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뜻깊은 성목요일 감실조배가 되기 위해 필요한 개선점에 대한 단상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3-04-06 조회수537 추천수1 반대(0) 신고

 

그제 새벽에 한 시간짜리 광주대교구 옥현진 주교님의 사순특강 유튜브 강의를 들었습니다. 특히 제목에서 뭔가 끌림이 있어서 들었던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에서 배울 수 있는 신앙이라는 그런 의미의 제목이었습니다. 특히 제 세례명이 베드로라서 뭔가 끌림이 있어 듣게 된 것입니다. 처음엔 베드로 사도와 관련된 부분이 있었는데 어디서부터는 전혀 딴 방향으로 흐르긴 했지만 아주 유익했습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였습니다. 

 

전체 내용면에서는 주제와 약간 일관성이 조금 떨어지는 것이었는데요 강의를 들으면서 주교님께서 만드신 ppT 자료 화면에 아주 인상적인 게 많이 있었습니다. 제가 메모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묵상거리가 한 10개 정도는 그냥 떠올랐습니다. 지금 봐서는 그것만 해도 주교님의 강의는 저에게는 아주 만족스런 강의였습니다. 제가 나중에 부활 지나서 그 강의를 다시 들으면서 이거 묵상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내용을 메모해 순차적으로 묵상해보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 세 개 정도는 떠오릅니다만 일단 오늘 성목요일 만찬 미사 후에는 감실조배를 하게 돼 이와 관련해서 주교님의 강의에도 나오는 대목중 그 내용이 인상적이고 또 오늘 감실조배도 있고 해서 제가 이 부분에 대해 예전부터 많이 생각한 부분이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생각이라 함부로 교회 내의 예식에 대해 말할 권한도 없거니와 또한 조심스런 부분이라 쉽게 의견을 표명할 그런 상황이 아니라서 그냥 혼자만의 생각으로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주교님의 강의중에 나오는 어떤 사실을 듣고 새로 다시 이 부분에 대해 진지하게 묵상을 해봤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태석 신부님께서 수단에서 사목하실 때의 일화 가운데 하나입니다. 한 아이가 치료를 받는 사진을 보여줬습니다. 그 아이가 속해 있는 부족은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눈물을 잘 흘리지 않는 그런 성향의 부족이라고 합니다. 그런 아이도 예수님의 수난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게 되면 눈물을 흘린다는 그 내용을 언급하셨습니다. 그외에 다른 내용은 없었습니다. 단편적인 내용이었는데요 저는 그 말씀을 들으면서 순간이었지만 제 머리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짧은 시간에 이어졌습니다. 일단 이건 다음에 시간이 있을 때 묵상해야겠다고 생각만 하고 다른 내용의 강의에 집중했습니다. 그럼 이 내용과 성목요일 감실조배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 하고 의아한 부분이 있을 겁니다. 크게 관련은 없지만 저는 관련을 지어보고 싶습니다. 

 

그럼 이와 관련된 저의 생각을 한번 피력해보겠습니다. 저도 오늘 감실조배를 하게 되면 열두 번의 감실조배를 하게 됩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두 번은 약식으로 하긴 했습니다. 9회는 감실조배를 최소 열 시간 이상 논스톱으로 하였습니다. 2011년 11월 6일 영세를 받고 나서 2012년 성목요일에 처음으로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땐 처음으로 이게 천주교 신앙을 하게 되면서 하게 된 것이었는데 원래는 제가 처음에 그게 사실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했지만 그 이전에 저를 인도하신 자매님과 식당에서 저녁을 같이 먹게 되면서 감실조배에 대해 설명을 듣고 그때 열 시간을 하고 싶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사실 그때 그렇게 하려고 한 이유가 있었는데요 그 이유를 제가 언제 체험글에서 한번 밝혔는지 그게 지금 기억이 애매하긴 합니다만 한번은 밝혔다가 그 글을 내렸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언제 한번 그 이유를 밝히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게 계기가 되어 최소 10시간 감실조배를 하게 된 것입니다. 어머니 상을 기준으로 해서 그 전 해에는 17시간 또 장례 후 감실조배 때는 16시간 이렇게 해서 계산해보면 지금까지 근 11년 동안 최소 100시간 이상은 한 것이 됩니다. 이건 제가 이유를 밝힌 적이 있습니다. 제 어머니의 영혼을 위해서 제가 대신 보속한다는 의미에서 했다는 내용으로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천주교로 개종했기 때문에 뭔가 해도 그냥 이렇게 하는 모양인 것 같다는 생각해서 순순히 따라야 하는 것이라 그냥 당연히 교회에서 하는 대로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해부터는 그간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이건 좀 아니다라고 생각되어진 부분이 있었습니다. 조배를 온전히 해야 되는데 예식 중간에 이런저런 형식 때문에 조배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말도 여러 차례 하는 부분도 있는 게 사실입니다. 이런 상황을 만약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보실 것 같습니까? 제가 봐서는 이건 조배가 아니고 어디 당나라 군대 오합지졸과 같은 조배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 부분에 대해 전례부를 담당하고 계신 분에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말 그대로 감실조배면 조배를 해야 되는데 사실 이건 엄격히 말하면 조배가 아닌 것이지 않냐고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매일미사에 나오는 예식이 있다고 해서 저도 사실 그때 보니 그 예식 순으로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럼 왜 이게 제가 생각했을 때 진정한 감실조배의 의미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고 하는지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실제 조배는 말 그대로 묵상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아야 합니다. 지금 대부분의 교회에서 하는 그러니까 매일미사에 나오는 형식대로 한다면 그 속에는 묵주기도도 있고요 성 토마스 찬미가에 대한 기도문과 성가로 이루어진 게 주된 부분입니다. 잘 한번 생각해보면 물론 성체조배에 관한 여러 교회의 가르침 속에는 일부는 묵주기도를 하거나 성경을 봉독할 수도 있다고 하는 내용이 있긴 합니다만 그건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생각보다 1시간을 조배를 하더라도 1시간 조배에 집중하는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차선책으로 그나마 그렇게 해서라도 보조적인 의미에서 교회가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의미이지 그게 진정한 의미에서의 조배는 아닌 것입니다. 

