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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수십 년 하느님을 믿었어도 사랑이 없으면.....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3-03-25 조회수359 추천수2 반대(0) 신고

 

요즘 최근에 시간이 나면 서울대 명예교수로 계시며 우리나라 내과 부분에서 상당한 업적을 세우신 분으로서 특이하게 의사 출신으로 죽음학을 약 15년 전부터 강의를 해 오셨는데 작년에 가끔씩 듣다가 그제는 새로운 자료를 봤습니다. 특이하게 정목 비구니 스님이 함께 출연하시고 나중엔 몇 가지 질문을 하며 토의 형식으로 강의를 하신 것입니다. 처음엔 의외였습니다. 사실 정목 스님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고 또 그 스님의 책도 여러 권 봤기 때문에 좀 이색적이었습니다. 언젠가 보니 서울교구 쑥고개 성당인지 그 성당에서 대림특강을 하시는 것도 유튜브로 봤습니다. 며칠 전에는 우연히 본당 교우님 사무실에서 저희 본당 전임 연령회 회장님을 만나뵈었습니다. 간혹 어쩌다가 사무실에서 뵐 때가 있습니다. 그날 듣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앞으로 본당의 장례와 관련해서 연령회에서 봉사를 할 사람이 부족해 앞으로 이걸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걱정과 염려였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떤 부분은 우리가 신앙을 가졌다고 해도 미처 생각하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신앙과 죽음 이후의 내세관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제가 그분이 종교인은 아니지만 그분이 강의하시는 어떤 부분은 제가 생각했을 때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 유익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 기회가 되면 이런 분의 강의도 좋지 않을까 하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분의 성함을 말씀을 드리고 회장님께서 여러 강의를 듣고 판단을 해보시겠다고 하시면서 헤어졌습니다. 지금은 왠만한 강의는 거의 다 들었습니다. 그제 두 편만 새로운 것이었는데 그게 특히 정목 스님과 함께 나오시는 강의인 데다가 특이한 점이 있어서 인상이 많이 남는 강의였습니다. 그 강의를 들으면서 많은 묵상을 해봤습니다. 물론 신앙인의 관점에서 강의를 한 것은 아닌데 정말 저한테는 신앙인에게 어떤 울림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건 바로 '사랑'입니다. 그 강의를 듣고 한 생각입니다. 아무리 수십 년을 하느님을 믿고 기도를 수도 없이 외관적으로 많이 하는 신앙인이라고 해도 결국에는 사랑이 없으면 그건 말짱 도룩묵인 신앙과 같다는 생각입니다. 마치 바오로 사도께서 하신 말씀처럼 말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요? 어쩌면 막연한 말처럼 될 수도 있습니다. 어려울 것 없을 겁니다.

 

단순히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수많은 미사를 참여하고 기도를 하고 해도 그 마음에 남을 사랑하는 그런 마음이 없다면 제가 완곡한 표현을 해서 그렇지 단순히 사랑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어쩌면 차갑고도 차가운 느낌을 상대방에게 전하고 그로 인해서 상대를 힘들게 하는 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제가 봤을 때 하느님께서 어떤 평가를 내리실지는 잘은 모르지만 가히 좋은 평가를 받지는 않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어제 저녁 미사 후에 작년에 사천에서 저희 본당으로 전입을 오신 부부가 계신데 자매님이 작년에 함께 성경경시대회 본당을 대표해 참가했던 분입니다. 부부 교우님이 오신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본당 활동에 아주 적극적이시고 지금은 부부가 전례 해설과 주일에 봉헌도 하십니다. 어쩌다 미사 마친 후 퇴장할 때에 마주치면 자매님께서 항상 기쁘게 예의를 갖추어 인사를 하십니다. 어떤 경우는 제가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깍듯이 하셔서 조금은 민망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제는 저녁에 작년에 우연히 연락을 해야 될 경우가 있어서 자매님의 전화 번호를 알게 되어 가지고 있는 번호로 문자 하나를 보내드렸습니다. 

 

항상 인사를 밝게 해 주셔서 나중에 그런 아름다운 마음은 하느님께서 갚아주실 거란 문자였습니다. 보내드린 후에 늦게 확인하셨는지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 답장이 왔습니다. 시험에도 같이 참가한 찐한 인연도 있고 해서 만나면 반갑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인사 다음에 안 하셔도 되는 말씀인데 겸손한 표현을 하셨습니다. 열심히 해보려 하지만 신앙의 깊이가 없어서 항상 부족하고 부끄럽답니다. 이런 표현을 하셔서 제가 바로 답장을 보내드리려고 했는데 그냥 시간도 늦고 해서 내일 보내자 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오늘 간단하게 감사하다는 말씀과 함께 참 겸손도 하시다고 짤막하게만 보내드렸습니다. 이 자매님을 보면서도 제가 서두에 한 생각에 변함이 없습니다. 설령 그렇지도 않겠지만 이분의 말씀과 같이 신앙의 깊이가 없다고 하신 것처럼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저는 오히려 이게 더 깊은 신앙일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왜 그럴까요? 저는 그분이 겸손해서 그렇게 표현해서 그렇지 절대 깊이가 없는 신앙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무리 평일 미사를 열심히 다니며 수많은 기도를 성당에서 해도 교우들 간에 따뜻한 마음으로 인사도 하지 못하는 신앙인이라면 그런 신앙인이 가지고 있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지 그게 어디 신앙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설령 그분의 말씀처럼 신앙의 깊이가 없지도 않겠지만 없다고 하는 게 사실이라고 해도 차라리 그런 따뜻한 마음으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려고 하는 그런 마음이 하느님 보시기에 더 아름다운 자녀의 모습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굳이 하느님을 언급하지 않아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가령 가족들이 부모님 댁에 모임이 있어서 갔는데 그냥 부모님과 관련된 일만 하고 형제들끼리는 그냥 남처럼 온 건지 만 건지 하면서 그냥 자기 볼 일만 보고 간다고 한다면 그게 어디 가족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고 생각해보면 그냥 답이 나오는 것입니다. 과연 이런 모습을 어떤 부모가 보더라도 마음이 편할 리가 있겠는지요? 부모 입장에서는 서로 인사를 하며 형제간에 우애를 다지는 모습을 보는 게 더 행복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정 교수님의 죽음학 강의와 임사체험 등 다양한 강의를 들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신앙과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봅니다. 이 죽음은 단순한 죽음을 말하는 게 아니고 우리 같은 경우는 이 죽음 너머에 있는 세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 세계를 잘 가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바로 그 세계에 잘 가기 위해서는 짧은 이 유한한 육신의 세계에서 잘 훈련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 훈련의 가장 정점에 있는 게 바로 사랑이 될 것입니다. 그 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그 세계에 가려고 하는 수많은 훈련을 하며 흘린 그 땀방울의 가치는 그냥 땀방울로만 남을 것입니다. 그 땀방울이 결실로 남지 않는다면 우리의 신앙도 어쩌면 허망한 신앙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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