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성주간 화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3-04-03 조회수1,200 추천수4 반대(0)

예전에 여명의 눈동자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제가 첫 보좌신부로 있을 때 방영되었으니 어느덧 32년이 되었습니다. 드라마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철조망이 가로막혀 있고 사랑하는 연인이 헤어지는 모습이었습니다. 남자는 여자에게 아이를 꼭 낳고 살아 있으라고 부탁합니다.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 남자를 애타게 바라보는 여자는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입맞춤을 합니다. 이 드라마는 기쁨과 희망보다는 슬픔과 절망이 많았습니다. 강자의 힘과 폭력에 희생당하는 약자들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시대를 잘못 태어난 이들의 고난과 역경이 있었습니다. 드라마는 이런 대사로 끝이 납니다. “그해 겨울. 지리산 이름 모를 골짜기에 내가 사랑했던 여인과 내가 결코 미워할 수 없었던 친구를 묻었다. 그들은 가고 난 남았다. 남은 자에겐 남겨진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희망이라 이름 지을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만이 이 무정한 세월을 이겨낼 수 있으므로.”

 

여명의 눈동자와 함께 시작한 저의 사제생활도 32년이 되었습니다. 보좌신부로 8년 있었고, 본당 신부로 8년 있었습니다. 교구청에 8년 있었고, 해외에 8년 째 있습니다. 일부러 그렇게 한 것도 아닌데 사계절이 있는 것처럼 8년씩 4번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여명의 눈동자처럼 시대를 잘못 태어난 것은 아닙니다. 저는 60년대에 태어났고, 경제성장의 시대를 살았습니다. 가난한 나라였지만 지금은 세계 10위의 경제력으로 풍요를 누리면서 대한민국 국민이 자랑스러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10년마다 100만 명씩 신자가 늘어나는 교회에서 사제생활을 하였습니다. 뒤를 보아도 감사할 일이고, 옆을 보아도 고마운 일이고, 20234월의 뉴욕생활도 감사할 일입니다. 호사다마, 새옹지마라고 제게도 한두 번 시련과 아픔은 있었지만 돌아보면 웃음 지을 수 있는 추억입니다. 유행성출혈열로 병원에 입원했었지만 다행히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건강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골절로 발목 수술을 했지만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잘 걷고 있습니다. 저의 부족함 때문에 실수와 잘못이 있었지만 큰 무리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감사의 32년입니다.

 

오늘은 성주간 화요일입니다.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은 하느님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첫 번째 제자들은 그물을 버리고, 배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 앞에는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마귀들도 예수님을 무서워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 들린 사람들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의 권위도 예수님께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의 위선과 교만을 비난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도 그들의 말은 따르지만 그들의 행실은 배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과 계명의 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권위를 보여 주셨습니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나라의 표징을 직접 보여 주셨습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이 전해지는 것입니다. 눈 먼이, 중풍병자, 나병환자, 귀먹은 이를 치유해 주셨고, 죽은 이까지 되살려 주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앞에는 꽃길만 있을 것 같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배반을 이야기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유다는 은전 서른 닢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것이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고백했던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3번이나 주님을 배반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꽃길처럼 펼쳐졌던 예수님의 앞에 가시밭 길이 있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 수난의 길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모두 뿔뿔이 도망갔고, 호산나라고 외쳤던 군중들은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쳤습니다. 십자가가 너무 무거워 3번이나 넘어지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십자가 위에서 주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절규하셨습니다. 성주간 화요일입니다. 지금 나의 삶은 어떤 모습인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을 배반하는 모습인지, 뿔뿔이 도망가는 모습인지, 두려워 숨어 있는 모습인지 보면 좋겠습니다. 여명의 눈동자에도 선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지금 나의 삶이 예수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던 키레네 사람 시몬의 모습이면 좋겠습니다. 예수님 얼굴에 흐르던 피와 땀을 닦아드린 베로니카의 모습이면 좋겠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이 여명의 눈동자가 되어서 찬란한 아침을 맞이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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