 

아마도 이런 사실을 감안해서 매일미사에 그런 것을 참작해 일반적인 감실조배방식을 정한 것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저도 이런 의미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을 하긴 하지만 앞으로는 이점에 대해 진지하게 한번 제고해볼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특히나 여러 전례중에서 특히 부활을 맞이하는 전례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저에게 영세를 주신 신부님으로부터 저의 첫 부활절 미사를 앞두고 성당 마당에서 신부님께서 부활성야가 가장 중요한 전례라고 말씀하신 게 기억이 납니다. 그 말씀을 하시면서 신부님께서 추가로 하신 말씀이 사람들이 이걸 제대로 잘 모른다는 말씀도 부연하셨습니다. 

 

그럼 이 말씀을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엄청난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전례를 준비하는 과정중에 있는 일부분이 바로 감실조배가 되는 것입니다. 복음에서도 나오듯이 한 시간도 깨어있지 못하냐고 하는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감실조배의 시간을 한 시간 단위로 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그렇게 생각해본다면 이것도 그렇다고 자주 있는 것도 아니고 1년에 단 한 번밖에 없는 것인데 이왕이면 최대한 순수한 의미에서 한 시간 동안 진정으로 예수님의 죽음을 묵상하는 데에만 집중하는 조배 시간을 가지는 게 더 진정한 의미의 감실조배이지 않을까 하는 게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조금 전에 언급한 아프리카 수단의 그 아이처럼 실제 눈물은 흘리지는 않더라도 그런 정도의 마음을 그 시간만이라도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해보려고 하는 게 진정한 의미에서의 뜻깊은 성목요일 감실조배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묵주기도도 기도이고 이것도 넓은 의미에서는 관상기도로도 갈 수가 있는 기도이지만 성녀 대 데레사의 자서전 책에서도 나오긴 하지만 그것은 어느 정도 관상의 수준에 이를 때는 그게 가능하지만 지금과 같은 시스템에서는 그게 현실적으로는 어려움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성녀께서 말씀하신 것은 어느 정도 높은 정도의 수준에 이른 사람에게는 해당이 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냥 형식적인 기도 수준에 그칠 수 있기 때문에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중요한 전례의 일부분이라는 측면에서는 묵주기도를 하는 것 그 자체도 의미가 있겠지만 감실조배라는 본질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는 의미가 조금 퇴색될 수 있다는 점에는 아쉬움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물론 이런 게 습관이 되지 않은 보통의 일반 평신도에게는 한 시간 조배를 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은 십분 이해를 하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전례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는 그 전례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를 한다면 우리는 그에 맞게 최소한 어떻게 해서라도 그 시간만이라도 힘들겠지만 온전히 집중해서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할 수 있는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서 해보려고 하는 그런 정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게 그게 최소한 예수님께서 가신 그 길을 따르는 사람으로서 해야 하는 최소한의 예의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감실조배의 형식은 좀 더 이런 방식으로 개선됐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덤으로 해보게 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