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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 제4주간 화요일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3-03-21 조회수358 추천수2 반대(0) 신고

[사순 제4주간 화요일] 요한 5,1-16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

 

예루살렘 동쪽 성벽에는 목자들이 양들에게 물을 먹이고 풀을 뜯게 하기 위해 자주 드나들던 ‘문’이 있었고, 그 문 바로 옆에는 ‘벳자타’라는 이름의 유명한 연못이 있었습니다. 그 연못이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해진 이유는 ‘치유의 기적’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 프랑스의 ‘루르드’가 물을 통한 치유의 기적으로 유명해진 것처럼, 잔잔하던 그 연못이 갑자기 심하게 출렁거릴 때 그 물 속에 가장 먼저 뛰어들면 치유의 은총을 입어 어떤 병도 낫는다는 소문이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벳자타 연못가는 늘 수많은 중환자들과 그 보호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백약이 무효하여 죽을 날만 기다리던 이들이 실낱같은 마지막 희망을 품고 물이 출렁거리기만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파스카 축제 때가 되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던 예수님께서 그 연못가를 지나가시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38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중풍으로 고통받던 한 병자를 만나십니다. 그리고 그 병자에게 ‘특별한’ 치유의 은총을 베푸십니다. 그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도 몰랐기에 그분께 대한 믿음을 지니고 있지 않았고, 당연히 그분께 치유의 은총을 청하지도 않았습니다. ‘건강해지고 싶으냐’는 질문에 예수님으로부터 돈이나 적선받을 요량으로 자신의 처지가 얼마나 딱한지 ‘신세한탄’을 늘어놓기에 바빴지요. 그럼에도 예수님은 순전히 그의 처지를 안쓰럽게 여기시는 ‘자비심’으로 그의 병을 고쳐주십니다. 그러나 그는 병에서 나은 뒤에도 어정쩡한 태도를 보입니다. 예수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지도, 주님을 만나는 소중한 기회를 주시고 새 삶을 열어주신 하느님을 찬미하지도 않은 채, 그저 예수님이 시키신대로 자기 들것을 들고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었지요. 그러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안식일 규정’을 어겼다는 질책을 받자 그 책임을 예수님 탓으로 돌림으로써 유다인들에게 그분을 박해할 빌미를 제공합니다. 예수님께 받은 은혜를 배신이라는 원수로 되갚은 겁니다.

 

그런 그의 모습은 지난 주일 복음에 등장했던 ‘태생소경’과 너무도 상반됩니다. 그 태생소경도 이 중풍병자처럼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몰랐고 그분께 대한 믿음을 지니고 있지 않았으며, 그분께 치유의 은총을 청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자비심으로 그의 눈을 뜨게 해 주셨지요. 하지만 그 소경은 주님께 받은 은총을 믿음이 깊어지는 계기로 삼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기적을 ‘없던 일’로 만들려는 시도에 맞서 자신이 그분께 은총을 입은 ‘당사자’임을 당당히 증언했고,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그런 일을 하셨다는 이유로 ‘죄인’으로 몰리자 죄인이 그런 놀라운 기적을 일으킬 수는 없다고 그분을 적극적으로 변호했으며,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한 일 때문에 공동체에서 추방당하고 박해를 받았음에도 끝까지 자기 믿음을 지키고자 애쓴 것입니다. 그 모든 과정을 통해 그의 믿음은 깊어지고 단단해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고백함으로써 구원의 은총까지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중풍병자와 태생 소경 사이의 큰 차이에 주목해야 합니다. ‘벳자타’는 ‘자비의 집’ 혹은 ‘은총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중풍병자가 병으로 누워있던 햇수인 ‘38’은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시는 과정을 상징하는 ‘40’에서 2만큼 모자란 숫자입니다. 즉 주님께서 우리를 안쓰럽게 여기시는 ‘자비심’으로 베푸신 ‘은총’이 내 안에서 구원이라는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내 쪽에서 ‘2’만큼의 노력을 채워야 한다는 뜻이지요. 태생소경은 예수님을 위해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고 그분이 ‘그리스도’라고 믿는 믿음을 행동으로 드러냄으로써 그 부족한 2를 채웠고 구원받았습니다. 우리도 그래야합니다. 내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은총의 ‘들것’을 나 혼자만 누리고 잊어버릴게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찾아가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그들에게 주님의 은총을 전달하는 ‘들것’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내가 주님께 받은 은총이 구원이라는 귀한 열매를 맺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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