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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3.02.19)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3-02-19 조회수665 추천수7 반대(0) 신고

 

2023년 2월 19일 연중 제7주일

복음 마태 5,38-4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8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39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40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41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42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43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

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4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45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46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47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고등학생 때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을 미술 시간에 선생님께서

보여주셨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그린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빛의 파면을 자유롭게 담아낸

입체파 화가의 놀라운 작품이라고

선생님께서는 설명하셨고, 이 작품의

가치는 어마어마하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를 비롯한 친구들은

이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장난삼아 우스꽝스럽게 그려놓아도

‘피카소’라는 이름 덕분에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누군가는 이렇게도 말했다.

“내가 발로 그려도 저 정도는 그리겠다.”

미술에 대한 조예가 없으니

이렇게 생각하고 말했던 것입니다.

훌륭한 화가의 그림은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에게 비현실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지요.

이런 우리가 피카소를 만나서

“왜 이 따위로 그렸습니까?”,

“나는 도대체 당신의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라고 따질 수 있을까요?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잘 모르면서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면서 그냥 가만히

있으라는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완벽하게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처럼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족한 우리가 전지전능하신

주님의 일을 보기에 때로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고통과 시련을 왜 만들어서 사람을

힘들게 하시는지, 왜 내가 청하는 기도는

다 외면받고 있는 것인지, 전지전능하시면

나 하나 부자 만들고 높은 지위에 오르게

하는 것은 일도 아닐 텐데….

그래서 계속해서 불평불만입니다.

“왜 이따위로 세상을 끌고 가십니까?

나는 당신의 그 모습이

도대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이런 불평불만이 과연 맞을까요?

완벽하지도 않고 전지전능하지도 않기에

우리는 함부로 주님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단지 우리에게 필요한 일을 해주고 계신다는

굳은 믿음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깊은 묵상과 기도로 또 그밖에

다양한 방식으로 주님을 알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한 사람은 불평불만보다는 감사의

기도를 더 많이 바칩니다.

주님을 아는 자기 수준이 높아져서

주님을 이해해 나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관점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을 하라고 하십니다.

오른뺨을 치면 다른 뺨마저 돌려대고,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고,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면 이천 걸음을

가 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더 힘든 일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의 실천이 우리 수준을

높이는 것이 됩니다. 하늘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우리도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길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주님도 모욕당하시고 십자가의

죽음까지도 받아들이셨습니다.

완전한 사랑의 하느님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그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아직 수준이 낮아서

그렇습니다. 지금 나의 수준은 어떤가요?

완전한 하느님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수준을 높여야 합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명랑한 미소를 지어 준 것뿐이지만,

그 미소는 밤을 산산이 흩어지게 하고

그날을 살아갈 가치가 있는 날로

만들어 주었다(스콧 피츠제럴드)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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