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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1일(수) 연중 제1주간 수요일...독서,복음(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3-01-10 조회수343 추천수1 반대(0) 신고

 

1독서

<자비로우신 그분께서는 모든 점에서 형제들과 같아지셔야 했습니다.>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2,14-18
14 자녀들이 피와 살을 나누었듯이,
예수님께서도 그들과 함께 피와 살을 나누어 가지셨습니다.
그것은 죽음의 권능을 쥐고 있는 자
곧 악마를 당신의 죽음으로 파멸시키시고,
15 죽음의 공포 때문에 한평생 종살이에 얽매여 있는 이들을
풀어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6 그분께서는 분명 천사들을 보살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보살펴 주십니다.
17 그렇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모든 점에서 형제들과 같아지셔야 했습니다.
자비로울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충실한 대사제가 되시어,
백성의 죄를 속죄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8 그분께서는 고난을 겪으시면서 유혹을 받으셨기 때문에,
유혹을 받는 이들을 도와주실 수가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해

14

2,14-18은 그리스도께서 사람들과 얼마나 가까운 분인가를 그분의 강생, 특히 수난의 예를 들어 설명한다. 그리스 철학이나 영지주의자들이 말하듯이 그리스도께서는 겉으로만 사람처럼 보이신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들과 똑같은 피와 살을 지닌 완전한 사람이셨고, 육체적으로 온갖 고통을 다 겪으신 연약한 사람이셨다. “피와 살은 유다인들이나 초대교회가 사람”, “인성등의 의미로 쓰인 단어다. 가끔 하느님과 상반되는 뜻으로 쓰이며 살과 피의 순서가 바뀐 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

 

악마는 후기 유다이즘에서 악과 죽음의 근원, 죽음을 관장하는 존재로 여기셨다. 지혜서에서는 악마의 질투로 세상에 죽음이 들어왔다고 한다. 그런데 예수께서 이러한 악마를 파멸시키고 승리하신 방법은 더 큰 힘을 사용하셨기 때문이 아니고 죽음 자체를 통해서였다. 그분은 스스로 희생됨으로써 주금의 원인인 죄를 이기고 사람을 하느님과 화해시켜 죽음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진 악마를 무력하게 만드셨다.

 

15

누가 빛 때문에 노예가 되었으면 그 빚을 갚아야 자유를 찾는다. 인류는 죄를 지어 악마의 노예가 되고 죽음의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에 죽음의 공포에 얽매여 있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이러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되시고 그들과 똑같이 죽고 묻혀 죄의 빚을 갚고 사람들을 해방시키셨다.

 

16

창세 12-22장 등 구약성서에서 아브라함의 후손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킨다. 신약에서도 그런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가끔 있다. 나아가 이 말은 신약의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을 뜻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9절과 관련되어 모든 사람을 뜻한다.

 

17

처음으로 그리스도를 대제관이라 부르는데, 대제관을 하느님 앞에 성실하고 자비로운 분으로 소개된다. 그리고 그의 사명이 백성의 죄를 속죄하는 것임을 명시한다. “자비로운가엾게 여기는또는 동정심이 많은으로 번역할 수도 있다. 히브리서는 그리스도께서 자비로운 대제관이심을 매우 강조하며, 이에 대해 4.15-5,10에서 다시 상세히 설명한다. 또 자비에 못지않게 중요한 개념은 성실한이다. 이 단어는 신뢰할 만한또는 충실한등으로도 번역할 수 있다. “성실한 대제관에 대해서는 3.1-4.14에서 길게 설명한다. 시편도 자비롭고 성실한이라는 합성어를 가끔 사용한다.

 

속죄하다는 구약 속죄제사 용어로 희생제물을 바쳐 사람의 죄를 보상하고 잘못을 기워갚는다는 뜻이다.

 

18

그리스도와 사람의 긴밀한 관계를 설명하는 대목의 결론에서 저자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과 똑같이 시험과 고난을 받으신 분임을 강조한다. “시험을 받다유혹을 당하다의 뜻도 지니고 있으며, 사람이 겪는 온갖 시험과 유혹을 가리킨다. 따라서 굳이 예수께서 광야에서 받으신 유혹만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분은 연약한 사람으로서 시험, 고난, 유혹 등을 다 체험하셨기 때문에 사람의 어려움을 누구보다도 깊이 이해하고 아파하시며 그 어려움을 이기도록 도와주신다.

