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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 제2주간 금요일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3-03-10 조회수410 추천수4 반대(0) 신고

[사순 제2주간 금요일] 마태 21,33-43.45-46 “주인은 마침내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오늘 복음의 비유에 나오는 포도밭 주인은 참으로 마음이 너그럽고 자비로운 사람입니다. 그는 ‘주인’이자 ‘고용주’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군림하고 지시하기보다는 소작인들을 아끼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섬기며 봉사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느 땅 주인들처럼 관리가 안된, 놀리고 있는 땅을 빌려주고 끝나는게 아니라, 포도를 잘 가꾸고 재배할 수 있도록 기틀을 단단히 만들어주는 일을 자기 손으로 직접 하는 것입니다. 쟁기로 땅을 일구고 돌을 골라내며 잡초를 뽑아주는 기본적인 일은 물론이고, 밭 주변에 울타리를 둘러쳐 농작물이 야생동물의 피해를 입지 않도록 대비했습니다. 게다가 재배한 포도를 한 곳에 모아넣고 즙을 짜기 편하도록 깊고 넓은 구덩이를 파주었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도둑들의 손에서 농작물을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감시탑까지 세워주었습니다. 그런 밭에서 포도를 재배하는 일은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기’입니다. 소작인들의 입장에서는 정말 선하고 고마운 주인입니다.

사람이 큰 은혜를 입었으면 마땅히 보은하는게 인지상정입니다. 그 최소한의 도리조차 하지 않는다면 ‘사람의 탈을 쓰고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다른 이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게 될 겁니다.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 최소한의 도리마저 져버립니다. 포도밭 주인이 소작세를 과도하게 부과하거나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았음에도, 그저 주인으로서 얼마든지 요구할 수 있고, 또 당연히 요구해야 할 ‘소출의 일부’만을 바랐음에도 그것마저 내어주려 하지 않고 자기들이 다 차지하려고 욕심을 부린 것입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주인이 보낸 종들을 때리거나 죽이고, 심지어는 주인이 마지막으로 보낸 아들까지 살해하여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립니다. 그렇게하면 자기들이 포도밭을 통째로 차지할 수 있을거라 여긴 모양입니다. 탐욕에 눈이 멀어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고 기본적인 사리분별 능력마저 잃어버린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런 소작인들의 모습에서 하느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손으로 직접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그렇게 창조하신 세상을 잘 관리하라고 우리 손에 맡기셨습니다. 그러면서 이 세상을 잘 관리해서 얻는 이익과 행복은 온전히 우리 손에 넘겨주셨지요.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이라고는 하느님께서 맡겨주신 이 세상을, 그분께서 나에게 선물로 내어주신 생명을 그분 뜻에 맞게 잘 관리하는 것 뿐입니다. 그리고 내가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서 나만큼이나 사랑하시는 내 이웃 형제 자매들과 가진 것을 나누고 자선을 베풀면 되는 겁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하느님께 마땅히 돌려드려야 할 그분 몫의 ‘소출’을 내놓는데에 인색하게 굽니다.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신 하늘과 같은 은혜는 금새 잊어버린채, 마치 제 힘과 능력으로 그 모든 것을 얻은 것처럼, 그래서 자기가 그 모든 것의 ‘주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착각합니다. 그리고는 ‘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며, ‘내가 힘들게 노력하여 얻은 것이니 어떻게 하든 내 마음’이라며, 삶에서 얻은 소출들을 독차지 하려고 듭니다. 심지어 ‘난 내가 알아서 잘 살테니 주님은 내 삶에 관여하지 마시라’며 그분을 내 마음에서 몰아내려고 들지요. 탐욕에 눈이 멀어 주인의 아들까지 죽였던 악한 소작인들과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주인은 마침내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이 말씀은 막연한 기대, 대책없는 낙관론, 안일한 희망을 의미하는게 아닙니다.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깊은 신뢰와 간절한 바람을 뜻하는 것이지요. 그분은 우리가 당신 아들을 죽일 줄을 몰라서 보내신게 아닙니다. 우리 손으로 당신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을 것을 다 아시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해서, 사랑의 끈을 놓기 싫어서 피눈물을 머금고 보내주신 겁니다. 내 아들은 제발 존중해달라고, 제발 그를 통해 전달되는 내 뜻을 더 늦기 전에 따라달라고, 그래서 멸망하지 말고 구원의 길로 돌아서라고 온 마음으로 우리에게 간절히 호소하시는 하느님의 외침입니다. 지금 나는 그런 하느님의 외침에 어떻게 응답하고 있는지요?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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