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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그리스도인의 사랑법: 하느님의 유전자를 볼 줄 알아야!
작성자김글로리아7 쪽지 캡슐 작성일2023-01-23 조회수571 추천수3 반대(0) 신고

 

 

 

 

 

 

 

 

 

 

 

2023년 가해 연중 제3주간 화요일

 

 

 

 

<그리스도인의 사랑법: 하느님의 유전자를 볼 줄 알아야!>

 

 

 

 

복음: 마르코 3,31-35

 

 

 

 

     


LORENZETTI, Pietro 작, (1325)  

 

 

    오늘 복음에서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오지만, 예수님은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마르 3,33)라고 하시고는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르 3,34-35)

 

 

    물론 하느님의 뜻을 성모님보다 더 따른 사람이 없기에 성모님만큼 완전한 그리스도의 가족은 없습니다. 다만 하느님을 따르는 이들에겐 핏줄보다 강한 가족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가족을 사랑하는 것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은 형제들을 그 속에서 아버지의 뜻을 발견함으로써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도 형제를 사랑하려면 예수님의 이 시선을 배워야 합니다. 

 

 

    위대한 형제의 사랑 이야기가 있습니다. 잭 캘리라는 한 신문기자가 소말리아의 비극을 취재하다가 겪은 체험담이 있습니다. 기자 일행이 수도 모가디슈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그때는 기근이 극심한 때였습니다. 기자가 한 마을에 들어갔을 때, 마을 사람들은 모두 죽어있었습니다. 

    그 곳에서 기자는 한 작은 소년을 발견했습니다. 소년은 온몸이 벌레에 물려 있었고, 영양실조에 걸려 배가 불룩했습니다. 머리카락은 빨갛게 변해 있었으며 피부는 백 살이나 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마침 일행 중의 한 사진 기자가 과일 하나를 갖고 있었기에 소년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너무 허약해서 그것을 들 힘이 없었습니다. 기자는 그것을 반으로 잘라서 소년에게 주었습니다. 소년은 그것을 받아서 고맙다는 눈짓을 하더니 마을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기자 일행이 소년의 뒤를 따라갔지만, 소년은 그것을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소년이 마을에 들어섰을 때, 이미 죽은 것처럼 보이는 한 작은 사내아이가 땅바닥에 누워 있었습니다. 아이의 눈은 완전히 감겨 있었습니다. 이 작은 아이는 소년의 동생이었습니다. 소년은 자기 동생 곁에 무릎을 꿇더니 손에 쥐고 있던 과일을 한 입 베어서는 그것을 씹었습니다. 그리고는 동생의 입을 벌리고는 그것을 입 안에 넣어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동생의 턱을 잡고 입을 벌렸다 오므렸다 하면서 동생이 씹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기자 일행은 그 소년이 자기 동생을 위해 보름 동안이나 그렇게 해 온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며칠 뒤 결국 소년은 영양실조로 죽었습니다. 그러나 소년의 동생은 끝내 살아남았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형은 왜 동생을 위해 목숨까지 바친 것일까요? 부모가 같다는 이유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없어도 부모에게 효도하려 합니다. 받은 것이 있기에 나오는 의무감입니다. 이것이 형제간의 사랑을 만들고 가족을 만듭니다. 형은 사실 동생 안에서 부모를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부모와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형이 동생을 위해 목숨을 바칠 일은 없습니다. 형제들은 형제 안에서 부모의 유전자만 발견이 되면 이렇듯 목숨을 바칠 정도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 유전자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누구든 하느님의 뜻을 찾고 그 뜻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안에는 우리 아버지의 유전자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느님을 아버지로 제대로 인정하지 못하고 또 사랑하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만약 부모를 사랑하면 형제를 사랑할 것입니다. 

 

 

    우리도 성당에서 형제님, 자매님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정말 나의 형제요 자매로 생각하고 부르는 것일까요? 어쩌면 친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게 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부모의 뜻은 양식을 통해 들어옵니다. 양식을 함께 먹으면 식구가 됩니다. 그래서 형제들이 식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성당 형제자매들이 혈육의 형제자매보다 덜 형제자매 같다면 어쩌면 우리는 양식을 제대로 먹지 않는 것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먹는 양식, 곧 말씀과 성체는 우리가 같은 유전자(DNA)를 지닌 형제들임을 확증해 줍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족처럼이 아닌 가족이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영화 ‘과속 스캔들’(2008)은 잘나가던 서른여섯 은퇴한 아이돌 스타에게 스물두 살 딸, 그리고 그녀에게서 난 여섯 살 손자가 함께 찾아오며 벌어지는 해프닝을 담았습니다. 차태현은 아직은 잘나가는 연예인이자, 청취율 1위의 인기 라디오 DJ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10대에 사고를 쳐서 자녀가 있고 이미 할아버지라 한다면 그의 인생은 거기서 끝입니다. 그는 딸과 손자를 받아들이기에 너무 잃을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DNA 검사 결과 친자가 확실한 이상 자기가 살겠다고 딸과 손자를 버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는 모든 인기를 포기하고 결국은 가족을 선택합니다.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느닷없이 나타난 아이들의 DNA가 자신과 같기 때문입니다. 차태현도 부모로부터 양식을 먹고 컸기 때문에 부모의 뜻이 그 안에 있어서 자기 뜻대로 양심상 할 수 없습니다. 형제가 서로 싸운다는 말은 그래서 부모로부터 받은 모든 것을 부정하는 행위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서 형제들끼리 서로 갈라져 싸우는 이유는 서로 같은 DNA를 부모로부터 받았음을 거부하는 것이고 그 부모까지 거부하는 것이 됩니다. 우리는 같은 하느님의 성체 성혈을 받아 모시는 사람들입니다. 가족처럼 지내려 노력하지 말고, 가족임을 인정합시다. 한 아버지를 둔 우리들은 가족처럼 지내는 사람들이 아니라 가족입니다. 하느님의 같은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고 그래서 부모가 되신 하느님의 뜻이 같은 유전자를 지닌 우리들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자신의 힘으로는 생겨나지 않던 사랑의 감정이 생깁니다. 먼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 안에서 하느님의 모습, 혹은 하느님의 유전자, 하느님의 뜻을 보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 없이는 온전한 사랑이 실천 되지 못합니다. 자녀들이 부모의 유전자 때문에 서로 사랑하게 되는 것이라면 우리도 사람이 어떻든 간에 하느님의 유전자를 지닌 것으로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https://youtu.be/jcaFp0gMRWY

유튜브 묵상 동영상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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