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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6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작성자김종업로마노 쪽지 캡슐 작성일2023-02-13 조회수331 추천수2 반대(0) 신고

 


 

 

2023년 02월 13일 월요일

[연중 제6주간 월요일오늘의 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오늘 제1독서에는 두 형제가 주님께 각자의 소출을 바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카인의 곡식과 달리 아벨의 봉헌(奉獻)물에 눈을 두셨습니다.

주님께서 왜 이렇게 하셨을까 궁금합니다.

이를 두고 어떤 이들은 차별을 말합니다카인이 희생자라고 생각합니다.

불의한 듯이 보이는 하느님의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가장 잦은 시도는 히브리서의 논리를 따르는 것입니다.

아벨이 카인보다 더 훌륭한 제물을 바쳤다는 것입니다(히브 11,4 참조).

또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되짚으며 하느님의 행위에 반영하였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목축업을가나안 민족들은 농업을 기반으로 살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우월을 강조하고자 카인(농업)보다 아벨(목축)의 봉헌을 하느님께서 선호하셨을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그런데 아벨의 봉헌물이 카인의 것보다 낫지 않았는데도 받으셨다면 주님은 불의한 분이 되시는 것은 아닐까요?

하와는 첫 아기를 낳고 내가 주님과 함께 한 사람을 얻었다.”(창세 4,1의 직역)라며

카인이라고 부르며 무척 소중히 여긴 듯합니다.

반면에 아벨에 대하여는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은 듯합니다.

아벨은 부모의 아들로 제시되기보다는 카인의 동생으로 덧붙여진 사람으로 소개됩니다(창세 4,2 참조).

이렇게 우리 앞에 대조되는 두 아들이 있습니다.

어머니의 열망이 반영된하느님과 함께 얻은 카인과 그와 비교할 바 못되는 아벨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와의 두 가지 불의를 봅니다.

카인에게 쏟은 과도한 애정(愛情)과 아벨에게 보인 무관심 또는 무정(無情)입니다.

어머니에게 지대한 관심과 소유의 열망을 받고 있는 카인과 달리

아무런 관심도 애정도 받지 못하는 아벨의 선물을 하느님께서 받아 주심은,

어쩌면 차별당한 불의한 아들 아벨에게 하느님 편에서 베푸실 수 있는 보상이 아닐까요?

아벨이 여전히 하느님 앞에 또 사람들 앞에 존재함을 인정하시는 하느님의 행위가 아닐까요?

하느님께서 아벨의 선물을 받으시자 이제껏 연기처럼 존재하던 아벨이 드러나게 되고

카인은 그의 옆에 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처럼 성경의 첫 형제는 형제애를 이루는 데 실패합니다.

사실 성경은 단 한 번도 카인을 아벨의 형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아벨의 경우는 카인의 동생이라고 일곱 번이나 말합니다(4,2.8.9.10.11 참조).

우리는 주님 앞에서 형제애를 이루려고 애쓰고 있습니까?

소유와 질투의 욕망으로 형제를 잃지 않도록 자신의 마음을 살핍시다.

 

(정용진 요셉 신부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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