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3.02.04)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3-02-04 조회수962 추천수7 반대(0) 신고

 

2023년 2월 4일

연중 제4주간 토요일

복음 마르 6,30-34

그때에 30 사도들이 예수님께 모여 와,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다 보고하였다.

31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

32 그래서 그들은 따로 배를 타고

외딴곳으로 떠나갔다.

33 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모든 고을에서 나와 육로로 함께 달려가

그들보다 먼저 그곳에 다다랐다.

34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책을 읽다가 친구와 전화하는

이런 대화 내용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여보세요?”, “응, 너구나.

요즘 어떻게 지내니?”

“좋아, 넌 어때?”, “사실 엉망진창이야.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글쎄 암이라는 거야.”

“그래? 뭐 새로운 소식은 없고?”

설마 이렇게 대화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현대인에게 이런 모습을 어렵지 않게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즉, 남의 말은

전혀 듣지 않으면서 자기 말만 하는

사람입니다. 예전에 어린 학생들과

노래방에 갔던 적이 있습니다.

이 학생들은 제게 이렇게 말하면서

마이크를 넘겼습니다.

“신부님이 먼저 한 곡 불러주세요.”

노래를 선곡해서 부르는 데, 아무도

제 노래를 들어주지 않습니다.

모두 자기 노래를 선곡하느라 바빴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들어주지 않는 노래를

왜 부르고 있는가 싶어서 정지 버튼을

누르고 마이크를 넘겨주었습니다.

그 뒤 노래를 부르기보다 열심히

학생들의 노래를 들어주었고

열심히 손뼉을 쳐주었습니다.

저의 경우는 남이 노래를 들어주지 않으면

굳이 부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요즘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남이 듣든 말든 상관없이 자기만

노래 부르면 된다는 식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대화도 그랬던 것일까요?

들어주지 않는 말의 홍수 속에서

외로워하는 사람이 늘어날 뿐입니다.

따라서 스스로 생각해보십시오.

만약 내가 한 말만 기억나고,

남이 했던 말이 기억나지 않는다면

나 역시도 듣지 않는 사람입니다.

인간관계의 시작은

내가 말하는 것에서가 아니라,

남의 말을 들어주는 데서 이루어집니다.

주님께서도 우리와의 관계를 더 좋게

하시려고 직접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않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대신 우리의 말을, 어떤 말이든

상관없이 모두 들어주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곁에는 늘 많은 사람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요구사항의 말을 가지고 있었지요.

육체적인 아픔을 해결해달라는 말,

마귀를 쫓아 달라는 말, 영적 부족을

채워줄 수 있도록 해달라는 말….그 밖의

많은 청원의 말로 예수님과 제자들은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을 물리치지 않으십니다.

가엾은 마음, 바로 사랑하는 마음에

그들의 모든 말들을 들어주셨던 것입니다.

주님의 이 모범을 따라, 우리 역시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 말만 주저리주저리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의 말을 잘 경청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과 우리의 사랑 관계처럼,

나의 이웃과도 사랑의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미래가 있다는 말은 영원하다는 의미로,

황금기가 올 거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바로 오늘을 ‘사랑’하겠다는 허락,

자유, 인내를 뜻합니다(테리 허쉬)

(그들은 목자 없는 양들 같았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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