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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 영근 신부님의 복음 묵상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3-04-09 조회수660 추천수1 반대(0) 신고

230409. 주님 부활 대축일.

 

부활하신 분은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

 
알렐루야! 부활 대축일을 축하드립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 예수님의 무덤에 갔다가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는 것을 보고 달려와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말하였습니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요한 20,2)
 
그렇다면, 그분은 어디에 계십니까? 혹 여러분도 그분이 어디에 모셔졌는지 모르십니까? 진정, 부활하신 분은 지금 어디에 계실까요? 여러분은 예수님을 어디에 모시고 계십니까?
 
‘부활하신 분이 지금 어디에 계시는지?’를 보기 위해, 먼저 ‘부활은 대체 어디에서 벌어지는지?’를 들여다봅니다. 그것은 당연히 무덤에서 벌어집니다. 곧 죽음에서 벌어집니다. 그러니 죽음이 있는 곳에 부활이 있습니다. 이는 죽음 없이는 부활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부활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내 삶 안에서 죽음을 맞아들여야 한다는 말이 됩니다. 그냥 죽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탄생으로 건너가는 죽음말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대체 왜 죽는 것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을 것입니다만, 우선 모든 죽음의 공통적이고 일차적인 이유는 ‘태어났음’에 있습니다. 그 누구도 태어나지 않고서는 죽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탄생이 죽음의 제1원인이 됩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단 한 분’ 예외가 있습니다. 부활의 신비는 바로 이 분에게서 드러납니다.
 
이를 니사의 성 그레고리오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의 죽음은 그분의 탄생의 결과라고 말하기보다,
그분이 죽을 수 있도록 탄생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원인이 되어 ‘탄생’이 발생했다는 것은 탄생이 죽음의 원인이 아니라, 죽음이 탄생의 원인이라는 뜻입니다. ‘죽음이 탄생의 원인이라니’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지만, 분명 이 죽음에는 탄생이 있습니다. 곧 탄생에 죽음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탄생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곧 죽음이 부활의 새로운 탄생이 됩니다.
 
여기서는 탄생, 죽음, 부활이 하나로 삼위일체를 이룹니다. 이 참 생명을 인간에게 건네주는 것이 바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신비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경이로운, 이 얼마나 크고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운 사랑의 신비인지요!
 
이를 히에로니무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못 박히시고 잉태되셨다. 그리고 세상은 만들어졌다.”
 
그러니 ‘못 박힘’은 성령으로 날인되어 잉태됨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그 잉태는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무덤으로부터 부활한 ‘새로운 창조’를 말합니다. 그렇게 세상은 새롭게 만들어졌습니다.
 
그것은 비로소 부활과 함께 새로운 생명, 새로운 나라, 새로운 삶의 방식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살아야 합니다. 곧 우리는 부활과 함께 새 생명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이를 사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미리 증인으로 선택하신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 백성에게 선포하고 증언하라고 우리에게 분부하셨습니다."(사도 10,41-42)
 
그러니 우리에게는 부활을 삶으로 증거 해야 하는 소명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다시 질문해 봅니다. ‘이 부활’, ‘이 사랑’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예수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
 
이러한 삶을 파스칼은 이렇게 적나라하게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끝 날까지 고통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고통과 죽음 가운데 부활의 생명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고통받고 죽으면 부활을 맛볼 것입니다. 고통 받기를, 죽지를 거부하면 부활을 체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삶 안에 사랑의 순교가 자리 잡으면, 곧 사랑하여 자신을 내어주면 그 안에서 함께 죽으시면서 함께 살아계신 그분의 생명을 체험할 것입니다. 이처럼, 부활은 지금 우리의 고통, 우리의 죽음 가운데 있고, 우리의 죽음을 통하여 드러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결국, 부활은 ‘지금 여기’에서의 타인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고통과 죽음의 삶 한가운데 모셔져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오니, 주님! 오늘 저희 안에 살아계신 야훼 주님을 찬양합니다. 저희의 고통과 죽음 속에서 동행하시며 저희와 함께 부활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알렐루야!!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무덤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요한 20,8)

주님!
제 안에 드소서.
아버지께서 제 안에 마련해 두신 텅 빈 자리에 드소서.
제 안에 숨겨진 당신의 생명을 드러내소서.

오늘, 죽음의 무덤을 비우시고 당신 사랑이 드러나는 생명을 살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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