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5주간 토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3-02-10 조회수793 추천수9 반대(0)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연인들의 대화는 신선하고, 달달합니다. 너무 달달하다 못해 닭살이 돋기도 합니다. 멀리 출장을 떠난 연인에게 자기 어디에 있어!”라고 묻습니다. 그러면 어떤 대답이 정답일까요? ‘응 난 늘 자기 마음에 있어가 정답이 아닐까요? 연인은 사랑하는 사람이 출장을 어디로 간 것이 궁금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어디에 있어도 사랑이 변치 않기를 바랄 것입니다. 어디에 있든지 마음에는 사랑하는 이가 있기를 바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제게 가브리엘 너 어디에 있느냐?”라고 물으신다면 그 정답은 저는 뉴욕에 있습니다.”는 아닐 것 같습니다. 정답은 저는 주님과 함께 있습니다.”가 아닐까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둘이나 셋이 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겠다.” 예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그 사랑은 성체성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성체의 모습으로 현존하시는 예수님을 모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셔서 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오늘 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아담아 너 어디에 있느냐?”라고 묻습니다. 우주를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아담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묻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아담아 너는 무슨 일을 하였느냐?”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의 질문에 아담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변명을 합니다. “제가 알몸이라서 숨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또 묻습니다. “네가 알몸인 것을 어찌 알았느냐?” 아담은 또 변명을 합니다. “하느님께서 짝으로 주신 이 여인이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열매를 먹고 나니 제가 알몸인 것을 알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여인에게도 묻습니다. “너는 어찌하여 열매를 먹었느냐?” 여인도 변명을 하였습니다. “뱀이 저 열매를 먹으면 하느님과 같아진다고 해서 먹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변명을 하는 아담에게 책임을 묻습니다. 그리고 땀을 흘려 노동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변명을 하는 여인에게도 책임을 묻습니다. 그리고 출산의 고통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며칠 동안 먹지 못해서 굶주린 백성들을 측은하게 생각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너희가 가진 것이 있느냐?” 제자들은 예수님께 대답합니다. “보리떡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묻습니다. “몇 개나 있느냐?” 제자들은 대답합니다. “일곱 개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나병환자는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중풍병자도 걷게 하셨습니다. 죽은 아이도 살리셨습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무엇을 가졌는지 모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가진 것을 나눌 수 있는지 묻는 것입니다. 어쩌면 예수님의 질문은 너희가 가진 보리떡 일곱 개를 기꺼이 나눌 수 있느냐?”가 아닐까요?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기꺼이 자신들이 가졌던 보리 떡 일곱 개를 나누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보리떡을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굶주린 백성 4000명이 충분히 먹고도 일곱 바구니가 남았습니다. 제자들에게는 이 체험이 아주 강했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로 5000명이 충분히 먹고 열두 바구니가 남았다고도 했습니다. 보리떡이 몇 개냐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몇 명이 충분히 먹었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몇 바구니가 남았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제자들이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눈 것입니다.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분열과 갈등을 키우는 것은 자신의 책임을 미루고, 남에게 전가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아담이 책임을 하와에게 미루지 않았다면, 하와가 책임을 뱀에게 돌리지 않았다면 하느님께서는 용서해 주셨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자비로우시고, 사랑이 넘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용서는 회개를 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에게 용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같은 잘못을 반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눔은 우리를 하느님께로 이끌어주는 인생의 나침반입니다. 나눔은 나뿐만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을 하느님께로 이끌어 주는 내비게이션입니다. 예수님의 삶은 아낌없이 모든 것을 내어주는 비움의 삶, 나눔의 삶이셨습니다.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처럼 천국에서 빛을 내는 모든 성인 성녀들은 바로 비움의 삶, 나눔의 삶을 사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변명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나눔입니다. 변명에는 책임이 주어지지만 나눔에는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