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사순 제3주간 월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3-03-12 조회수889 추천수9 반대(0)

영어로 이해‘understand’입니다. 아래에 서 있으면 이해하기 쉽다는 뜻입니다. 아래에 서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기 마련입니다. 새로운 방법을 받아들이기 마련입니다. 근대의 문을 열었던 유럽의 르네상스는 문학, 예술, 과학, 의학에서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였습니다. 1000년 동안 이어오던 중세의 규범과 틀을 과감하게 벗어버렸습니다. 이슬람 문명이 번역한 고대의 학문과 철학을 받아들였습니다. 인간중심의 새로운 사상이 시작되었고, 산업혁명과 자본주의는 새로운 시대의 여명을 밝혔습니다. 반면에 오해‘misunderstand’입니다. 아래에 서 있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내가 왕년에 다 해 봐서 안다.’라는 말을 자주 하던 분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방법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조선은 서양의 학문과 과학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오랑캐의 학문이라고 천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서양에서 들어온 천주교인 서학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유교의 가르침이 유일한 통치기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천주교를 박해하였고, 급변하는 세계정세를 외면하였습니다.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자초지종(自初至終)’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안다고도 합니다. 영어는 주어 다음에 동사가 나오기 때문에 처음 들어도 대충 이해할 수 있지만 한국어는 동사가 맨 나중에 나오기 때문 끝까지 들어야 제대로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도 끝까지 말을 듣지 않고 판단한 적이 많았습니다. 예전에 본당에 있을 때입니다. 노인대학 미사가 화요일에 있었습니다. 제대회에서는 소성당에 미사 준비를 해 놓았습니다. 저는 착각하고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려고 하였습니다.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제대회 자매님께 먼저 묻지도 않고 미사 준비를 하지 않았다고 짜증을 냈습니다. 자매님은 소성당에 모든 준비를 해 놓았는데 제가 짜증을 냈으니 무척 난감하였습니다. 그래도 저의 이야기를 다 들어 주었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제가 착각하였다는 것을 알았고, 자매님께 사과하였습니다. 자매님도 저의 사과를 받아 주었고, 제대회 봉사를 계속하였습니다. 삼국지의 적벽대전에서도 조조는 자초지종을 듣지 않고 충실한 부하를 전쟁터에서 죽였습니다. 적벽대전의 패배는 자초지종을 듣지 않았던 조조의 성급함에 있었습니다.

 

오늘 성서 말씀에는 자초지종을 듣지 않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스라엘 왕은 아람 왕이 보낸 나아만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았습니다. 아람 왕이 전쟁을 벌이기 위해서 나아만을 보냈다고 생각했습니다. 엘리사는 자초지종을 잘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만을 보내 달라고 하였습니다. 나병환자였던 나아만은 엘리사를 만났습니다. 엘리사는 나아만에게 요르단 강에서 일곱 번 몸을 담그라고 하였습니다. 나아만은 엘리사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 않았습니다. 시리아에도 요르단 강 보다 좋은 강이 많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엘리사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강의 수질이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말씀에 순명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아만은 자초지종을 듣고 자신의 교만함을 내려놓았습니다. 엘리사의 말을 들었던 나아만은 요르단 강에 몸을 일곱 번 담그었고, 그의 나병은 깨끗해 졌습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도 자초지종을 듣기 보다는 자신들의 판단을 먼저 믿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표징을 보기 보다는 예수님의 가족과 친지를 먼저 보았습니다. 색안경을 쓰면 세상은 그 색안경의 색깔대도 보이기 마련입니다.

 

엘리사는 나아만에게 나병이 치유될 수 있는 을 알려주었습니다. 나아만은 그 길이 너무 쉽다는 이유로 가려하지 않았습니다. 나아만은 결국 그 길로 갔기 때문에 나병이 치유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느님께로 가는 길을 보여주었습니다. ‘희생, 순명, 사랑, 헌신, 봉사의 길입니다. 사람들은 편한 길을 가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길을 가려하지 않았습니다. 길은 목적이 아닙니다. 길은 목적지를 가기위한 도구입니다. 날아다닐 수 있는 사람에게는 은 굳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아직 날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분명 길이 필요합니다.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는 이정표, 지도, 내비게이션이 필요합니다. 깨달은 사람들에게는 계명과 율법이 필요 없을지 모릅니다. 그들은 계명과 율법을 초월해서 살기 때문입니다. 하늘을 나는 새에게 굳이 땅위의 길이 필요 없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하느님께로 가는 계명, 율법, 규정이 필요 없으신가요? 아니면 사랑의 계명, 봉사의 율법이 아직은 필요하신가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