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전례/미사

제목 [미사] 미사의 구성4: 말씀의 전례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5-07-25 조회수101 추천수0

[전례와 함께] 미사의 구성 (4) 말씀의 전례 ①

 

 

말씀의 전례는 그날 전례의 핵심 지향을 담은 본기도 이후에 시작됩니다. 하느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의 의미를 되새기는 미사의 한 부분이 말씀의 전례입니다. 독서와 복음, 그리고 강론으로 이어지는 말씀의 전례는 구약의 말씀, 신약의 서간들의 말씀, 그리고 복음 말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말씀의 전례는 독서나 복음을 ‘읽는 것’이 아니라 ‘선포하는 것’입니다. 독서를 읽는 사람은 하느님 말씀이 청중에게 직접 선포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복음 선포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은 그야말로 ‘기쁜 소식’이고 모든 회중, 나아가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의 구원 섭리를 확고히, 선명히 알리는 것입니다.

 

독서가 끝나고 화답송을 하게 되는데, 화답송은 대부분 시편에서 발췌한 부분을 노래로 봉헌합니다. 하느님 말씀을 듣고 화답하는 회중은 말씀에 대한 감사와 그 말씀이 믿는 이들 안에 온전히 이루어졌다는 기쁨을 시편의 구절들로 노래하게 됩니다. 이어지는 복음 선포 전에 우리는 ‘알렐루야’를 부르게 되는데, ‘알렐루야’는 ‘하느님을 찬양하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독서를 통해 들은 하느님 말씀은 4복음서, 그러니까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 복음에 나타나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다시 한번 확고히 선포됩니다. 독서의 말씀이 구원을 향한 하나의 약속이었다면, 복음의 말씀은 그 구원이 예수님 안에 온전히 이루어졌다는 완성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 선포 전 하느님을 찬양하는 알렐루야를 부르며 구원에의 기쁨을 미리 드러내는 것입니다.

 

복음이 끝나면 사제는 강론을 합니다. ‘강론’은 그리스말 ‘호밀리아(ὁμιλία)’에서 유래했는데, 대화, 담화, 혹은 해설과 연설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강론은 선포된 하느님 말씀을 설명하는 주석적 관점과 그 설명을 공동체의 상황에 적용하는 해석학적 관점으로 그 성격을 규정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함부로 해석되어서는 안되기에 정통 신학과 신앙 교육을 받은 사제의 고유한 직무가 강론의 자리에서 더욱 도드라지는 것이지요. 또한 사목적 차원에서 말씀은 늘 육화되어 실천되어야 하겠기에 본당 사목의 책임을 지고 있는 사제의 역할은 강론을 통해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의 전례는 독서와 복음 선포 이후에 일정부분 ‘침묵’의 시간 역시 중요한 요소로 기억합니다. 침묵은 선포된 하느님 말씀을 깨닫는 회중들의 적극적 행위입니다. 온전히 선포된 말씀에 집중하여 자신의 삶과 반추해보는 일이 침묵입니다. 선포된 말씀과 침묵 사이에 말씀의 전례는 하느님과 믿는 이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친교와 일치의 전례가 됩니다. [2025년 7월 20일(다해) 연중 제16주일(농민 주일) 대구주보 4면, 교구 문화홍보국]

 

 

[전례와 함께] 미사의 구성 (4) 말씀의 전례 ②

 

 

사도신경

 

사제의 강론 이후에 주일이나 대축일에 우리는 ‘신경’을 바치게 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신경은 ‘사도 신경(Symbolum Apostolorum)’ 입니다. 그러나 미사 중 공식적으로 사용되기를 권장하는 신경은 삼위일체 교리가 담긴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입니다. ‘신경’이라고 번역된 ‘Symbolum’은 그리스말 동사 ‘쉼발레인(συμβάλλειν)’에서 유래한 단어로, ‘함께 던지다, 함께 맞춰보다’라는 뜻을 지닙니다. 하나의 신앙 안에 함께 모여 친교와 일치를 이룬다는 것이 ‘신경’이란 말마디가 가리키는 것입니다.

 

신경의 주요 말마디들의 의미는 이러합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예수님은 천상에 계신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인간과 똑같은 삶을 사신 분으로 우리는 믿습니다. 무엇보다 당신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하여 하느님의 생명과 구원을 안겨주신 분이 예수님이시고 그런 예수님을 통해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끝없는 사랑을 우리는 고백합니다.

 

‘저승에 가시어’: ‘저승’이라고 번역된 그리스말 ‘하데스(ᾅδης)’는 ‘죽은 자들의 공간’을 가리킵니다. 예수께서 저승에 가셨다는 것은 산 자와 죽은 자 모두의 주님이자 구원자라는 신앙을 담고 있습니다.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7세기 그리스 교부 다마스코스의 성 요한은 ‘성부 오른편’을 신적 영광과 영예의 자리로 이해했습니다. 지상의 삶을 사신 예수께서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는 것은 우리 역시 하느님의 영광과 영예에 함께 참여할 것이라는 희망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 우리 교회의 근원은 주님이신 예수님이시기에 거룩합니다. 단순히 인간의 공동체가 아니라 하느님과 인간의 친교가 이루어지는 자리가 교회입니다. 교회가 보편적인 것은 특정 세력이나 계급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하느님과의 친교 안으로 불리워진 가시적 공간이 교회라는 사실을 또한 기억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부활’: ‘육신’이라고 번역한 그리스말 ‘사륵스(σάρξ)’는 ‘살덩어리’라는 의미를 지니는데, 인간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다소 부정적인 말마디들 중 하나입니다. 육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분리하고 영적이고 정신적인 것만의 우월성과 그 부활을 주장하는 이단을 거슬러 인간 존재 자체의 소중함과 부활을 고백하는 신앙을 담고 있는 말마디가 ‘육신의 부활’입니다. [2025년 8월 17일(다해) 연중 제20주일 대구주보 4면, 교구 문화홍보국]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