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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0 사순 제5주간 목요일...독서,복음(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3-03-29 조회수318 추천수1 반대(0) 신고

1독서

<너는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17,3-9
그 무렵 3 아브람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자, 하느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4 “나를 보아라. 너와 맺는 내 계약은 이것이다.
너는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5 너는 더 이상 아브람이라 불리지 않을 것이다. 이제 너의 이름은 아브라함이다.
내가 너를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6 나는 네가 매우 많은 자손을 낳아, 여러 민족이 되게 하겠다.
너에게서 임금들도 나올 것이다.

 

7 나는 나와 너 사이에, 그리고 네 뒤에 오는 후손들 사이에
대대로 내 계약을 영원한 계약으로 세워,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에게 하느님이 되어 주겠다.
8 나는 네가 나그네살이하는 이 땅,
곧 가나안 땅 전체를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에게 영원한 소유로 주고,
그들에게 하느님이 되어 주겠다.”

 

9 하느님께서 다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계약을 지켜야 한다.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이 대대로 지켜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 너는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복음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리라고 즐거워하였다.>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51-59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5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
52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이제 우리는 당신이 마귀 들렸다는 것을 알았소.
아브라함도 죽고 예언자들도 그러하였는데,
당신은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을 것이다.’ 하고 말하고 있소.
53 우리 조상 아브라함도 죽었는데 당신이 그분보다 훌륭하다는 말이오?
예언자들도 죽었소. 그런데 당신은 누구로 자처하는 것이오?”

54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나 자신을 영광스럽게 한다면 나의 영광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를 영광스럽게 하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너희가 그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하고 말하는 바로 그분이시다.
55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하지만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면
나도 너희와 같은 거짓말쟁이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분을 알고 또 그분의 말씀을 지킨다.
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리라고 즐거워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기뻐하였다.”

 

57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당신은 아직 쉰 살도 되지 않았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다는 말이오?”
5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
59 그러자 그들은 돌을 들어 예수님께 던지려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숨겨 성전 밖으로 나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예수와 아브라함

이 대목은 예수가 귀신들렸다는 유다인들의 비난에 대한 논쟁과 아브라함보다 위대하다는 예수의 자기계시에 대한 논쟁으로 구분될 수 있다. 그러나 예수의 영광이란 주제가 이 두 부분을 연결한다. , 하느님과 일치된 예수 자신이 계시 내용으로서 그 기조를 이룬다.

 

 

51

예수의 말을 지키는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 곧 구원을 약속한다. “예수의 말을 지킨다란 예수의 말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그 요구를 채움을 뜻한다. “죽음을 겪지 않는다란 당시 사람들의 표현방식으로서 예수를 믿음으로써 누리게 되는 영원한 생명을 가리킨다.

 

52

예수는 악마의 사주를 받아 신적 권력을 자처한다는 것을 이제 참으로 알았다는 뜻이다.

 

예수의 말을 자구대로 외형적인 뜻으로만 받아들인 유다인들의 오해 또는 곡해다. “죽음을 맛보다란 표현은 죽음을 겪는다에 비해 모든 인간이 숙명적으로 맞이해야 하는 쓰라린 죽음의 운명에 역점이 있다.

 

53

아브라함과 예언자들. 이른바 하느님의 사람들도 죽음을 맛보았는데, 그들도다도 더 위대하다고 생각하는지를 되묻는 악의적 거부다.

하느님만이 영원히 사시는 분이요 생명을 줄 수 있는 분인데 하느님과 동등하다고 자처하느냐는 뜻이다. 사실상 예수의 자기계시 및 구원약속에는 이런 의미가 시사된다.

 

54

50절과 같은 논리이며 내용도 거의 같다. “영광스럽게 한다란 주로 예수의 십자가상 죽음과 관련된 영광을 뜻한다. 하지만 예수의 지상활동 가운데서도 이미 이루어진 영광을 언급한 대목이 더러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현재적 의미가 강조된다. 아버지께서 예수를 계속 영광스럽게 하시는 분으로서 계시다는 것이다. 바로 이분은 예수를 파견하신 분으로서, 또한 예수에 대해 증언하신는 분으로서, 또한 예수에 대해 증언하시는 분으로서 계시는 예수의 아버지 하느님이시다. 따라서 예수의 현재적 영광은 예수에 대한 아버지 하느님의 계속적 증언에 있다고 할 수 있다.

