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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앙수기 입선은 안 됐지만 '사랑하는 누나를 위해'라는 제목으로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3-02-16 조회수346 추천수1 반대(0) 신고

 

저는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사람입니다. 이제 만 11년이 지났습니다. 개종 후에 처음에는 가톨릭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들 때문에 개종한 것에 대해 만족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 느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개신교로 갈까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렇게 고민만 하며 방황한 시간이 꽤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다시 개신교로 되돌아가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는 성모신심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성모님 때문에 갈 수 없었습니다. 개종 후 가지고 있는 성물도 많이 있는데 만약 개종을 한다면 버려야 할 성물이 많이 있는 가운데 다른 건 몰라도 성모님과 관련된 성물만은 버리기가 힘들 것 같았습니다. 설령 없애버린다고 해도 개종 후에 성모님이 많이 생각날 것 같았습니다. 성모님을 몰랐다면 모를까 안 이상은 그럴 것 같았습니다. 다시 말씀드려 제가 성모신심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성모님 이전에 이제 돌아가신 지 5년이 지났지만 제 육신의 어머니를 아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제 사례를 통해서 모든 경우를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육신의 어머니를 사랑하는 사람은 성모님을 사랑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상식일 겁니다. 분명 다시 개종을 했으면 이것 때문에 또 많은 고민을 했을 겁니다. 제 성격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마음 한 구석에는 늘 성모님이 생각났을 겁니다. 이것 때문에 어려움이 있어도 개종을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저를 아껴준 분들의 사랑 때문입니다. 형제님들도 아껴주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특히나 저는 자매님들이 더 많습니다. 왠지는 모르지만 어려서부터 집안이 불교 집안이라 부모님 따라 절에 가도 많은 보살님들이 특히나 좋아해주셨습니다. 개신교에서도 그렇고 아무튼 다양한 종교를 거치면서 그 종교에 몸담고 있는 자매님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은 게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종교라는 명목으로 종교 생활을 한 것을 되돌아보면 그 종교에서 말하는 종교적인 가르침과 교리도 중요했지만 저에게는 그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 종교를 떠나지 못하게 잡아두는 구심점 같은 게 있었습니다. 바로 인간적인 사랑인 형제애입니다. 설령 그 종교가 사이비라고 해도 저는 그럴 것 같습니다.

 

바로 이 사랑이 오늘의 저를 다시 가톨릭 안에 있도록 붙잡아준 것입니다. 물론 저를 아껴주시는 여러 자매님들이 계시지만 제가 항상 개종이나 다른 본당으로 교적을 옮기려는 고민을 해도 할 수가 없었던 자매님이 한 분 계십니다. 성모님 다음으로 그 자매님 생각에 그런 고민을 이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매님이라고 표현을 하지만 제 마음에는 항상 사랑하는 누나로 생각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이성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바로 형재애로서의 사랑입니다. 사실 제가 누나라고 표현을 했지만 세상적으로 보면 누나라고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저와는 연배가 많이 차이 나는 자매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마음에는 누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그 자매님에 대한 저의 사랑은 애틋합니다.

 

그랬던 자매님이 올봄에 암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우연히 알았습니다. 제 경우에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카리스마가 조금 있어서 쉽게 잘 다가가기가 힘든 부분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고맙게 생각하는 분이고, 용기가 없어서도 그렇고, 또 실제로 누나라고 부르기엔 그분도 조금은 부담스러울 것 같아 어쩌다가 가끔 문자에서만 누나라고 합니다. 그랬던 자매님이 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을 우연히 다른 자매님을 통해서 알았습니다. 만약 그때 알지 못했더라면 지금까지도 모르고 지냈을 수도 있습니다.

 

지난 4월에 성가대원으로 활동을 하시는지라 한 번은 본당에 다른 사정이 있어서 주일에 신부님께서 성가대부터 영성체를 하도록 말씀하셨습니다. 그날 본당에 가면서 본당 마당에 마침 자매님 차도 없었고 또 영성체 때 보니 자매님이 보이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거의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주일 교중미사 때 빠지지 않는 분이라 그냥 다른 중요한 집안일이나 경조사 때문에 안 보이시는 줄 알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그날은 미사 참례 후 집으로 돌아가면서 소식이 궁금해 이 자매님과 잘 알고 지내는 다른 자매님께 혹시나 해서 안부를 여쭤봤습니다. 사실 이에 앞서 암 진단을 받은 자매님께도 문자를 먼저 보냈던 것입니다.

 

저는 문자를 해도 답장이 올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왠지 답장이 왔습니다. 제가 오늘 안 보이셔서 궁금해 문자를 했다는 것과 항상 자매님을 위해서 기도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답장이 와 조금은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그런 문자에 답장을 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차에 그 자매님과 잘 지내는 자매님으로부터 서울에서 암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 기도를 부탁한다는 내용의 문자를 받았던 것입니다. 이 문자를 귀가 중에 받았습니다. 문자를 보고 거짓말 조금도 하지 않고 딱 5초 정도 지나서 제 눈에 눈물이 맺혔습니다. 그때도 생각했지만 제가 배우도 아닌데 이런 상황에서 눈물이 나왔다는 것은 평소 저도 제 자신이 몰랐지만 얼마나 끔찍이 이 자매님에 대해 깊은 애정으로 형재자매로서 나누는 사랑이 컸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문자를 받고 저는 의문이 풀렸던 것입니다.

