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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3-03-19 조회수1,052 추천수9 반대(0)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제자들은 구약의 예언자 중에 한 명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엘리야라고도 하였고, 예레미야라고도 하였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선생님은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라도 대답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대답을 칭찬하셨습니다. 베드로의 대답은 하느님께서 이끄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리스도는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호칭입니다.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면서 하느님께서 다윗을 선택하였음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느님께서 선택하셨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과 그리스도는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직자와 수도자 그리고 신앙인은 모두 세례를 통해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다.

 

저도 가끔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신문사 직원들은 저를 사장 신부님이라고 부릅니다. 동북부 ME 부부들은 저를 동북부 엠이 대표 신부님이라고 부릅니다. 부르클린 공동체에서 교우들은 저를 본당 신부님이라고 부릅니다. 저의 직책은 다양하지만 저의 정체성은 사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3가지 사명을 주셨습니다. 복음을 선포하는 것, 마귀를 쫓아내는 것, 병자를 고쳐주는 것입니다. 시대와 공간은 다르지만 예수님께서 주신 사명은 변함이 없습니다.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서는 제가 복음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파와 율법학자들의 위선을 비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들의 말을 따르지만 그들의 행동은 따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마귀를 쫓아내기 위해서는 마귀로부터 자유로워야 합니다. ‘재물, 명예, 권력의 유혹에서 자유로워야 합니다. 병자를 고쳐주기 위해서는 병자들의 아픔을 공감해야 합니다. 사제는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입니다. 요셉 성인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약혼한 처녀 마리아가 결혼 전에 잉태한 것을 알았던 요셉 성인은 조용히 파혼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법대로 하면 요셉은 마리아를 상대로 고소를 할 수도 있었습니다. 당시의 법은 무척 엄격하였기 때문에 마리아는 재판을 받고 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요셉이 기분대로 사는 사람이었으면 자신 앞에 놓인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입니다. 마리아의 집에 찾아가서 한바탕 소동을 벌였을지도 모릅니다. 요셉 성인이 법대로 했다고 해도, 기분대로 했다고 해도 당시 사람들은 손가락질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은 명백히 마리아의 잘못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마리아를 고발하지도 않았습니다. 마리아의 집에 찾아가 한바탕 난리를 치지도 않았습니다. 말 할 수 없었던 마리아의 입장을 생각하였고, 조용히 파혼만 하기로 하였습니다. 사실 이 정도만 해도 커다란 배려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면 요셉은 이제 또 다른 삶을 살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의로운 삶을 뛰어넘어서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요셉은 꿈에서 가브리엘 천사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잉태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뜻대로 살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 역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온 몸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예수님 또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했습니다. 유명한 겟세마니의 기도입니다. ‘아버지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고난의 잔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나사렛 성가정은 모두 하느님의 뜻을 중심에 놓고 살았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 신앙은 은총을 주며, 그 은총으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을 생각해 봅니다. 하느님의 뜻보다는 나의 뜻이 먼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때가 많습니다. 출세와 성공이 삶의 기준이 되곤 합니다. 왜 공부를 하는지를 생각하기 전에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고 이해되는 세상입니다. 돈이 삶의 중심이 되는 세상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위해서 돈을 벌고, 돈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돈의 노예가 되어서 양심을 팔고, 사람을 속이고, 소중한 것들을 멀리합니다. 오늘 성 요셉 대축일을 지내면서 나의 삶의 중심은 어디에 있는지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성 요셉 우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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