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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9 연중 제7주일...독서,복음(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3-02-18 조회수392 추천수0 반대(0) 신고

 

1독서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레위기의 말씀입니다. 19,1-2.17-18
1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2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에게 일러라.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17 너희는 마음속으로 형제를 미워해서는 안 된다.
동족의 잘못을 서슴없이 꾸짖어야 한다.
그래야 너희가 그 사람 때문에 죄를 짊어지지 않는다.
18 너희는 동포에게 앙갚음하거나 앙심을 품어서는 안 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나는 주님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2독서

<모든 것이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3,16-23
형제 여러분,
16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17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느님께서도 그자를 파멸시키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은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18 아무도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가운데 자기가 이 세상에서 지혜로운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가 지혜롭게 되기 위해서는 어리석은 이가 되어야 합니다.
19 이 세상의 지혜가 하느님께는 어리석음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지혜롭다는 자들을 그들의 꾀로 붙잡으신다.”
20 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지혜롭다는 자들의 생각을 아신다. 그것이 허황됨을 아신다.”

 

21 그러므로 아무도 인간을 두고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사실 모든 것이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22 바오로도 아폴로도 케파도, 세상도 생명도 죽음도,
현재도 미래도 다 23 그리고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감사합니다.

 

 

 

주해

16

여러분은 하느님의 성전이요, ... 성전을 파괴하면 ...”이라는 문장에서 여러분이라는 말로 바오로는 공동체의 구성원 각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인 공동체전체를 염두에 두고 있다. 고린토 공동체가 세상의 지혜를 앞세우고 파당을 이루며 분열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는 맥락을 감안할 때 더욱더 그렇다. 12,12-27에서 바오로는 신앙 공동체를 하느님의 성전이라느 표현에서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부른다. 여기 16절에서와는 달리 6.19에서 바오로는 음행을 피하라는

 

권고를 하면서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 안에 있는 성령의 성전이다라고 한다, 쿰란 공동체에서도 자신들의 공동체를 하느님의 성전이라고 칭하곤 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이 만남의 장막안에 또는 시온 산 위의 성전 지성소에 현존하면서 당신 백성과 함께 계시다고 믿었다.

 

18

역설적인 표현이다. 이 말로써 바오로의 사람들이 모든 지성적 활동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바오로는 다만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느님의 지혜는 세상 지혜의 기준으로는 어리석음으로 보이는 십자가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에만 깨달을 수 있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따라서 바오로에 의하면 인간이 참으로 지혜롭기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인간적 지식의 한계성을 깨닫고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의 최종적 근원인 하느님과 결합해야 하는 것이다.

 

21

21-23절을 풀어 말하자면, 바오로 편이니 아폴로 편이니 게파 편이니 하며 갈라진 코린토 그리스도인들에게 바오로는 대답한다. 아니, 정반대다. 여러분이 바오로나 아폴로나 베드로에게 속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같은 하느님의 일꾼으로 여러분을 위한 봉사자들이니 여러분에게 속애 있다. 나아가 여러분은 그리스도께 그리스도는 하느님께 속해 있다.

 

 

 

 

 

 

 

 

 

 

복음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38-4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8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39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40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41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42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43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4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45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46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47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39

병행문 루카 6,29ㄱ에서는 오른쪽 왼쪽 구별 없이 그냥 당신한테 (한쪽) 뺨을 치는 이에게는 다른쪽마저 내미시오”. 이렇게 사는 그리스도인인 있을까? 흥부가 형수에게 밥주걱으로 뺨을 얻어맞자 다른쪽 뺨마저 돌려댔다는 이야기가 있으니 오히려 비그리스도인이 실천했다고나 할까.