 

평소 같으면 문자에 잘 답장을 하시지 않으시는데 그날은 왜 답장을 하셨는지 말입니다. 그렇다고 이분이 답장을 잘 하시지 않는다고 해서 무례하신 건 아닙니다. 제가 워낙 애교가 섞인 내용으로 문자를 보내드리니 아마도 쑥쓰러워서셔 하시지 못하셨을 겁니다. 저는 그날 다른 자매님을 통해서 암 진단을 받고 지금 수술을 앞두고 계신다는 내용을 알았기 때문에 수술 잘 되시기를 기도하겠다는 내용과 힘내시라는 내용으로 문자를 보내드렸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도 할 것 없이 9일 기도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가 투병하실 때 2년 동안 9일 기도를 꾸준히 했고 어머니 외에 다른 분을 위해 9일 기도를 하려고 한 건 이 자매님이 두 번째입니다. 49일부터 기도에 들어갔습니다. 혹시나 실수하지 않기위해 54일 기도앱을 폰에 설치하고 보니 마치는 날이 61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통상하는 9일 기도만 하려고 했습니다.

 

며칠 하다가 기도의 방식을 조금 수정하기로 했습니다. 본당에 계신 다른 분들이 만약 이런 사실을 안다면 약간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기도를 해 준다는 것은 참 좋은 일임에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기도를 해 주는 사람과 기도를 받는 사람과의 관계도 살펴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땐 제가 어쩌면 유별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저도 그냥 그 자매님을 본당 내 한 교우 정도로만 생각한다면 굳이 9일기도까지 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저는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것도 작은 선행이라면 그 선행을 공개적으로 알리려고 하는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복음의 원리대로라면 이게 제가 설령 그런 의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미 이 지상에서 받을 상을 다 받은 것과 같습니다. 수기를 통해서 이런 사실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저의 사례가 타산지석이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한 것입니다.

 

처음 그분의 건강 상태를 알려주신 자매님께 투병하시는 자매님을 위해 기도 열심히 하겠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드리니 "베드로씨, 은총 많이 받으시길 바란다"고 하시는 문자를 보내주셨습니다. 이 문자를 받고서 자매님께 문자를 보냈습니다. 이 자매님도 제가 간혹 누나라고 합니다. 답장을 이렇게 했습니다. "누나! 감사합니다. 저는 하느님으로부터 은총을 받기 위해서 기도를 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렇다고 하느님의 은총을 거부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하느님의 은총을 제가 받는 것보다 누나가 완쾌되는 게 먼저입니다. 누나가 완쾌만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만족할 겁니다." 제가 투병하는 누나에게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 또 남에 대해서 이야기를 종종하게 됩니다. 저는 이걸 강조하고 싶습니다. 평소에 따뜻한 말 한마디를 했을 뿐인데 그것도 어떤 대가를 바라고 한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생각지도 못한 것으로 자기에게 부메랑이 되어 자기가 한 말에 대해 하느님의 은총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그 누나를 위해 기도를 했다고 해서 제가 하느님의 은총의 통로가 됐다고는 말씀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대단한 사람이라서 그런 기도를 한 게 아니고 그 누나가 그런 기도를 제가 하지 않으면 안 되게끔 누나가 먼저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을 누군가는 그게 사랑인지도 모르고 그냥 지나쳐 버릴 사람도 있겠지만 저한테는 잊을 수 없는 사랑이었습니다. 영세를 받고 본당에서 몇 년간 복사를 줄기차게 열심히 잘 섰습니다. 어느 날 오전 낮 미사 때 언제 한번 '우리 본당 보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보물은 아닙니다. 저처럼 많이 부족한 사람에게 그렇게 생각해 주시는 분이 있어서 저에게는 그게 시간이 지나면서 감사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또 한 번은 미사 후에 종을 은혜롭게 잘 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종소리를 은혜롭게 하기 위해서 성전에서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연습을 한 보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믿지 않는 가정에서 성당에 나오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원래 절에 다니셨는데 제가 뇌경색으로 투병하실 때 그때 가족 몰래 대세를 부산에서 수녀님으로부터 받게 해드려 우여곡절 끝에 장례미사를 할 수 있게 돼서 하느님께 은혜롭게 보내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런 사정을 아시는 분이시고 또 제가 그동안 성당에서 한 모습 때문에 그랬는지는 몰라도 어머니 장례미사 때 저를 생각해 열심히 성가를 불러주셨다고 미사 후에 잠시 말씀해 주셨습니다. 장지에 가면서 자매님께 감사함을 문자로 전했습니다.

