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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바보가 되지 않으면 만날 수 없는 하느님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3-04-03 조회수352 추천수1 반대(0) 신고

 

조금 전에 박영희 자매님의 글 한 편을 봤습니다. 그 글에는 함 신부님의 묵상글을 직장에서 함께 나눔을 하셨다고 하시면서 전하는 내용 중에 바보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침 오늘 저도 길을 걸으면서 한 생각이 있었는데 그게 바보가 만나는 하느님이라는 제목으로 한 묵상이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고자 한다면 바보가 돼야만이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천국은 바보들의 잔치장인가 하면 그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바보는 바보 멍청이와 같은 그런 바보가 아닙니다. 영혼이 맑은 바보입니다. 우리는 바보를 말할 때 지능이 낮아서 바보라고 말할 때도 있지만 똑똑한 사람인데도 바보라고 말할 때도 있습니다. 이 말은 병립할 수 있는 말일까요? 같이 양립할 수도 없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도 아마 하실 수 없는 게 하나가 있다면 딱 하나가 있을 겁니다. 바로 음과 양이 함께 존립하는 것입니다. 그건 논리적으로도 불가능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논리 자체에서 불능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전지전능하신 분이라서 그것도 가능할지는 언어의 장난으로서는 가능할 수는 있을지는 모르지만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영혼이 맑은 바보는 우리의 눈에는 바보로 보일 뿐 하느님 눈에는 바보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런 바보가 있다면 그럼 그는 바보일까요, 바보가 아닐까요? 그는 바보가 아닙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왜냐하면 하느님의 눈이 더 정확한 눈이지 인간의 눈이 하느님 눈보다 더 정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맑은 바보는 바보라는 명칭을 얻기는 하지만 실제는 바보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런 영혼이 하느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당연한 것입니다. 그는 바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때의 바보는 세상에서 통하는 논리의 잣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영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느님의 마음과 같은 영혼의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 영혼의 렌즈로 그 사람을 보니 당연히 바보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치 색안경을 끼고 보면 그 색대로 보이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바보는 누구인가요? 실제는 바보가 아닌데 바보로 보는 그 바보가 진짜 바보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혼이 맑은 바보는 여기서 말하는 가짜 바보입니다. 그럼 실제는 바보가 아니라는 게 되는 것이죠? 말장난하는 것 같지만 이 논리 속에는 오묘한 논리가 숨어 있습니다. 

 

고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당신 자신을 바보라고 하신 말씀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그분이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를 한번 곰곰이 묵상해보면 이 말씀이 장난 같은 말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영혼이 맑은 바보는 그렇다면 과연 어떤 렌즈를 착용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영혼일까요? 이 렌즈는 특수 렌즈입니다. 도수가 이미 정해진 렌즈가 아닌 것입니다. 마치 다초점 누진 렌즈와 같은 것입니다. 단일 도수로 된 렌즈는 그 도수로만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하나의 도수로만 고정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초점렌즈는 보는 부위에 따라 도수가 다릅니다. 하나의 렌즈에 두 개 이상의 초점으로 사물을 보려면 렌즈에 그 초점에 상응하는 부분만을 통해서 볼 때만이 수정체에 초점이 잘 맞추어져서 상을 또렷하게 잘 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비유로 표현한다면 이런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은 단일 도수를 가진 렌즈를 착용한 사람과 비교해봤을 때 상대적으로 고정된 시각으로만 사물을 볼 수 있는 면이 많아서 편향적이고 폐쇄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 확률이 높지만, 이에 반해 다초점렌즈로 보눈 사람은 열린 사람이고 마음도 개방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폐쇄는 바로 흔히 옹졸하다고 말할 때 사용하는 그런 폐쇄를 말합니다. 그런 사람은 바로 우물 안에 갇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자기는 그 우물 안 세계가 마치 온 세상인 줄로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느님 말씀과 예수님의 말씀을 어떤  방식으로 인식을 하게 될까요? 아마 다음과 같이 인식을 하지 않을까 미루어 짐작해봅니다.

 

말은 이상적으로 맞는 말씀이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살면 이 세상에서는 패배자나 실패자로 살 수 있기 때문에 달리 말해 바보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이상은 좋지만 그렇게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영혼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하느님께서는 이런 영혼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실까요? 인간 세상의 언어로 표현한다면 약은 인간입니다. 겉으로는 하느님을 따르려고 하는 외양을 가지고는 있지만 실상은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논리 그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는 이렇게 사는 사람이 성공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하늘나라를 소망하고 가기에는 요원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영혼이 맑은 바보들만이 하느님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왜냐하면 그런 렌즈로만 봐야 하느님을 볼 수 있게 돼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렌즈로는 볼 수가 당연히 없는 것입니다. 바로 그 다른 렌즈로는 영원한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그건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그 렌즈로만 볼 수 있어서 그 렌즈로 갈아끼우는 방법만이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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