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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3.04.04)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3-04-04 조회수632 추천수4 반대(0) 신고

 

2023년 4월 4일

성주간 화요일

복음 요한 13,21ㄴ-33.36-38

그때에 제자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신 예수님께서는

21 마음이 산란하시어 드러내 놓고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22 제자들은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 몰라 어리둥절하여

서로 바라보기만 하였다.

23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 품에 기대어 앉아 있었는데,

그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였다.

24 그래서 시몬 베드로가 그에게

고갯짓을 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람이 누구인지 여쭈어 보게 하였다.

25 그 제자가 예수님께 더 다가가,

“주님, 그가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다.

26 예수님께서는 “내가 빵을 적셔서

주는 자가 바로 그 사람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리고 빵을 적신 다음

그것을 들어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에게 주셨다.

27 유다가 그 빵을 받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

28 식탁에 함께 앉은 이들은

예수님께서 그에게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아무도 몰랐다.

29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주머니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예수님께서

그에게 축제에 필요한 것을 사라고

하셨거나, 또는 가난한 이들에게 무엇을

주라고 말씀하신 것이려니 생각하였다.

30 유다는 빵을 받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때는 밤이었다.

31 유다가 나간 뒤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

32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33 얘들아,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너희는 나를 찾을 터인데,

내가 유다인들에게 말한 것처럼 이제

너희에게도 말한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36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다.

그러나 나중에는 따라오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37 베드로가 다시 “주님, 어찌하여

지금은 주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까?

주님을 위해서라면 저는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 하자,

38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나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겠다는 말이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손주를 돌보는 어느 할머니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신부님, 제 손주가 저보다 돈을

더 많이 벌어요.”

무슨 말씀인가 했습니다.

갓난아기가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습니까?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갓난아기가

돈을 벌고 있었습니다.

자자체에서 출산지원금,

육아지원금 등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 액수도 생각보다 상당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출산율이 전 세계에서

최저라는 사실이 이상했습니다.

그 뒤, 젊은 부부를 만날 일이 있어서

이 부분에 관해 물었습니다.

국가에서 그렇게 많은 지원을 하고 있는데도

왜 아기를 갖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이 부부는 그런 현금성 지원보다

더 근본적인 해결을 해줘야 한다고

이야기하더군요. 출산 이후 육아에

힘을 쏟으면서 직장 생활하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출산 휴가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한데 그렇다고 직장을

그만두면 나중에 경력 단절로 재취업이

어렵다고 말합니다. 또 자녀를 키우는데

예전과 달리 많은 교육이 필요한데,

직장까지 잃게 되면 모두 불행해질 것 같아서

아이를 낳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잘 몰랐음을 인정했습니다.

결혼도 하지 않고 애를 낳고

키운 적도 없기에 그냥 간단하게만

생각했었습니다. 잘 모르면서도

왜 아기를 낳지 않느냐면서 부부들에게

그 탓을 돌렸던 것입니다.

인구 절벽을 만든 것은 저를 포함한

모든 이의 책임일 텐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 당사자 탓을 하면 안 되었습니다.

‘남 탓’에 너무나 익숙한 ‘우리’였습니다.

자신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자신은

그럴 리가 없다면서 착각합니다.

그러나 전혀 책임이 없지 않습니다.

자신도 그 상황에 놓이면 똑같은 모습을

보일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수난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붙잡혀서 수난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하실 것입니다.

이 사실을 예수님께서는 모두 잘 알고

계셨습니다. 심지어 누가 당신을

팔아넘길 줄도 아셨습니다.

그 사람은 유다 이스카리옷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가

세 번이나 당신을 모른다고

말할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토록 사랑을 많이 받았던 제자들이

어쩌면 이럴 수 있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 역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 숨 쉬며 사는 것만으로도

큰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의 사랑을 잊어버리고,

주님의 뜻에 반대되는 모습을

취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주님을 팔아넘기는 것이고,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만이 아닌

수십 번을 말하는 우리가 아닐까요?

자신을 늘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남 탓이 아닌, 자신이 지금 실천해야 할

주님의 뜻에 집중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제 더 이상 주님께

아픔을 드리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위대한 행동이라는 것은 없다.

위대한 사랑으로 행한 작은 행동들이

있을 뿐이다(테레사 수녀)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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