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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3-01-16 조회수884 추천수8 반대(0)

바오로 사도는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히브4, 12)” 저는 강론을 준비하면서 이 말씀을 스쳐지나가듯이 읽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이병호 주교님의 글을 읽으면서 말의 힘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주교님은 매일 미사를 봉헌하면서 복음 말씀을 모두 암송하셨다고 합니다.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매일 미사를 봉헌하면서 여전히 복음 말씀을 암송하신다고 합니다. 매일 아침 미사를 봉헌하기 전에 성당 제대 앞에서 큰 절을 올린다고 합니다. 매일 치명자 산에 오르는데 그곳의 경당에서도 감실 앞에서 큰 절을 올린다고 합니다. 주교님의 삶에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정말 어떤 쌍날칼보다 날카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씀이 살아 있으니 육체의 나이는 들어 시력이 예전 같지 않지만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말씀이 살아있기 위해서는 매일의 삶에서 감탄과 놀라움을 가져야 합니다. 놀라움과 감탄의 눈으로 보면 세상 모든 것들이 놀랍고, 감탄스러운 것들로 보입니다. 그냥 스쳐지나가는 일상으로 보면 아름다운 그림을 보아도 그 아름다움에 감동하지 않습니다. 좋은 말씀을 들어도 감홍이 별로 없습니다. 예전에 들었던 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통계와 수치로 나타는 이야기는 큰 감동이 없습니다. 하지만 교우들을 만나면 삶의 기쁨, 분노, 슬픔, 즐거움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제는 교우들의 이야기를 경청해야 합니다. 주교님은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사실 사제들은 딸린 가족이 없고 교회가 생활을 보장해주기 때문에 큰 우산 속에서 산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우들은 우산 없이 눈비를 그대로 맞으며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성서의 인물들도 대부분 세상의 온갖 어려움을 그대로 당하고 산 사람들입니다. 성서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도 교우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길가에 있는 신호등은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파란 불에 이동하고, 빨간 불에 멈추면 안전하게 다닐 수 있습니다. 신호등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라고 하면서 빨간 불에 움직이면 교통사고가 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신호등이 사람을 위해서 있지만, 사람은 신호등의 지시를 따르는 것입니다. 신호등의 표시가 중요하지만 때로는 사람이 신호를 줄 때가 있습니다. 교통사고가 났을 때는 신호등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경찰의 신호를 따르게 됩니다. 공사 중일 때도 그렇습니다. 신호등은 정해진 규칙에 의해서 표시를 할 뿐이지 공사의 현장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공사의 현장에서는 현장 근무자의 신호를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라고 하신 말씀은 맞습니다. 긴급한 상황에서는, 재난의 상황에서는 안식일의 규정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기 때문에 안식일의 규정을 무시하거나 어겨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규정을 넘어서는 삶을 사셨습니다. 벗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친구가 잘못하면 일곱 번이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벗이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주라고 하셨습니다. 친구가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을 내어 주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 제자들도 그렇게 하도록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아전인수(我田引水)’라는 말이 있습니다. 법과 규정을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바리사이파와 율법학자들은 안식일의 규정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하였습니다. 그래서 권한은 행사하지만 책임은 소홀하였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다는 말은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삶을 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사셨기 때문입니다.

 

게으른 사람이 되지 말고, 약속된 것을 믿음과 인내로 상속받는 이들을 본받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희망은 우리에게 영혼의 닻과 같아, 안전하고 견고하며 또 저 휘장 안에까지 들어가게 해 줍니다. 아브라함은 끈기 있게 기다린 끝에 약속된 것을 받았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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