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사순 제5주간 금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3-03-30 조회수740 추천수6 반대(0)

신앙은 두 개의 날개가 있어야 건강합니다. 신앙은 두 개의 날개가 기쁜 소식이 됩니다. 신앙은 두 개의 날개가 있어야 신비가 됩니다. 하나는 ‘이성(理性)’입니다. 이성은 물을 담는 그릇과 같습니다. 이성은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와 같습니다. 신앙에서 이성은 교리가 되고, 제도가 되고, 신학이 됩니다. 바오로 사도를 비롯해서 교부들은 신앙을 위한 이성의 탑을 굳건하게 세웠습니다. 저도 신학교에서 신앙을 위한 이성을 배웠습니다. 철학, 심리학, 인간학은 이성을 다지는 학문입니다. 성서신학, 윤리신학, 조직신학, 실천신학, 교의신학, 교회법, 사목신학은 교회의 가르침을 전하는 학문입니다. 이성은 냉철해서 마치 얼음과 같습니다. 이성은 나무의 뿌리와 같아서 유혹의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성이 결여된 신앙은 자칫 광신이 될 수 있습니다. 이성이 결여된 신앙은 모래 위에 세운 집과 같아서 유혹의 바람이 불면 쉽게 무너지게 됩니다.

 

다른 하나는 ‘감성(感性)’입니다. 감성은 이성이라는 그릇에 담긴 물과 같습니다. 감성은 이성의 ‘틀’을 넘어서는 성령의 이끄심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성으로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권위에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감성으로도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그 감성은 ‘표징’이 되었습니다. 이성의 눈으로 물이 포도주가 되는 것을 밝히는 것은 어렵습니다. 이성의 눈으로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도 12광주리가 남는 것을 밝히는 것도 어렵습니다. 이성의 눈으로 물위를 걷는 예수님의 모습을 설명하기도 어렵습니다. 이성의 눈으로 하느님의 아들이 구유에 태어나는 것을 설명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죽음 그리고 부활은 이성의 힘으로는 해석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감성은 ‘믿음’의 다른 말이 되기도 합니다. 여기서 믿음은 이성의 ‘틀’을 넘어서는 것을 뜻합니다.

 

꽃동네에서 주관하는 피정에 함께 했습니다. 묵주기도, 찬양, 강의, 미사가 있었습니다. 미사 중에 성령께 청하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신부님께서 기도를 주관하였습니다. 저도 함께 안수를 하였습니다. 강의 때와는 다른 모습이 있었습니다. 성령의 언어로 기도하면서 많은 분들이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회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이티에서 살고 있는 신부님은 수녀님, 수사님과 함께 매주 성령기도회를 한다고 합니다. 성령께 청하지 않으면 아이티에서 지내는 것이 너무 힘들고 어렵다고 합니다. 사탄은 이성의 힘으로 아이티를 떠나야하는 이유를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매주 성령기도회를 하지 않았으면 10년 넘게 아이티에 머무는 것은 고통의 바다에 떠 있는 것 같았을 거라고 하였습니다. 지금도 돌아갈 수 있으면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300명의 꽃동네 가족들을 생각하며 힘을 낸다고 합니다. 피부병에 걸려서 온 몸이 짓무른 환자를 옮기면서 피부병에 걸렸다고 합니다. 나는 피부병에 걸려도 좋으니 고통 중에 있는 저 환자를 하느님의 품으로 이끌어 주시기를 청하였다고 합니다. 나의 신앙이 이성과 감성의 조화를 이루는 신앙인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예레미야는 사람들에 의해서 억울하게 피해를 당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억울한 이들의 한을 풀어주려던 예레미야는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예레미야의 모습은 억울하게 십자가에 달려야 했던 예수님을 생각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로서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것이 무슨 잘못입니까! 나를 믿지 못하겠다면 내가 하는 일들이라도 믿어 주십시오.’ 그러나 자신들이 가진 권력과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던 바리사이파와 율법학자들은 검찰과 판사가 되어서 예수님께 사형선고를 내리려고 합니다. 이들이 부당하게 예수님을 고발하고 재판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군중들의 무관심도 한 몫을 하였습니다. 내가 하는 자선, 희생, 선행은 힘이 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하는 나눔, 사랑, 봉사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만을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손, 발, 가슴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 당신 말씀은 영이며 생명이시옵니다. 당신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나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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