 

55

하느님과 친교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예수 자신이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자기 말을 지키도록 요구하고 구원의 약속도 할 수 있다는 뜻이 시사된다.

 

56

유다인들의 악의적 질문에 대한 예수의 대답이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한계를 알았기에 미래에 희망을 두었고, 예수의 날을 보겠기에 즐거워했으며, 또한 보고서 기뻐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가 자기보다 더 위대하다고 증언한 셈이라는 것이다. 이 구절은 아브라함이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는 유다인들의 통념에 바탕을 둔 그리스도교적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아브라함이 내다본 기쁨과 희망이 예수에게 와서 완전히 성취되었다는 뜻이다. “내 날은 예수의 지상 출현을 가리키며 하느님께 유보된 날과 관련된다. 예수는 여기서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의 목적으로서, 또한 아브라함이 기뻐하는 근원으로서 선포된다.

 

57

쉰 살은 실재 나이가 아니라 남자의 원숙한 연배를 가리키는 이를테면 지천명의 나이와 같은 상징적인 의미다. 유다인들의 통념에 따르면 의인은 나이 들어 죽기직전에 천상계를 내다본다. 이런 사고를 바탕으로 표현된 말로서 예수는 아직 그런 연배도 아닌데 천상계를 내다보았단 말이냐?”고 빈정대는 말이다. 즉 예수의 정체와 말에 대한 유다인들의 몰이해나 오해가 시사된다.

 

58

예수를 가리켜 나보다 먼저 계셨다라고 말한 세례자 요한의 표현과 달리 예수는 실제적 현재로서 자기 자신을 드러낸다. 즉 자기 자신을 시간의 지배 속에 두지 않고 하느님의 영원, 곧 영원한 현재 속에 두고서 표현한다. 그리스도의 신적 선재가 시사된 셈이다, 아브라함은 이런 분”(영원 속에 현존하시는 분)에 비해에 비하면 이 세상에 태어난 적이 있는 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예수는 본질적으로 월등하고 아브라함보다 절대적 우선권을 지녔다는 것이다.

 

예수의 이 자기계시는 자신의 신적 품위와 실존만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구원에 대한 약속의 근거를 제시하고자 한다. , 예수는 이미 언제나 하느님께 속해 있고 집에 머물러 있는 아들로서 자기를 믿고 따르는 자들을 참된 자유로 이끌고 죽음을 이기는 생명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예수의 이 자기계시는 나는 있는 자 곧 나다라고 계시한 하느님의 자기계시에 가장 가깝고 그 맥락도 같다.

 

59

예수의 자기계시를 신성모독으로 여긴 유다인들의 반응이다. 유다인들은 예수의 말 가운데서 예수의 신적 품위가 언급되었다는 것을 알았으나 예수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유다인들은 신적 품위를 갖춘 예수에게 감히 폭력을 가할 수 없었고, 예수 자신이 몸을 숨겨그들을 떠나갔다는 설명이다. 일부 사본에는 그분은 그들의 한가운데를 지나서 떠나가셨다란 말이 덧붙여져 있다. “몸을 숨기다는 예수가 그들에게 더는 계시 말씀을 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 자리하는 것조차 거절했음을 시사한다. 예수가 성전을 떠났다는 표현도 맥락을 같이 한다. 즉 예수는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성역을 떠나갔다는 뜻으로서 예수를 믿지 않는 유다인들의 비구원과 그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시사한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나라가 잘되기위해서는 국민이 건강해야 합니다. 공무원들에게 주는 체력단련비를 전국민에게로 확산을 시켜야 합니다. 어느 주민센터에서는 조그마한 헬쓰장을 이용하는데 있어서 기초생활수급자에게는 반액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것만에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언젠가에는

가까운 거리를 자가용을 이용하지 않고 걷도록 하자는 것들도 있었습니다. 그러하자면 걷는 것이 제일 좋다고들 하므로 국민들이 걸음을 어떻게든 할수 있도록 무엇으로 대치하던가 국민이 건강하게 살아갈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것이 선진국이라고 봅니다. 선진국의 모델이 되는 나라를 만들어야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건강해야 합니다. 국민이 건강해야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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