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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늘 내가 슬픔을 넘어 기쁜 이유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3-01-13 조회수331 추천수3 반대(0) 신고

 

 

  💥 오늘 내가 슬픔을 넘어 기쁜 이유

 

리차드 위트컴 장군(Richard S. Whitcomb)과

그의 부인 한묘숙 여사의 전설적인

실화이야기.

 

 

6.25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 장성,

그는 당시에 미군 군수사령관이었다.

1952년 11월 27일, 

부산역 건너편 산 판자촌에 큰 불이 났다.

 

판자집도 변변히 없어 노숙자에 가까운 생활을 하던 피난민들은

부산 역 건물과 인근에 있는 시장 점포 등이 유일한 잠자리였는데 대화재로 오갈 데가 없게 됐다.

입을 옷은 커녕 먹을 것조차 없었다.

 

이때 위트컴 장군은 

군법을 어기고

군수창고를 열어

군용 담요와 군복, 

먹을 것 등을 3만 명의 

피난민들에게 골고루 나눠 주었다.

 

이 일로 위트컴 장군은 

연방 의회의 청문회에 

불려갔다.

 

의원들의 쏟아지는 질책에

장군은 조용히 말했다.

"우리 미군은 전쟁에서 

반드시 이겨야 하지만, 

미군이 주둔하는 곳의 사람들에게

위기가 닥쳤을 때 

그들을 돕고 구하는 것 또한

우리의 임무입니다.

주둔지의 민심을 

얻지 못하면

우리는 전쟁에서 

이길 수 없고,

이기더라도 훗날 

그 승리의 의미는 

쇠퇴할 수 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하자, 

의원들은 일제히 기립,

오래도록 박수를 쳤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 온 뒤 장군은 휴전이 되고도 돌아가지 않고, 군수기지가 있던 곳을

이승만 정부에 돌려주면서 

"이곳에 반드시 대학을 세워달라"

고 청하였다.

 

부산대학이 설립된 배경이다.

그러나 부산대 관계자도,

교직원도, 졸업생도 재학생도

이런 역사적 사실을 거의 모른다.

 

그리고 장군은 메리놀 병원을 세웠다. 

병원기금 마련을 위해 그는 갓에 도포를 걸치고 

이 땅에 기부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애썼다.

 

'사람들은 장군이 체신없이 

왜 저러느냐'고 쑤근댔지만 개의치않았고 온

맘과 힘을 쏟았다.

 

전쟁 기간 틈틈이

고아들을 도와온 위트컴 장군은 고아원을 지극 정성으로 운영하던 한묘숙 여사와 결혼했다. 

위트컴 장군이 전쟁 고아들의 아버지로 불리는 연유다.

 

그리고 그는 부인에게 유언했다.

''내가 죽더라도 장진호 전투에서 미처 못 데리고 나온 미군의 유해를 마지막 한 구까지 찾아와 달라''고...

부인 한묘숙 여사는 

그 약속을 지켰다. 

북한은 장진호 부근에서

길죽길죽한 유골만 나오면

바로 한묘숙 여사에게로 

가져왔고, 한 여사는 유골 한 쪽에 300불씩 꼬박꼬박 지불했다.

그렇게 북한이 한 여사에게

갖다 준 유골 중에는 우리 국군의 유해도 여럿 있었다. 

하와이를 통해 돌려받은

우리 국군의 유해는 거의 대부분

한 여사가 북한으로부터 

사들인 것들이다.

한 여사는 한 때 

간첩 누명까지 쓰면서도 

굴하지 않고 남편의 

유언을 지켰다. 

남편만큼이나 강한 

여성이었다.

 

장군의 연금과 재산은 

모두 이렇게 쓰였고, 

장군 부부는 끝내 

이 땅에 집 한 채도 소유하지 않은 채 

40년 전에 이생을 달리 했다.

부산 UN공원묘원에 묻혀 있는 유일한 장군 출신 참전용사가 바로 

위트컴 장군이다.

끝까지 그의 유언을 실현한 

부인 한묘숙 씨도 장군과 합장되어 있다.

 

이 땅에는 이러한 장군을 기리는 동상 

하나가 없다.

부산에도, 서울에도 , 아니 부산대학교에도

메리놀병원에도 물론 없다.

 

그런데 오늘, 장군이 떠난지 꼭 40년 만에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위트컴 장군 조형물을 만들기로 결의했다.

 

늦어도 너무 늦었지만,

국가 예산 말고,

재벌 팔을 비틀지도 말고,

70여 년 전 수혜를 입었던 피난민 3만명, 딱 그 수만큼

1인당 1만원씩 해서

일단 3억을 마련하기로 했다.

 

브라보!

 

민주주의의 생명은 참여다.

보은도 십시일반, 

참여해야 한다고.

오늘 그 첫 결의를 했다.

1만원의 기적을 이루어보자.

 

70년 전, 전쟁고아들을 살뜰하게 살피던 위트컴 장군을 생각하면서, 메리놀 병원을 세워 병들고 

아픈 이들을 어루만지던 장군의 손길처럼, 대학을 세워 이 땅에 지식인을 키우려던 그 철학으로, 부하의 유골 하나라도 끝까지 송환하려고 했던 그 마음을 생각하며 각자 내 호주머니에서 1만원씩 내보자.

딱 커피 두 잔 값씩만 내보자.

 

1만원의 기적이 한국병을 

고칠 수도 있지 않을까?

설마 이 땅에 1만원씩 낼 사람이

30만 명도 안 되지는 않겠지?

라고 생각하니 

또 내 마음은 두둥실, 

하늘을 날 것만 같다.

 

그리고 정부는

장군에게 무궁화 

훈장을 추서한다는

소식이다.

너무 늦었지만 

감사한 일이다.

 

정말 기쁜 날이다.

 

팝콘이 탁탁 터지듯이

그렇게 내 온 몸의 세포들이

기쁨에 겨워 꿈틀거린다.

에스프레소 덕분인가?

까뮈 엑스오 덕분인가?

 

이제 나는 죽어도 

한묘숙 여사를 만나

웃으며 두 손을 잡을 수 있게 됐다.

 

브라보!

 

 

  * 박선영 교수의 

  페이스북 글입니다

 

"사실 여러분의 순종은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의 이 일로 기뻐하면서도, 여러분이 선에는 지혜롭고 악에는 물들지 않기를 바랍니다."(로마서16:19).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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