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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8 연중 제2주간 수요일(일치 주간)...독서,복음(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3-01-17 조회수633 추천수0 반대(0) 신고

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을 통하여, 가톨릭 신자들에게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더불어 일치를 위하여 기도하고 노력할 것을 권장하였다.

 

이러한 뜻에 따라 교회는 해마다 118일부터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인 25일까지를 일치 주간으로 정하고,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간구하는 공동 기도를 바치고 있다.

 

 

 

 

 

 

1독서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7,1-3.15-17
형제 여러분,
1 멜키체덱은 살렘 임금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사제로서,
여러 임금을 무찌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그에게 축복하였습니다.”
2 그리고 아브라함은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그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먼저 그의 이름은 정의의 임금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또한 살렘의 임금 곧 평화의 임금이었습니다.

 

3 그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으며 족보도 없고
생애의 시작도 끝도 없는 이로서 하느님의 아들을 닮아,
언제까지나 사제로 남아 있습니다.
15 멜키체덱과 닮은 다른 사제께서 나오시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16 그분께서는 육적인 혈통과 관련된 율법 규정이 아니라,
불멸하는 생명의 힘에 따라 사제가 되셨습니다.
17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 하고
성경에서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해

데제관 멜키체덱

7장 전체는 6.20에서 말한 멜키체덱의 본을 따른 대제관의 의미를 해설한다. 멜키체덱은 구약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신비의 인물인데 7장에서는 대제관이신 그리스의 본으로 등장한다.

 

7,1-10은 창세 14, 17-20에 나오는 이야기를 다룬다. 그러나 주제는 시편 110.4멜키체덱의 본을 따른 대제관이다. 먼저 1-3절에서는 성서를 바탕으로 하여 멜키체덱이라는 인물과 그의 제관직을 설명하고, 4-10절에서는 아브라함이 멜키체덱에게 바친 전리품의 십분의 일과 멜케체덱의 축복의 가치를 해설한다.

 

1

멜케체덱은 창세기에서 전하듯이 살렘의 왕이었는데 살렘은 예루살렘의 예사 명칭이었다. 유다교와 고대 그리스도교 전승에서는 예루살렘을 멜키체덱의 본고장으로 간주했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은 하느님의 높은 신분을 드러내는 유다교와 그리스도교의 표현으로. 하느님은 가장 높으신 분이라는 의미 외에 오직 한 분이시라는 유일신관도 반영하고 있다.

 

2

멜키체덱은 아브라함을 축복해 주고 그에게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받는 등 제관으로서의 직무와 권리를 행사했다.

 

멜키체덱은 정의의 왕이라는 말이고, 살렘은 앞에서 보았듯이 시온, 곧 예루살렘을 뜻하지만 평화라는 의미도 있다. 저자는 이러한 엉원을 풀이하면서 신학적 의미를 부각시킨다. 구약의 예언서와 신약성서에서는 정의와 평화의 왕을 메시아로 본다. 저자 역시 멜키체덱을 메시아의 예표로 받아들인다.

 

3

유다인들의 법규에 따라 모든 제관은 레위 가문 출신이어야 했다. 그런데 창세기 14장에서는 멜키체덱의 기원이나 가문에 대해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현대의 상식적인 관념으로 보면, 성서가 어느 인물의 가문이나 출생 등에 대해 침묵을 지킨다는 말이 아니고, 굳이 알릴 필요가 없어서 생략한 것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저자는 당대의 관념에 따라 혈통이나 족보에 대한 침묵을 인간적이고 지상적인 제도나 요소를 초월한 천상적이고 영원한 존재를 암시하는 뜻으로 해석한다.

 

그러니까 멜키체덱은 레위 가문에 속하지 않은 불법적 제관이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을 닮아 하느님 자신이 친히 임명하신 천상적인 영원한 세관이라는 것이다. 멜키체덱은 이렇게 가문이나 시간이나 죽음 등의 제관을 받지 않은 초월적인 제관이라는 점에서 부활하여 영원한 대제관이 되신 그리스도의 예형이다.

 

15

11절과 직접 관계되는 내용으로 그리스도는 레위 제관직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아론의 본을 따르지 않고 제관 가문 출신도 아닌 멜키체덱의 본을 따라 대제관이 되셨다. 그분은 일시적이고 지상적인 제관이 아니라 완전하고 천상적인 제관이시다.

 

16

레위 제관직과 그리스도 제관직의 차이를 알렉산드리아 철학의 이원론을 이용하여 설명한다. 레위 제관직의 특징은 육적 규정의 법에 따라 구성되는데, 이것은 인간 혈통을 따지는 족보 규정에 매여 있고 시한적이며 불완전하다. 반면에 그리스도의 제관직은 영원한 하느님 생명의 힘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영구적이고 완전하다.

 

17

시편 110.4(5.6;6.20 참조).

 

 

 

 

 

 

 

 

 

 

 

 

복음

<안식일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1-6
그때에 1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그곳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2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3 예수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 하시고,

 

4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5 그분께서는 노기를 띠시고 그들을 둘러보셨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시면서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손을 뻗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6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곧바로 헤로데 당원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손이 오그라든 병자를 고치시다

이 이적사화는 앞뒤 문맥과 상관없이 전해오던 것을 이 자리에 배치한 것 같다. 이렇게 배치한 이유는 적수들이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한 것으로 여태까지의 예수 활약을 끝맺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 단원 역시 이적사화 양식을 따라 상황묘사, 기적적 치유, 치유 실증, 목격자들의 반응 순으로 짜여 있는데, 논쟁이 벌어진 점, 목격자들이 감탄사를 발하는 대신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한 점은 파격적이다.

 

2

목숨이 위태로운 경우가 아니면 안식일에 병자를 치료해서는 안되었다.

 

4

생명이 위독한 경우에는 안식일일지라도 목숨을 구해야지 죽여서는 안된다는 것이 유다교의 법해석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일반 병자까지 고쳐주는 계명을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악행을 저지르는 것이라 하신다. 2.27에서처럼 안식일법보다 사람을 아끼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돋보인다.

 

6

헤로데의 사람들은 기원전 4년부터 후 30년까지 갈릴래아 지방을 다스린 헤로데 안티파스와 가까운 자들이다. 이 영주는 요한 세례자를 참수했고 예수님을 죽이려 했다. 헤로데의 사람들은 바리사이들과 함께 12.13에 다시 나온다.

 

여러 차례 예수님의 치사를 비난해 온 율사들과 바리사이들은 마침내 정계에 속한 헤로데의 사람들과 작당하여 그분을 죽이기로 결의했다. 여기서 처음으로 적수들이 예수를 처치하기로 결의한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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