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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것과 이 뜻을 행하는 것의 차이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3-03-16 조회수672 추천수2 반대(0) 신고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것과 이 뜻을 행하는 것의 차이

1. 하느님의 의지 안에서

사는 것에 대한 지금까지의 기록이

미흡해서 걱정스러웠으므로,

더 잘 표현할 수 있도록 더 많은 빛을

주시기를 예수님께 청하였다.

하느님 뜻 안에서의 삶이라는

이 복된 삶에 대해 내가 더욱 분명하게

설명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해 주기 위함이었다.

그러자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그들은 이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것은

다스리는 것인 반면,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것은

나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다.

먼저 것은 소유하는 신분이고,

나중 것은 내 명령을 받고

그것을 실행하는 신분이다.

3. 내 뜻 안에서 사는 것은

내 뜻을 영혼 자신의 것인 양 소유하여

그것을 마음대로 처리하는 것이다.

내 뜻을 행하는 것은 이 뜻을

자기 것으로 여기지 않고

하느님의 뜻으로 여기는 것이니

내키는 대로 처리할 수 없다.

4. 내 뜻 안에서 사는 것은 하나의 뜻으로,

곧 하느님의 뜻만으로 사는 것이다.

지극히 거룩하고 지극히 순수하며

지극히 평화로운 하나의 뜻만이

다스리는 것이니, 갈등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고 일체가 평화일 따름이다.

5. 이 지고한 뜻 앞에서 인간의 격정은

떨며 달아나려고 한다.

그러나 감히 걸음을 내디디지도

맞서지도 못한다.

하늘과 땅이 이 거룩한 뜻 앞에서

떠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6. 그러면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것의

첫걸음은 무엇을 하는 것이겠느냐?

그것은 영혼 깊은 곳에 신적 질서를

확립하면서 나쁜 경향이나 격정이나

기호 따위 인간적인 것을 비우는 것이다.

7. 한편 나의 뜻을 행하는 것은

두 가지 뜻으로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내 뜻을 행하도록

명령을 내리면 자기 자신의 뜻의 무게를

감지하게 되고, 이것이 갈등을 일으킨다.

비록 내 뜻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할지라도

그 자신의 반역적인 본성과 격정과 경향의

무게를 느끼는 것이다.

8. 얼마나 많은 성인들이,

드높은 완덕의 경지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거슬러 싸움을 벌이며

계속 압박하는 그들 자신의 뜻을

느꼈는지 모른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로마 7,24)

하고 부르짖지 않을 수 없었다.

‘죽음에 빠진 몸에서’라는 말의 의미는

‘내가 하고자 하는 선을 죽음에 부치기를

원하는 나의 이 뜻에서’인 것이다.

9. 내 뜻 안에서 사는 것은

아들로서 사는 것이고,

내 뜻을 행하는 것은 종으로 사는 것이다.

먼저 것은 아버지의 것이 모두 아들의 것

(루가 15,31 참조)인 경우이지만,

종은 아들보다 더 많은 희생을

치르기 마련이다. 어차피 더 고달프고

더 천한 일들을 하고 추위와 더위를

겪으며 발로 걸어 다녀야 한다.

10. 사실, 내 성인들은 내 뜻의 명령을

실행하려고 참으로 많은 일을 하지 않았더냐?

그 반면에 아들은 자기를 돌보며 입맞춤과

어루만짐으로 격려해 주는 아버지와 함께 있고,

아버지가 하듯이 종들에게 명령을 내리며,

출타할 때면 발로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탈것을 이용한다.

11. 또한 아들은 아버지의 것을

다 소유하지만 종은 자기가 한 일에 대한

품삯만을 받는다.

주인을 위하여 일을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일을 하지 않으면

어떤 보수도 받을 자격이 없다.

12. 이와 반대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속에서는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소유할 권리가 있고,

이 권리는 아무도 무효화할 수 없다.

천상법이건 지상법이건 그 어떤 법도

무효화할 수 없고, 아들이라는

신분 역시 무효화할 수 없는 것이다.

13. 딸아, 내 뜻 안에서 사는 것은

하늘의 복된 이들과 더할 수 없이

근접해서 사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사람은 내 뜻을 행하며

내 명령을 충실히 따르는 사람에게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하늘이 땅에서 먼 것과 같이,

아들과 종, 왕과 신하 사이의

거리가 먼 것같이 말이다.

14. 게다가 이는 이 통탄할 시대에

내가 주고자 하는 선물이다.

사람들이 단지 내 뜻을 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소유하게 하려는 것이다.

15. 내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때에,

원하는 사람에게 줄 자유가 없겠느냐?

주인은 종에게, ‘내 집에서 먹고 살며

재산을 소유하고, 또 하나의 나처럼

명령을 내려라.’ 하고 말할 수 있지 않느냐?

이 주인은 아무도 종이 재산을

소유하는 것을 막지 못하게 하려고

그를 아들로 입적시켜 소유권을 준다.

일개 부자도 그렇게 하거든,

하물며 나는 한층 더 그럴 수 있지 않겠느냐?

16. 내 뜻 안에서 사는 것은 내가

사람들에게 주고자 하는 선물들 중에서

가장 큰 선물이다.

나의 선성은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한층 더 크게 펼치기를 원한다.

그들의 사랑을 받기 위하여 더 이상

줄 것이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을 주었으므로

이제 나의 뜻을 선물로 주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소유함으로써 자기네가 소유하게 된

위대한 선을 사랑하게 하기 위함이다.

17. 그러니 그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보더라도 너는 이상하게 여길 것 없다.

이를 알아들으려면, 거룩한 일에서조차

자기의 뜻에는 생기를 불어넣지 않으려고

하는 최대의 희생을 치를 각오가 서 있어야 한다.

그러면 그들도 내 뜻의 소유를 실감할 것이고,

내 뜻 안에서 사는 것의 의미를 손으로

직접 만져 보는 느낌이 들 것이다.

18. 아무튼 너는 주의를 집중하고,

그들이 일으키는 곤란 때문에 괴로워하지 마라.

나로서는 내 뜻 안에서의 삶을 이해시키기

위하여 조금씩 길을 열어갈 작정이다.”

1924년 9월 18

('하느님의 뜻'을 알리는 '천상의 책'

(교회인가)에서 발췌하였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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