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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3 연중 제3주간 월요일...독서,복음(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3-01-22 조회수193 추천수1 반대(0) 신고

 

1독서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짊어지시려고 단 한 번 당신 자신을 바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고대하는 이들에게 두 번째로 나타나실 것입니다.>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9,15.24-28
형제 여러분,
15 그리스도께서는 새 계약의 중개자이십니다.
첫째 계약 아래에서 저지른 범죄로부터 사람들을 속량하시려고
그분께서 돌아가시어,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약속된 영원한 상속 재산을 받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24 그리스도께서는, 참성소의 모조품에 지나지 않는 곳에,
곧 사람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느님 앞에 나타나시려고
바로 하늘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25 대사제가 해마다 다른 생물의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듯이,
당신 자신을 여러 번 바치시려고 들어가신 것이 아닙니다.
26 만일 그렇다면 세상 창조 때부터 여러 번 고난을 받으셔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분께서는 마지막 시대에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쳐 죄를 없애시려고 단 한 번 나타나셨습니다.

 

27 사람은 단 한 번 죽게 마련이고 그 뒤에 심판이 이어지듯이,
28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려고
단 한 번 당신 자신을 바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고대하는 이들을 구원하시려고
죄와는 상관없이 두 번째로 나타나실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해

15

15-22절의 주제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새 계약과의 관계다. 먼저 15절에서는 결론부터 제시한다. 옛 계약의 제사는 죄를 사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죽음은 죄를 사해주고 사람을 하느님께 가까이 갈 수 있게 했다. 그런 뜻에서 그분의 죽음은 새 계약을 맺은 제사다. 그리스인들은 약속받은 영원한 상속을 차지하게 되었다.

 

24

대제관은 자신과 백성의 죄를 속량하고 지성소에 들어갔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의 희생제물을 통하여 참된 성소인 하늘에 들어가셨고, 지금도 하느님을 직접 대하면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시다.

 

25

대제관은 해마다 대속죄의 날에 짐승의 피로 희생제사를 바치고 지성소에 들어갔다. 그러나 참된 대제관인 그리스도께서는 짐승의 피가 아닌 당신 자신의 피, 곧 한 번의 십자가 제사로 천상 성소에 들어가셨다. 그분의 희생은 한 번 이루어졌지만 영원한 가치를 갖기 때문에 반복할 필요가 없다. 한마디로 그리스도의 희생과 죽음은 한 번이자 영원한 가치를 갖는 대속죄 행위였다.

 

27

27-28절에서는 예수의 죽음의 절대적 가치를 사람의 죽음과 비교하여 더욱 확실히 증명한다. 사람은 한 번 죽지 두 번 죽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죽음도 반복될 수 없다. 그러나 그 죽음을 통한 속죄의 효과는 영속한다. 그분이 두 번째로 오시는 것은 사실이나 그때는 속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이룩된 구원을 완성하시기 위해서다.

 

28

예수께서는 이사야서의 고통받는 야훼의 종 노래에 이어 이미 예고된 대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고통을 받고 희생되심으로써 속죄하는 야훼의 종이 되셨다.

 

 

 

 

 

 

 

 

 

 

 

 

 

 

 

복음

<사탄은 끝장이 난다.>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22-30
그때에 22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 학자들이,
예수는 베엘제불이 들렸다.”고도 하고,
예수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도 하였다.

 

23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부르셔서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떻게 사탄이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24 한 나라가 갈라서면 그 나라는 버티어 내지 못한다.
25 한 집안이 갈라서면 그 집안은 버티어 내지 못할 것이다.
26 사탄도 자신을 거슬러 일어나 갈라서면 버티어 내지 못하고 끝장이 난다.
27 먼저 힘센 자를 묶어 놓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 힘센 자의 집에 들어가 재물을 털 수 없다.
묶어 놓은 뒤에야 그 집을 털 수 있다.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도 용서받을 것이다.
29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
30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사람들이
예수는 더러운 영이 들렸다.”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22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사들대신 어록에서는 바리사이들혹은 그들 가운데 몇 사람 이라 한다.

 

22절에서는 두 가지 모함을 구분한다. 첫째는 예수께 베엘제불이 붙었다고 한다. 베엘제불은 히브리어 복합명사로서, 의역하면 집주인이란 뜻인데 이교도 신들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30절에서 베엘제불을 일컬어 더러운 영이라 하니 그는 귀신들 두목이 아니라 한 귀신인 셈이다. 사실 예수님은 귀신이 들렸다는 모함을 종종 받으셨다.

