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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3.03.23)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3-03-23 조회수832 추천수7 반대(0) 신고

 

2023년 3월 23일

사순 제4주간 목요일

복음 요한 5,31-47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31 “내가 나 자신을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유효하지 못하다.

32 그러나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분이

따로 계시다. 나는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그분의 증언이 유효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33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들을 보냈을 때에

그는 진리를 증언하였다.

34 나는 사람의 증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너희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35 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었다.

너희는 한때 그 빛 속에서

즐거움을 누리려고 하였다.

36 그러나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이다.

37 그리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나를 위하여 증언해 주셨다.

너희는 그분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한 번도 없고 그분의 모습을 본 적도 없다.

38 너희는 또 그분의 말씀이 너희 안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지 않기 때문이다.

39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40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41 나는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받지 않는다.

42 그리고 나는 너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안다.

43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른 이가 자기 이름으로 오면,

너희는 그를 받아들일 것이다.

44 자기들끼리 영광을 주고받으면서

한 분이신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은 추구하지 않으니,

너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

45 그러나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하리라고 생각하지는 마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 온 모세이다.

46 너희가 모세를 믿었더라면

나를 믿었을 것이다. 그가 나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47 그런데 너희가 그의 글을

믿지 않는다면 나의 말을 어떻게 믿겠느냐?” 


어느 부부 모임에서 한 가지

게임이 진행되었습니다.

4종류의 와인이 있는데,

부부 중 한 명이 각 와인을 마셔본 뒤,

그 와인에 대한 시음기를 적습니다.

그리고 배우자가 이 시음기를 읽은 뒤에

와인을 마시면서 시음기에 맞는

와인을 맞추는 것입니다.

첫 번째 부부는 와인 애호가 부부입니다.

남편이 시음기를 적는데 ‘미디엄바디,

오크, 아스디얼, 버터리, 허메이셔스’ 같은

전문적인 표현을 써가면서 작성했습니다.

그의 아내는 4개의 와인 중에서 몇 개를

맞췄을까요? 단 하나 맞췄다고 합니다.

두 번째 부부 차례입니다. 역시 남편이

시음기를 적는데, 영문학과 교수인 남편은

시적 표현을 쓰면서 작성했습니다.

결혼 기념일에 여행 갔던 계곡의

물줄기에 비유했고, 어려웠을 때

아내와 고통을 함께 나눌 때의

기쁨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이 교수의 아내는 하나도 맞추지 못했습니다.

마지막 부부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결과는 4종류의 와인을 모두 맞췄습니다.

어떻게 해서 다 맞췄을까요?

남편은 이렇게 시음기를 적었습니다.

“가장 달다.”, “두 번째로 달다.”,

“세 번째로 달다.”, “안 달다.”

사람과의 소통이 잘 안된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소통이 잘 안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같은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말을 해야 하는데,

자기 이야기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이것도 이해해주지

못하냐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주님과의 소통은 잘 될까요?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나약하고

부족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왜일까요?

우리와 눈높이를 맞춰주신 것입니다.

우리와 진정으로 소통하기 위해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주님과 눈을 맞추지 않습니다.

자기 말만 계속 늘어놓습니다.

주님의 뜻에 맞게 살 수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나의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잘 들어야 소통이 됩니다.

주님과도 또 이웃과도 잘 듣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2,000년 전,

인간의 육체를 취해서 이 땅에 오신

주님께서는 정말로 답답하셨을 것 같습니다.

도저히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든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주님을 반대하고 제거하는 데

더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하고 있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주님이 바로 앞에

계시는데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과의 소통도 잘 듣는 데서 시작합니다.

주님과의 소통도 잘 듣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하면서,

주님과의 진정한 소통을 기대한다는 것은

커다란 착각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행복이란 하늘이 푸르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만큼이나 단순하지 않을까?

(요슈타인 가이더)

(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 온 모세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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