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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 목요일 주님 봉헌 축일...독서,복음(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3-02-01 조회수354 추천수2 반대(0) 신고

 


교회는 성탄 다음 사십 일째 되는 날, 22일을 주님 성탄과 주님 공현을 마감하는 주님 봉헌 축일로 지낸다. 이 축일은 성모님께서 모세의 율법대로 정결례를 치르시고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하느님께 봉헌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예루살렘에서는 386년부터 이 축일을 지냈으며, 450년에는 여기에 초 봉헌 행렬이 여기에 덧붙여졌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이날을 축성 생활의 날로 제정하여, 주님께 자신을 봉헌한 수도자들을 위한 날로 삼으셨다. 이에 따라 교회는 해마다 맞이하는 이 축성 생활의 날에 수도 성소를 위하여 특별히 기도하고, 축성 생활을 올바로 이해하도록 권고한다.

한편 한국 교회는 ‘Vita Consecrata’축성 생활로 옮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봉헌 생활의 날명칭을 축성 생활의 날로 바꾸었다(주교회의 상임위원회 2019122일 회의)

 

 

 

 

 

 

1독서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말라키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1-4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너희가 좋아하는 계약의 사자
보라, 그가 온다.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2 그가 오는 날을 누가 견디어 내며
그가 나타날 때에 누가 버티고 서 있을 수 있겠느냐?
그는 제련사의 불 같고 염색공의 잿물 같으리라.
3 그는 은 제련사와 정련사처럼 앉아
레위의 자손들을 깨끗하게 하고
그들을 금과 은처럼 정련하여
주님에게 의로운 제물을 바치게 하리라.
4 그러면 유다와 예루살렘의 제물이 옛날처럼,
지난날처럼 주님 마음에 들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복음

<제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2-40
2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23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24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25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26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27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28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29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30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31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32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35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36 한나라는 예언자도 있었는데, 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다.
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37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38 그런데 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39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그들은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40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정결례-속량

22.24절에서는 정결법을,22-23절에서는 속량법을 다룬다. 여기 정결법은 다음과 같다, 남아을 낳은 산부은 40일간, 여아를 낳은 산부는 80일간 불결한 것으로 여겼다. 남아의 산모는 40, 여아의 산모는 80일이 지난 다음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일년생 어린양 한 마리와 비둘기 한 마리를 제물로 바쳐 속죄의 제사를 그려야만 다시 정결하게 되는 것으로 여겼다. 가세가 가난한 때는 제물로 비둘기 한 쌍만 바쳐도 되었다.

 

이를 빈자의 제물이라 하는데 마리아도 그렇게 했다. 출산으로 말미암아 남편이 부정하게 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요셉은 정결례를 치를 필요가 전연 없었는데도 그도 함께 예루살렘에 가서 그 예를 행했다는 식으로 말한다. 맏아들을 속량할 때 부모나 아기가 성전에 가야 한다는 법은 없었다. 그들이 함께 예루살렘에 갔다는 것은 엘가나와 한나가 어린 자식 사무엘을 실로 성전에 바쳤다는 이야기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23

출애 13.3.12.15.

 

24

레위 12.8.

 

25

즈가리야와 아리마태아 요셉과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처럼 시므온도 의로웠다고 한다. 의롭고 경건하다는 다같이 율법을 잘 지킨다는 뜻이다. 위인 탄생에는 흔히 시므온 같은 사람이 나타나 아기의 장래를 예언하는 법, 불교의 원시 경전 숫다니파아타를 보면 석존이 탄생하자 아시타라는 선인이 나타나 아기를 안고 아아가 족에게 이렇게 예언했다 한다, “이 왕자님은 정각의 절정에 이를 것입니다, 이분은 비할 바 없이 훌륭한 청정을 보시고, 많은 사람들이 이익을 도모하고, 불쌍히 생각하는 까닭에 법륜을 돌릴 것입니다.

그의 청정한 뜻과 행동이 널리 퍼질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의 제 여명은 길지 않고 중도에 저에게 죽음이 찾아 올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위로받기를은 직역하면 이스라엘의 위로를인데, 이는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을 뜻한다.

 

26

주님의 그리스도는 하느님이 보내신 메시아라는 뜻이다.