 

 

 

 

 

 

 

 

 

 

 

 

복음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셨다.>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9-39
그 무렵 예수님께서는 29 회당에서 나오시어,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곧바로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가셨다.
30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어서,
사람들이 곧바로 예수님께 그 부인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3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32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
33 온 고을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
34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
그러면서 마귀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당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35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36 시몬과 그 일행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가
37 그분을 만나자,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39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시몬의 장모를 고치시다

29

29절은 마르코가 가파르나움에서 하루를 엮으면서 앞의 문맥을 참고하여 많이 개작한 것 같다. 시몬의 장모를 고치신 치유이적사화는 본디 이렇게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가파르나움으로 들어가 시몬의 집으로 갔다. 그런데 시몬의 장모가 ...”

시몬 베드로는 본디 베싸이다 출신이다. 그런데 시몬의 집은 시몬 자신의 집일 수도 있고 처갓집일 수도 있다. 여하튼 예수님은 가파르나움을 근거지로 하여 활약하시는 동안 시몬의 집에 거처를 정하셨다고 여겨진다.

 

31

원문에서는 열이 부인을 버리고 떠나갔다한다. 열을 일종의 귀신으로 본 것이다. 당대 사람들은 귀신이 붙어서 병이 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몬의 장모가 시중을들었다는 것은 음식접대를 했다는 뜻이다.

시몬의 장모를 고쳐주신 치유이적사화는 당대 그리스인들이 치유이적사화와 그 서술양식이 같다. 그리스인들은 치유이적을 이야기할 때 상황묘사, 기적적 치유, 치유 실증. 목격자들의 반응 순으로 엮었다. 29-31절에는 이 요소들 가운데서 단지 목격자들의 반응만 빠져 있다. 초대교회에서는 당대의 서술양식을 빌린 예수 구마이적과 치유이적을 이야기했다.

 

따라서 서술양식에 불필요한 소재는 되도록 삭제하고 필요한 요소만 골라서 구마 및 치유 이적사화를 꾸몇을 것이다. 그럼 어느 때 이적사화를 즐겨 입에 담았을까? 짐작건데 대외적으로 전도할 때, 대대적으로 설교할 때나 교리를 가르칠 때 이적사화를 애용했을 것이다.

 

예수께서 실제로 정신병자를 고쳐주신 것처럼 육체적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도 고쳐주셨다. 그 논거는 27절 주석에서 제시한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구마이적처럼 치유이적 역시 일종의 정신요법이라 하겠다. 구마 및 치유 이적의 뜻인즉, 하느님의 다스림은 이미 시작되었다. 정신적 ,육신적 고통에서 사람을 해방하는 것이 안식일법이나 정결법보다 중요하다. 귀신 따위를 겁낼 것 없다는 가르침이다.

 

많은 병자를 고치시다

32-34절은 예수님의 활약상을 요약한 집약문이다. 마르코는 구마이적사화와 치유이적사화를 소개한 다음 이 집약문을 만들어 덧붙였다. 다음 집약문은 2,7-12.

 

32

원문에는 데려왔다" 대신 "운반했다", "저녁때가 되어 해가 졌을 때" 안식일이 끝나 비로소 다시 일할 수 있다. 환자 운반도 안식일에는 금지된 일이다.

 

33

시몬의 집 문앞일 것이다.

 

34

두 번째 함구령이다.

 

기도와 전도여행

예수께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룻동안 바쁜 일과를 마치고 이제 새벽녘에는 홀로 기도한 다음 갈릴래아 지방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선포하고 구원을 이룩하셨다 한다. 35-39절은 마르코가 물려받은 전승요소가 아니고 앞뒤 문맥을 참작하여 만든 편집요소라 생각된다. 그는 이 단원을 만들어 삽입하여 가파르나움포구에서의 활약상과 갈릴래아 지방에서의 활약상을 연결하고자 했다.

 

36

예수님이 기도하셨다는 기록이 마르코복음에 두 번 더 있다. 산으로 물러가 기도하고 게쎄마니에서 기도하셨다.

 

38

선포하다동사의 선포 내용은 “(하느님의) 복음이다. 1,38.39;3.14에는 그 내용이 명시되지 않았으나 역시 복음일 수밖에 없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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