 

이런 고마움을 저는 항상 마음속에 품고 잊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일부 교우님들은 저의 신앙이 비실한 신앙이라고 손가락질까지는 아니더라도 말씀을 하시는 경우도 있지만 그 자매님은 그런 저를 좋게 봐 주시니 제가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부족하기 그지없지만 말입니다. 그런 분이니 항상 주일미사 때 영성체 시간에 성체를 영하고 제자리로 돌아올 때 항상 성가대를 바라봅니다. 누나는 모르겠지만 저는 제일 먼저 누나를 봅니다.

 

왜 누나를 제일 먼저 볼까요? 바로 그게 제가 누나에게 해 줄 수 있는 저의 작은 애정과 관심이었기 때문입니다. 앞에도 언급을 했지만 제가 연기자도 아닌데 문자를 보고 딱 5초 지나서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습니다. 피를 나눈 형제는 아니지만 순간 가슴이 미어지는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그냥 가슴 아픈 사실을 알았던 그런 정도를 넘어섰습니다.

 

9일기도를 3일 정도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났습니다. 9일기도가 어떤 기도라는 것은 이미 익히 잘 알고 있기는 하지만, 왠지 제 믿음과 신앙이 부실하면 제가 드리는 기도의 힘도 약해서 천상의 하느님께 잘 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작은 9일기도가 하느님으로부터 응답을 잘 받기 위한 수단으로 지원사격을 해 줄 수 있는 다른 기도를 추가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9일기도는 9일기도대로 하고 따로 묵주기도를 하루에 50단 바치기로 했던 것입니다. 54일 기도를 하니 2970단이 되는 것입니다. 30단 더 추가해서 3000단 봉헌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느님께 잘 상달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 매일 50단을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보통 많이 하는 날에는 80단을 했습니다. 기도를 마치는 날 이틀 전에는 100단까지도 하루에 바쳐봤습니다. 그렇게 해서 3000단을 봉헌했는데 하다가 분심이 들면 그건 무조건 제외했습니다. 다시 처음 묵주기도 그 단부터 다시 했습니다.

 

성모찬송도 어떤 경우는 다 암송을 해서 하기 때문에 간혹 기도문이 막힐 때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에도 처음부터 다시 했습니다. 기도를 하면서 원칙 하나를 정했던 것이 있습니다. 가능하면 순전히 집중해서 3000단을 봉헌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몇 번은 목이 쉬어서 아팠던 날도 있습니다. 그때 잠시 기도를 쉬면서 하느님께 화살기도를 올렸습니다. "하느님, 예수님, 목이 조금 아프기는 아프지만 그래도 괜찮아요. 잠시 물 한 잔을 마시고 할 겁니다. 혹여라도 제가 기도를 하면서 목이 아픈 이 작은 고통을 지금 투병하는 누나에게 고통이 있다면 목이 아픈 제 이 고통으로 제가 대신 보속하는 마음으로 봉헌하겠습니다. 이 봉헌을 어여삐 여기시셔서 부디 받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화살기도를 올리는데 그냥 눈물이 흘렀습니다. 아마도 진심으로 누나가 아픈 것이 제 가슴엔 너무나도 가슴 아픈 현실이라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날은 자면서 누나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 베게가 젖을 정도로 울었던 날도 있었습니다. 예전에 우리 조상들이 뭔가 기도를 하면 기도를 하는 동안에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하는 것이 떠올랐습니다. 기도를 하는 중에는 가능하면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매혹적인 여성이 지나가도 눈을 아래로 돌렸습니다. 솔직히 고백한다면 기도를 하지 않았더라면 눈이 돌아갔을 겁니다. 처음엔 저도 모르게 돌아갔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 순간 마음을 바로잡았습니다. 기도 중에 순수한 마음이 없으면 기도의 효력이 없을까 봐 길을 가도 가능하면 길바닥만 보고 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눈물겨운 노력을 했던 것입니다. 매번 매단 묵주기도를 할 때 지향도 매번 다 넣었습니다. 평균적으로 하루에 50단을 제 일을 하면서 틈틈이 시간을 쪼개어서 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약간 힘이 든 것은 사실이지만 누나가 제 기도로 만약 완쾌되는 치유의 기적이 일어난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힘을 내서 인내를 가지고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때에도 억지로 뭔가를 채우는 느낌으로 하면 기도의 순수성이 떨어질 것 같아서 누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거라고 하면서 제 마음을 다독였던 것입니다. 사실 누나를 위해 순수한 마음에서 한 건 추호의 거짓도 없겠지만 제 의도와 상관없이 만약 하느님께서 저에게 은총을 내려주신다면 그 은총도 누나에게 되돌아가 누나가 치유되는 은총으로 변화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하염없이 하느님께 화살기도도 열심히 했습니다.

 

제 기도가 얼마나 누나가 투병하는 데에 도움이 될지는 잘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기도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누나가 저에게 보내준 사랑이 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잊지 않고 그 은혜를 갚고 싶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작은 사랑을 준 게 그 누군가는 절대 잊을 수 없는 사랑으로 영원히 가슴에 기억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들이 이런 사랑을 하기를 하늘에서 바라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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