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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 영근 신부님의 복음 묵상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3-02-12 조회수431 추천수3 반대(0) 신고

230212. 연중 제 6주일.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마태 5,23-24)
 

오늘 <말씀전례>의 주제는 “주님의 지혜‘입니다.
 
<제1독서>에서, ‘주님의 지혜’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참으로 주님의 지혜는 위대하니 그분께서는 능력이 넘치시고 모든 것을 보신다.”(집회15,18)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주님의 지혜’를 “세상이 시작되기 전, 하느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미리 정하신 지혜”(1코린 2,7)로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주셨다.”(1코린 2,9)고 말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지혜’는 <복음>에서 ‘율법의 완성’으로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것으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 5,17)
 
사실, 히브리인들은 시나이 율법을 통하여 하느님과 관계를 맺고 하느님의 백성, 거룩한(의로운) 백성이 됩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느님과 맺었던 십계명은 차차 613항으로 늘어났고, 그들의 삶을 율법으로 옭아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초기부터 안식일법, 정결법, 단식법 등을 통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과 논쟁을 하며 대립되었고, 마치 율법의 거부자 혹은 파괴자로 여겨졌습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율법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도록,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감시자 노릇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온 뒤로 우리는 더 이상 감시자 아래에 있지 않습니다.”(갈라 3,34-35)
 
그렇다면, 대체 ‘율법의 완성’은 어디에서 이루어지는 것일까?
 
<제1독서>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원하기만 하면 계명을 지킬 수 있으니, 충실하게 사는 것은 네 뜻에 달려 있다.”(집회 15,15)
 
그리고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이 계명들 가운데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으로 불릴 것이다.”(마태 5,19)
 
이는 율법은 지켜질 때라야, 비로소 그 ‘행위’ 안에서 성취된다는 말씀입니다. 곧 알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말로만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에게서 ‘율법이 완성’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하는 것이 곧 계명을 주신 분을 사랑하는 일이 됩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내 계명을 받아들이고 지키는 사람이 바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요한 14,21)라고 하고,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든지 그분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 안에서는 참으로 하느님의 사랑이 완성됩니다.”(1요한 2,5)
 
그렇습니다. 결국, 사랑이 율법을 완성합니다. 곧 ‘사랑’이야말로, 옛 율법을 완성하는 ‘새로운 의로움’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태 5,20)
 
이 ‘새로운 의로움’을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여섯 가지로 제시하십니다. 오늘 <복음>은 그 중 첫 번째에서 네 번째 의로움에 대한 말씀입니다. 곧 살인, 간음, 이혼, 맹세에 대한 옛 율법을 넘어서는 ‘새로운 의로움’에 대한 말씀입니다.
 
<첫째> 의로움에서 ‘실인’에 대한 것으로 외적 행동의 의로움을 넘어서, 죄의 뿌리인 내적 지향의 의로움을 말씀하십니다. 동시에 율법의 본질이 ‘화해’에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마태 5,23-24)
 
<둘째와 셋째> 의로움에서도 ‘간음’의 내적 뿌리가 마음에 있음과 이혼이 불륜을 불러오는 뿌리라고 말하면서, 죄를 뿌리에서부터 잘라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곧 죄를 불러오는 마음의 눈과 손을 잘라버리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네 눈이 맑으면 온몸도 환하다.”(마태 6,22)
 
<넷째> 의로움은 ‘맹세’에 대한 것으로, 예수님께서는 거짓 맹세뿐만 아니라, “아예 맹세하지 마라”(마태 5,34)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느님만이 자신을 보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진리인 것이 아니라, 단지 진리에 응답하는 사람들이기에 “예”할 것은 “예”(ναι ναι)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οû οû)라고 응답하라고 하십니다. 곧 응답하되 맹세가 아니라 행동으로 응답하고, 행동하되 진리 안에서 행동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이렇게 권고합니다.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하십시다.”(1요한 3,18)
 
그러니 행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것은 우리의 응답 곧 원의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제1독서>의 말씀을 되새겨 봅니다.
 
“네가 원하기만 하면 계명을 지킬 수 있으니, 충실하게 사는 것은 네 뜻에 달려 있다.”(집회 15,15).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마태 5,19)
 
주님!
제 안에 새겨진 사랑의 법이 제 행동의 뿌리가 되게 하소서!
제가 행동으로 가르치게 하시고,
가르친 바를 행동으로 파괴하지 않게 하소서!
말이 아니라, 행실로 사랑하게 하시고
작은 일에도 사랑을 담아 행하게 하소서.
행실로 사랑하되, 진리 안에서 사랑하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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