 

둘째 모함은 예수께서 귀신들을 축출한 사실을 악의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 모함과 거기에 대한 답변이 어록에 더 잘 전해오는데 루카에 따라 옮기면 이렇다.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내셨는데 그는 벙어리 귀신이었다. 귀신이 나가자 벙어리는 말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군중은 놀랐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이 그는 귀신 두목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귀신들을 쫓아낸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을 알아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귀신들을 쫓아낸가면 여러분의 자식들은 누구 힘을 빌려 귀신들을 쫓아낸단 말입니까? 그러므로 바로 그들이 여러분의 심판관이 될 것입니다.” 여기에 베엘제불을 귀신두목일 한 것만은 뜻밖인데 이는 어록작가가 귀신 두목 사탄과 베엘제불을 동일시한 결과일 것이다.

 

23

22-20절에는 다섯 가지 전승요소가 집성되어 있는데 23-26절은 22.ㄴ절에 이어 샛째 전승요소다. 그런데 이것을 비유라 하나 매우 간결하기 때문에 차라리 상징어라 하겠다. 나라든 집안이든 갈라지면 망하게 마련이라는 상징어를 사탄의 조직에 적용한다. 예수께서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그분이 귀신을 축출한 사실을 악의적으로 풀이한 데 비해 또 한 가지 답변임에 틀림없다. 같은 상징어가 어록에도 전해온다.

 

27

27절은 넷째 전승요소인데 상징어만 있고 그 뜻을 밝히는 설명어가 없다. 그러나 당신의 구마행위를 두고 하신 말씀임에 틀림없다. 상징어의 뜻인즉 더 힘쎈 이가 덜 힘센 이를 묶어 놓지 않고서는 그 세간을 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해설은 비교점이 여러 가지이기 때문에 우의적 해설이요, 따라서 이 상징어는 일종의 우화라 하겠다. 27절과 같은 상징어가 어록에도 전해온다.

 

28

28-29절에는 다섯째 전승요소가 적혀 있다. 본디 앞뒤 문맥과 관계없이 전해온 이 단절어는 직역하면 아멘. 나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로 시작된다. 유다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남의 말에 동의한다는 뜻으로 아멘이라 응답한다, 그런데 예수님만은 유별나게 당신 말씀 첫머리에 아멘 혹은 아멘 아멘이라 하시는 때가 있다. 그분의 독창적 어법에는 당신의 말씀이야말로 참되다는 확신이 번뜩인다. 그렇다고 해서 아멘으로 시작되는 말씀은 죄다 예수 친히 발설하신 것은 아니다. 초대교회 신도들이 자기네가 만든 말을 예수님의 말씀인 양 내세우면서 그 앞에다 아멘을 덧붙인 경우도 있다. “아멘, 나는 ... 말합니다란 표현은 마르코복음에 열 세 번 나온다.

 

28-29절 단절어는 그 유래의 뜻을 밝히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므로 우선 마르코 복음사가가 그 단덜어를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살펴볼 수밖에 없다. 앞뒤 문맥을 참작할 때 성령에 대해서 독성의 말을 하는 사람은 예수님께 귀신이 붙었다느니 귀신 두목의 힘을 빌려 귀신들을 쫓아낸다느니 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예수님을 비방하는 사람은 결국 그분에게 적용하시는 성령을 모독하는 독성죄를 저지른다는 것이다.

 

단절어의 변체가 어록에도 전해오는데 여기서는 그 뜻이 한결 분명히 드러난다. 우선 루카 12.10을 따라서 오록의 말씀을 소개하면 이렇다.“누구든지 인자에 대해서 독성의 말을 하는 사람은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 뜻인즉 지난날 예수님이 이승에서 활약하실 때 그분을 불신한 죄조차 용서받을 수 있지만 이제 성령이 작용하는 초대교회의 선포마저 불실한다면 용서받을 길이 없다는 것이다. 예수시대와 성령시재를 구별하면서 전자보다 후자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 말이겠다.

 

30

다섯 가지 전승요소를 수집해 놓은 집성문은 그는 베엘제불에 사로잡혀 있다”(22ㄱ절)로 시작하여 그는 더러운영에 사로잡혀 있다”(30)로 끝맺는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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