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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사순 제4주간 수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3-03-21 조회수776 추천수7 반대(0)

1984년 겨울입니다. 저는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에 있는 나환자 마을(한센인 마을)로 봉사를 갔습니다. 마을에는 공소가 있었습니다. 저는 공소에서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면서 지냈습니다. 마을 분들은 양계, 양돈을 하면서 생활하였습니다. 40년이 지났지만 그때 함께 하였던 학생들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학생들 중에 한 명은 수도자가 되어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가끔 소식을 나누고 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에 공소(公所)’에 대한 지면이 있습니다. 219일 신문에 신평공소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제가 봉사활동을 갔었던 공소입니다. 저는 공소 사택에서 머물었습니다. 학생들이 계란을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눈이 많이 내린 날 학생들과 함께 뒷동산에 올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군대에 갔다 왔고, 사제가 된 뒤로는 한 번도 공소를 찾아가지 못했습니다. 제가 바쁘기도 했지만 한번이면 족하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신평공소 이야기를 읽으면서 조선희 신부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신부님은 호주 출신으로 골롬반 선교회 소속이었습니다. 1939년에 사제서품을 받은 신부님은 1940년 한국으로 파견돼 홍천본당 보좌로 사목을 시작했습니다. 194112월 일본의 하와이 진주만 공습을 신호탄으로 미국과 전쟁을 벌이자 조선의 서양 선교사들은 모두 연금됐습니다. 조 신부님도 5개월간 연금과 투옥 생활 후 강제 출국 됐다가 해방 후 19472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홍천본당 주임으로 사목했습니다. 하지만 6.25 전쟁이 발발하였고, 신부님은 북한 인민군에게 체포되었습니다. 1950년 겨울 중강진수용소로 이감되었습니다. 신부님은 휴전 때까지 3년간 중강진수용소에서 지냈습니다. 750명 수용자 가운데 500명이 사망하였습니다. 다행히 신부님은 수용소에서 풀려났고, 19535월 본국으로 귀환했다가 몸을 추스른 후 19548월 세 번째 한국에 입국해서 홍천본당으로 돌아왔습니다. 신부님은 더 이상 사목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을 때인 1998년 고향인 호주로 돌아가 20053월 선종하였습니다.

 

포천 신평공소는 신부님의 한센병 환우에 대한 각별한 사목적 배려로 안정적으로 뿌리를 내렸다고 합니다. 신부님은 1940년 선교사로 한국에 왔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연금과 투옥을 당하였고 본국으로 강제 출국 당하였지만 다시 돌아왔습니다. 죽음의 행진을 거쳐 3년간 중강진수용소에서 지냈고 잠시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다시 돌아왔습니다. 더 이상 사목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을 때 홀로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신부님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3번이나 넘어지셨던 예수님이 생각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3번이나 넘어지셨지만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다시 일어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 이루었다.’라는 말씀을 남기시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습니다. 저는 신부님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자존심 때문에 십자가를 포기한 적도 많았습니다. 게을러서 십자가를 포기한 적도 많았습니다. 더 크고 좋은 것을 찾기 위해서 십자가를 포기한 적도 많았습니다. 아예 십자가를 버린 적도 많았습니다.

 

오늘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배고프지도 않고 목마르지도 않으며, 열풍도 태양도 그들을 해치지 못하리니, 그들을 가엾이 여기시는 분께서 그들을 이끄시며, 샘터로 그들을 인도해 주시기 때문이다.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고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이것이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이런 마음을 갖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로는 모욕을 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때로는 억울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하느님은 우리가 이런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조선희 신부님은 많은 시련과 고통이 있었지만 하느님의 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라 믿습니다. 홍천본당 교우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마음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같은 마음을 이야기 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품어주는 사랑입니다. 나에게 잘 해주는 사람에게만 베푸는 사랑은 세상 사람들도 할 수 있습니다. 갚을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빌려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하느님의 마음은 세상 사람들의 마음과는 달랐습니다. 하느님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은 사랑의 마음입니다. 이 사랑이 생명을 살리고, 이 사랑이 희망을 주고, 이 사랑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신앙인들은 하느님을 닮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삶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어미가 자식을 잊을지라도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을 잊지 않고 사랑하신다고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은 자비와 용서, 친절과 온화함입니다. 우리들 모두는 하느님의 모습을 우리의 삶 속에서 드러내야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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