 

29

루카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부르던 노래 세 편을 1,46-55,68-70;2.14에 옮겨실은 바 있다. 이 노래들은 본디 예수님의 구원사건을, 특히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노래 한 것 같은데, 루카는 마치 마리아가 예수 잉태를 노래한 양, 즈가리야가 요한 출생을 노래한 양, 천사들이 예수 탄생을 노래한 양으로 꾸몄다. 이제 29-32절에 또 한편의 노래가 수록되어 있다. 이 노래의 용어, 문체, 보편적 구원사상은 제2 이사야서와 매우 비슷한다.

 

이 노래의 출처를 정확히 밝히기란 어렵다. 다만, 예수님의 구원사건을 두고 민족적 자부심을 지닌 교회,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의 복음을 전한 교회에서 만들어 보른 노래라 하겠다. 아마도 해외 유다인 그리스도교계의 노래였으리라.

 

주재자는 그리스어 데스포테스를 번역한 것인데 이는 생사 대권까지 쥔 절대 지배자라는 뜻이다. 29; 사도 4.24; 묵시 6.10에서는 하느님을, 2베드 2.1; 유다. 4에서는 예수님을 그렇게 부른다.

 

풀어주다는 수게 하다, 죽게 하다, 두 가지 뜻이 있다. 해외 유다인 그리스도교계에서 부른 노래에서는 쉬게하다는 뜻이었으리라. ,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구원사건을 학수고대하느라 몹시 긴장한 유다인들에게 그 일을 이룩해 주시어 이제 쉬게 하신다는 것이다. 마치 주인이 수직 임무를 마친 종을 쉬게 하듯, 그러나 현재의 문맥에서는 시므온이 자기 심정을 토로한 셈이다. 늘그막에 예수님을 뵈었으니 이제 편히 죽을 수 있다는 것이다.

 

30

당신의 구원”, 곧 하느님의 구원은 해외 유다인 노래에서는 예수님의 구원사건을 읊었으나, 현재의 문맥에서는 예수님 자신을 뜻한다.

 

31

이방인들도 구원의 혜택을 입는다는 보편적 구원관이 루카복음에는 여기 313-32절에 처음으로 명백히 나온다.

 

34

시므온의 예언은 유다인들 가운데 더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지만 대부분은 배척한 역사적 체험을 참작하여 루카가 창작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된 유다인들은 구원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은 멸망할 것이다. 후자가 전자보다 훨씬 많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배척당하는 표징이 되셨다. 사실 예수님은 하느님을 암시하는 상징이셨다. 불행히도 유다인들 절대다수는 연약한 상징만 보았지 상징의 크나큰 뜻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35

마리아가 혹독한 고통을 겪는 까닭은 이스라엘 백성 대부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여 멸망을 자초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것은 숨은 생각, 곧 믿지 않는 마음을 드러낸 것이다.

 

36

예언자 시므온에 이어 예언녀 안나가 나오는데 루카는 종종 남녀를 차례로 등장시키곤 한다.

 

37

1세기에는 교회에서 공인한 과부단이 있었는데, 루카는 안나의 삶을 그 과부들의 귀감으로 제시한 것 같다.

 

과부 된 지 여든네 해일 수도 있고 처녀생활, 결혼생활을 과부생활을 다 합쳐 여든네 해일 수도 있다.

 

38

직역하면 예루살렘의 속량을”, “예루살렘의 속량이스라엘의 위로”(25)와 같이 메시아의 구원을 뜻한다.

 

40

요한의 성장 실태와 병행하여(1.80) 예수님의 성장 실태를 서술한다(40.52).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나는 선악과인가? 법을 다루는 기관에서 잘잘못을 따져 집행을 하였으니까.

하지만 나는 겉모습은 먹음직스럽게는 생기지 않았으니 선악과는 면한셈이다.

그리고 만약에 결혼을 한다면 반려자도 먹음직스럽게 생기지 않아야 한다.

그러니 아름다운 여인을 보면 그저 바라만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아름다워도 거룩함이 없다면 선악과의 모습은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그런데 예수님 이후에는 이러한 선악과 문제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용서하라시는 예수님. 사랑하라시는 예수님. 이럴진데 하느님 말씀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어서 에덴동산에서 쫓겨 나오게된 우리들은 예수님 오신 이후에는 그분 말씀을 믿는 나도 어찌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겠는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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