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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3.03.12)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3-03-12 조회수617 추천수6 반대(0) 신고

 

2023년 3월 12일 사순 제3주일

복음 요한 4,5-15.19ㄴ-26.39ㄱ.40-42

그때에 5 예수님께서는 야곱이

자기 아들 요셉에게 준 땅에서

가까운 시카르라는 사마리아의

한 고을에 이르셨다.

6 그곳에는 야곱의 우물이 있었다.

길을 걷느라 지치신 예수님께서는

그 우물가에 앉으셨다.

때는 정오 무렵이었다.

7 마침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으러 왔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하고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8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고을에 가 있었다.

9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은 어떻게 유다 사람이시면서

사마리아 여자인 저에게 마실 물을

청하십니까?” 사실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과 상종하지 않았다.

10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대답하셨다.

“네가 하느님의 선물을 알고

또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하고

너에게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네가 그에게 청하고

그는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

11 그러자 그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 두레박도 가지고 계시지 않고

우물도 깊은데, 어디에서

그 생수를 마련하시렵니까?

12 선생님이 저희 조상 야곱보다

더 훌륭한 분이시라는 말씀입니까?

그분께서 저희에게 이 우물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물론 그분의 자녀들과 가축들도

이 우물물을 마셨습니다.”

13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14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15 그러자 그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목마르지도 않고, 또 물을

길으러 이리 나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19 이제 보니 선생님은 예언자시군요.

20 저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선생님네는

예배를 드려야 하는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말합니다.”

21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아, 내 말을 믿어라.

너희가 이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닌 곳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22 너희는 알지도 못하는 분께

예배를 드리지만, 우리는

우리가 아는 분께 예배를 드린다.

구원은 유다인들에게서 오기 때문이다.

23 그러나 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사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이들을 찾으신다.

24 하느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그분께 예배를 드리는 이는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25 그 여자가 예수님께,

“저는 그리스도라고도 하는

메시아께서 오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분께서 오시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려 주시겠지요.” 하였다.

26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

39 그 고을에 사는 많은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40 이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머무르시기를 청하자,

그분께서는 거기에서 이틀을 머무르셨다.

41 그리하여 더 많은 사람이

그분의 말씀을 듣고 믿게 되었다.

42 그들이 그 여자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믿는 것은 이제 당신이

한 말 때문이 아니오. 우리가 직접 듣고

이분께서 참으로 세상의

구원자이심을 알게 되었소.” 


우리나라에서는 못생긴 사람을

오징어에 빗대어 말하기도 하고,

또 호박이나 메주에 빗대어서 말합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일까 싶어서 찾아보니,

일본에서는 배꽃처럼 못생겼다고 말하고,

불가리아에서는 샐러드처럼 못생겼다고

말하더군요. 나라마다 못 생김의

기준으로 삼는 사물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사물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것 같습니다.

자기 세계에서는 전혀 못생긴 것이 아니라,

지극히 정상이고 또 최고로 멋진 모습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 잘 생기고,

못 생기고의 구분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구분이 그렇게 의미 있는 것도

아닙니다. 결코 객관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느 책을 보니, 요즘에 거북목 증상을

보이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스마트폰과 컴퓨터 모니터를 많이 보면서

거북목이 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상태로 계속 나가다가는

거북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표준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계속 진화되는데, 진화의 방향이

거북목으로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몇백 년 후, 거북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정상이고, 거북목 없는 사람이

비정상으로 비칠 수도 있습니다.

미의 기준이 이제껏 계속 바뀌었던 것을

생각하면, 전혀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갖는 지금의 판단이 결코

옳을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변화되는 세상 속에서 미의 기준도

바뀌는 것처럼, 지금 맞다는 것도

어느 순간 당연히 틀렸다고 말할 것입니다.

따라서 섣부른 판단보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물가에 온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십니다.

이 여인에게 물을 청하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단순히 목이 마르셨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온 세상

구원에 목이 마르셨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당시 유다인이 이방인 취급받았던

사마리아 사람에게 말을 건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단 한 명의 예외 없는 구원에 목마르셨기

때문에 대화를 나누셨던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주는

생수에 대해 말씀하시지만, 사마리아 여인은

현실적인 의미로만 이해하고 있습니다.

동문서답하는 형식으로 대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대화하십니다. 그 결과 진정한 예배에 대한

말을 나눌 때는 처음 생수에 관한 대화하는

다르게 일 보 전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 판단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을 따르는

모습으로 변화되어, 이제 고을에 사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도록

직접 증언할 정도가 된 것입니다.

그전에는 사람들과 마주치기 싫어서

아무도 없는 벌건 대낮에 우물가를 찾았던

여인인데 말이지요. 주님의 뜻에

우리 모두 변화될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 뜻만을 내세운다면 주님 뜻이

세상에 펼쳐지지 않습니다.

우리 구원에 목이 마르시는

주님의 갈증을 풀어 드릴 수 없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인생은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다.

균형을 잡으려면 움직여야 한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솟아오르는 영원한 생명의 샘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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