 

40

채권자가 소송을 제기해서 채무자의 속옷을 가지려 하거든 겉옷마저 얹어주라는 말씀이다. “이웃에게서 겉옷을 담보로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반드시 돌려주어야 한다는 극빈자보호법이 있어 법적으로는 겉옷을 빼앗을 수 없었다. 빈자의 겉옷은 밤에 이불 구실을 했다. 병행문 루카 6,29ㄴ에서는 채권자에게 속옷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고 강도에게 겉옷을 빼앗기는 상황을 전제한다. “당신의 겉옷을 빼앗는 이에게는 속옷마저 거절하지 마시오.”

 

41

로마 군인이나 관리들이 짐꾼이나 길잡이로 부리려고 유다인들을 강제로 징발한 상황을 전제한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간 키레네 사람 시몬을 보라.

 

42

청하는 사람은 물건을 청하고 꾸려는 사람은 돈을 꾸려는 것인가청하는 사람은 이스라엘 헤브론, 이집트멤피스의 지긋지긋한 거지떼 같은 부류인가? 병행문 루카 6.30은 더욱 심각한 상황을 전제한다. ”당신한테 청하는 모두에게 주고 당신 것들을 빼앗는 이한테서는 되찾지 마시오.“ 이 말씀 후반부에서는 분명히 강도에게 강탈당한 경우를 말한다.

 

44

44절의 원수들은 마태오 교회를 박해하는 사람들이니 종교적 차원의 원수들이다.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아들들이 될 것이다. 마치 지금 평화를 이룩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장차 하느님의 아들들이라 일컬어지듯이, 원수 사랑을 뒷받침하려고 창조주의 한없는 선하심을 드러내는 사례 두 가지를 꼽는다. 이스라엘 지혜문학에서 곧잘 창조주의 선하신 성품을 거론했다.

 

46

끼리끼리 사랑하고 인사하는 것은 어느 집단에서고 볼 수 있는 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다. 직업상 죄인인 세관원들과 인종상 죄인인 이방인조차 끼리끼리 사랑하고 인사할 줄 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네 공동체에 속하지 않은 이질적인 사람들과도 사랑과 인사를 나누어야 한다. 이것이 넘치는 일이다. 이런 삶이야말로 율사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보다 넘치는 의로움이다.

 

46-47절에서는 직업상 죄인인 세관원들과 인종상 죄인인 이방인들을 몹시 경멸한다. 본디 유다교에서 직업. 인종. 차별 이념을 발전시켰다, 불행하게도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은 일찍이 직업, 인종 차별 이념을 수용하여 저런 발설을 했고 그 말씀이 먼저 어록에 기록되고 마침내 마태 5,46-47에 들어왔다.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의 직업,인종차별 이념과는 매우 대조적으로 예수님은 종종 이방인들을 받아들이셨고, 세관원들 및 죄인들과는 친구로 지내셨다.

 

48

48절은 원수 사랑 대당명제의 결론일 뿐 아니라 여섯가지 대당명제 전제의 결론이다. 병행문 루카 6.36에서는 여러분의 아버지께서 어지신 대로 여러분도 어질게 되시오라 하는데, 이는 어록의 형태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여기의 하느님 모방 사상은 나 야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게 되어라의 영향으로 생겨났을 것이다.

 

마태오는 어록의 말씀을 옮겨쓰면서 어질다형용사 대신 완전하다형용사를 사용하여 여러분의 하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여러분도 완전해야 합니다라고 개작했다. 여기서 완전하다는 것은 덕을 많이 닦아 완덕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뜻하지 않고, 여섯 가지 대당명제에 드러나는 예수님의 율법해석과 관련해서 그 뜻을 밝혀 마땅하다. 그리스도인은 유다교의 여섯 가지 명제 대신 예수님의 율법해석 여섯 가지를 지킬 때, 특히 원수 증오 대신 원수 사랑을 실천할 때 비로소 완전하게 된다.

 

그럼 하느님이 완전하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하느님은 예수님의 여섯 가지 율법해석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에 완전하시다. 특히 원수 사랑 대당명제에서 보듯이 사람 차별을 하지 않고 골고루 은혜를 베푸는 까닭에 완전하시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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