 있듯이, 이 대목은 문맥상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한다. 하나는 첫 제자들에게 약속한 더 큰 일이 실쩨로 이루어져 제자들이 예수를 메시아, 모세의 예언자들이 예언한 분, 이스라엘의 왕, 하느님의 아들로 더 혹고히 믿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예수의 자기계시가 표징을 통해 이루어졌음을 처음으로 열어보이는 것이다.

 

1

문장 연결을 위한 표현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굳이 상징적 의미를 본다면 하느님의 도움이 이루어진 날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3은 완전이나 완성을 뜻하는 숫자로서 신적인 것과 관련이 있고, 예수의 시간은 성부의 뜻을 표현하는 것으로서 예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2

혼인잔칫집과 개인적 친분관계를 시사하기도 하지만, 앞으로 펼쳐질 마리아의 역할 때문에 언급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예수의 어머니는 십자가상 죽음의 장면에서 또다시 언급된다.

 

3

다만 어떤 도움이 필요한 상황을 알리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어떤 기적을 부탁한 말은 아니다.

 

4

어머니를 부인이라고 부르면서 셈족 계통의 표현방식으로 반문하는 것은 어떤 거리감을 두는 표현임에는 틀림없다. 직역하면 무엇이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있습니까?)인데, 두 사람사이 관점의 차이나 관계에서 거리가 있음을 뜻한다. 하지만 예수의 시간과 결부된 내용이기 때문에, 시간의 의미와 함께 살펴봐야만 한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의 시간이 곧 성부께로 귀환하는 예수의 죽음과 직결된 를 전형적으로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서는 뉘앙스의 차이가 있다. 시간은 예수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점이 우선 예수의 말 가운데 시사된다.

 

시간은 성부의 뜻이 반영되는 를 가리킨다. 성부의 뜻이 곧 아들 예수의 행위를 규정한다. 따라서 그 시간은 아들 예수의 영광과 함께 성부의 영광이 계시되는 것과 관련된다. 그러므로 예수는 자신이 성부의 뜻을 따르며 그분의 영광을 들어내야한다는 것을 어머니에게 알리고자 했다고 하겠다. , 혈육 관계를 뛰어넘어 성부와의 관계 속에서 어머니 마리아를 보고 말한 것이다.

 

5

마리아는 마치 예수의 말을 잘 알아차린 듯이 예수의 뜻에 따르도론 시중꾼들에게 말한다. 자기는 뒷전으로 물러나 아들을 신뢰하며 지지하겠다는 것이다. 사실상 마리아의 이 말은 파라오가 이집트인들에게 말한 내용과 병행을 이룬다.

 

6

한 동이은 약 40리터.

 

9

물이 포도주로 변한 기적 자체에 관한 언급은 없으니, 잔치 주관자에 의해 기적임이 확증되고 시중꾼들이 기적의 증인으로 소개된다.

 

10

포도주 맛이 뛰어남을 표현하는 이 말은 그 출처를 묻는 말과 함께 포도주 제공자의 품위도 시사한다.

 

11

가나 기적의 의미와 결과를 요약한다. , 이 기적은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예수의 영광이 드러나는 표징이요, 예수를 믿고 따르는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를 더 깊은 차원에서 이해하도록 이끌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표징이 예수의 영광을 드러내지만 오로지 믿음의 눈으로 그것을 보는 사람에 한해서라는 점이다. ”표징은 예수의 자기계시 수단이요, 그 의미는 믿는 자에게만 전달된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옮김

 

일주일간이나 계속 되는 혼인잔치에서도 거룩함이 빠지면 그 축제는 엉망이 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물독에 물을 부었는데 일반적으로 쓰이는 물독이 아니라 정결례에 쓰는 물독이었다. 그물독에 물을 부으니 포도주가 되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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