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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3.03.06)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3-03-06 조회수828 추천수6 반대(0) 신고

 

2023년 3월 6일

사순 제2주간 월요일

복음 루카 6,36-3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6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37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38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어린 예수님을 사흘 동안

못 찾았을 때가 있었지요.

파스카 축제 때 예루살렘 성전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예수님께서

행방불명되신 것입니다.

그리고 사흘 뒤 성전에서 율법교사들과

대화하는 예수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이런 원망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루카 2,48) 이 사건에 대해 복음에서는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루카 2,51)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행동을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이해할 수 없다고 화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간직하면서 이해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신앙은 이런 것이 아닐까요?

하느님의 일을 어떻게 부족하고

나약한 인간이 이해할 수 있을까요?

따라서 성급한 판단을 내리지 않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신앙인 것입니다.

그 이해의 순간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하느님의 뜻을 언젠가는

깨닫게 됩니다. 실제로 그 순간에는

너무 어렵고 힘들어서 “도저히 하느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어.”라고 말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는 깨닫습니다.

“맞아.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었구나.”

라면서 그 순간이 은총이었고

감사할 일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신학생 때의 일이 생각납니다.

그때는 능력도 없고 자신감도 부족했었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큰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에게 그렇게 큰 역할을 할 수 없다고 하자,

하나같이 우리가 같이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 말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친구들의 도움을 받기 힘들었습니다.

바쁜 신학교 생활에 자기 일하기도 벅찼으니까요.

그때 말만 하고 도와주지 않는 친구들을

얼마나 원망하고 미워했는지 모릅니다.

꽤 긴 시간이 지난 후에 알았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서 얼마나 저 자신이

성장했었는지를 말입니다.

은총이고 감사할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심판하지 말고, 단죄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또 용서하고 주라고 하시지요.

솔직히 예수님 말씀과는 정반대로

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심판과 단죄를 반복하고, 용서할 수

없다고 또 절대 줄 수 없다고 합니다.

나의 손해가 너무 큰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때

서두르게 판단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 순간, 이해하기 위해 한 번 더

노력해야 했습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은총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신앙은 서두름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속에 간직하며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이 신앙이었습니다.

나의 신앙은 어떠했을까요?

너무 급한 서두름으로 하느님의 손길을

보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요?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걱정은 출처가 무엇이건 간에

우리를 약화시키는 것이요,

용기를 앗아가는 것이요,

인생을 단축시키는 것이다.

(존 란카스터 스팔딩)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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