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사순 제2주간 토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3-03-10 조회수841 추천수6 반대(0)

LA에서 미술관을 보는 것은 기쁨입니다. 지난번에는 게티 센터 (Getty Center)’ 미술관을 보았습니다. 높은 언덕 위에 있어서 전망이 좋았고, 정원도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습니다. 소장된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게티 미술관은 석유 사업으로 부자가 된 게티가 설립하였다고 합니다. 자신이 이룬 부를 예술을 통하여 나눈다는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 어렵다고 하였지만 이렇게 자신이 이룬 부를 이웃을 위해서 나눌 수 있다면 부자도 쉽게 하늘나라에 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노턴 사이먼 미술관(Norton Simon Museum)’ 미술관을 보았습니다. 신문에 글을 주시는 부제님과 함께 갔습니다. 미술사를 전공하신 부제님은 인상파 작가들의 작품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보는 만큼 아는 것이 아니라 아는 만큼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부제님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면서 작품을 보니 새롭게 보였습니다. 지하에는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노턴 사이먼 미술관은 부동산 사업으로 부자가 된 노턴 사이먼이 작품을 기증하면서 설립되었다고 합니다. 재물을 하늘에 쌓기만 한다면 부자도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 어렵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돌아온 아들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이야기의 구조는 간단합니다. 철부지 아들, 싸가지 없는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유산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성실한 큰 아들과 철부지 둘째 아들에게 유산을 똑같이 나누어 주었습니다. 큰 아들은 유산에 상관없이 아버지의 집에서 성실하게 일하였습니다. 둘째 아들은 유산을 받아서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거지꼴이 되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옵니다. 자비로운 아버지는 거지꼴로 돌아온 아들을 따뜻하게 맞이해 줍니다. 옷도 주고, 반지도 주고, 잔치를 벌여 줍니다. 큰 아들은 밭에서 일하다 돌아와서 동생이 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버지가 동생을 위해서 잔치를 벌여 준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큰 아들은 아버지와는 달리 화가 나서 집으로 들어가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큰 아들의 불만은 성실하게 일한 자기를 위해서는 잔치를 벌이지 않았던 아버지가 방탕한 둘째 아들이 돌아오니 잔치를 벌여 준다는 것입니다. 큰 아들의 불만도 이해가 갑니다. 저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큰 아들과 같은 생각을 했을 겁니다. 아버지는 큰 아들을 달래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의 것은 모두 너의 것이 아니냐?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왔으니 잔치를 벌이는 것이다.”

 

성서를 보면 죄를 지은 이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벨을 죽인 카인은 형제간의 도리를 다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 제가 동생을 지키는 사람입니까?’라고 말했으니 부끄러움을 몰랐습니다. 다윗은 충실한 부하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게 하였고, 그의 아내를 취했습니다. 자신의 권력을 남용했으니 겸손하지 못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3번이나 모른다고 배반하였습니다. 잡혀가는 스승을 위해서 함께 하지 못하였고, 도망을 갔습니다. 정의롭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자비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이들의 잘못과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죄를 벌로 다스리지 않으시고, 따뜻한 마음으로 품어 주셨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었습니다. 잘못한 이들이 자신의 잘못을 겸손하게 뉘우치는 것입니다. 카인은 자신의 죄가 크지만 하느님께 자비를 청하였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고, 용서를 청하였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닭이 울자 통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둘째아들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의 집에서 머슴으로라도 살겠다고 용서를 청하였습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돌아온 둘째 아들을 대하는 큰 아들을 봅니다. 큰 아들의 가장 큰 잘못은 선과 악을 스스로 판단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동생을 받아들이고 아낌없는 사랑을 주시는 것, 그와 같은 판단을 하는 분도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때로 큰 아들처럼 우리가 하느님을 우리의 기준으로 우리의 잣대로 규정하려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진정한 자유와 행복은 하느님을 따르면서 나의 모든 것을 하느님의 선하심에 맡겨드릴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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