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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세기(18) 노아 언약(言約)과 일반 은혜(恩惠) (창세9:1-17)
작성자김종업로마노 쪽지 캡슐 작성일2023-04-15 조회수318 추천수2 반대(0) 신고

 

노아의 방주

창세기(18) 2023. 4. 15.

 

노아 언약(言約)과 일반 은혜(恩惠)

 

(창세9:1-17)

1 하느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복을 내리시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워라. 2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할 것이다. 이것들이 너희의 손에 주어졌다. 3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이 너희의 양식이 될 것이다. 내가 전에 푸른 풀을 주었듯이, 이제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준다. 4 다만 생명 곧 피가 들어 있는 살코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

5 나는 너희 각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다. 나는 어떤 짐승에게나 그 책임을 물을 것이다. 남의 피를 흘린 사람에게 나는 사람의 생명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다. 6 사람의 피를 흘린 자 그자도 사람에 의해서 피를 흘려야 하리라. 하느님께서 당신 모습으로 사람을 만드셨기 때문이다.

7 너희는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라. 땅에 우글거리고 그곳에서 번성하여라.” 8 하느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말씀하셨다. 9 “이제 내가 너희와 너희 뒤에 오는 자손들과 내 계약을 세운다. 10 그리고 너희와 함께 있는 모든 생물, 곧 방주에서 나와, 너희와 함께 있는 새와 집짐승과 땅의 모든 들짐승과 내 계약을 세운다. 11 내가 너희와 내 계약을 세우니, 다시는 홍수로 모든 살덩어리들이 멸망하지 않고, 다시는 땅을 파멸시키는 홍수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12 하느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내가 미래의 모든 세대를 위하여, 나와 너희, 그리고 너희와 함께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우는 계약의 표징은 이것이다. 13 내가 무지개를 구름 사이에 둘 것이니, 이것이 나와 땅 사이에 세우는 계약의 표징이 될 것이다. 14 내가 땅 위로 구름을 모아들일 때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나타나면, 15 나는 나와 너희 사이에, 그리고 온갖 몸을 지닌 모든 생물 사이에 세워진 내 계약을 기억하고, 다시는 물이 홍수가 되어 모든 살덩어리들을 파멸 시키지 못하게 하겠다. 16 무지개가 구름 사이로 드러나면, 나는 그것을 보고 하느님과 땅 위에 사는, 온갖 몸을 지닌 모든 생물 사이에 세워진 영원한 계약을 기억하겠다.” 17 하느님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이 나와 땅 위에 사는 모든 살덩어리들 사이에 내가 세운 계약의 표징이다.”

 

하느님께서 노아 때의 세상을 심판하신 목적은 심판이 아니라 회복(回復)이었습니다. 그래서 노아 때의 세상을 심판하셨던 하느님은 회복하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제일 필요한 것은 회복입니다. 하느님께서 지금도 회복의 역사를 하고 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먼저 그리스도와 함께 옛 자아가 죽은 자를 통해서 하느님께서는 회복의 역사를 지금도 하고 계십니다. 또 하느님께서는 하느님 말씀의 절대성을 인정하고 하느님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자를 통해서 회복의 역사를 하고 계십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고 잡신들의 이름으로 기도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미국 국회 개원기도 때도 예수님의 이름이 아닌 잡신들의 이름으로 기도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의 절대성을 부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참된 회복의 역사가 있기 위해서 성경의 절대성을 인정하고 그 말씀에 절대 순종하며 살아가야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진정으로 하느님께 예배하는 자를 통해서 회복의 역사를 하고 계십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감사의 예배를 하는 자를 통해서 회복의 역사를 하십니다. 그래서 날마다 감사의 예배를 하느님께 드리는 모든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 용서의 예배를 하는 자를 통해서 하느님께서는 회복의 역사를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랬을 때 십자가 이후에 이 땅에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예배를 할 때 마다 하느님 우리들의 모든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또 하느님은 자신을 죽이는 예배를 드리는 자를 통해서 회복의 역사를 하고 계십니다. 예배는 번제의 제물과 함께 자신을 죽이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이 예배시간에 우리의 죽음의 향기가 하느님께 올라갈 때 하느님께서 이 땅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노아언약에 관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홍수가 끝나고 하느님께서는 노아와 언약을 세우십니다.

 

(창세9,8-10) 8 하느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말씀하셨다. 9 “이제 내가 너희와 너희 뒤에 오는 자손들과 내 계약을 세운다. 10 그리고 너희와 함께 있는 모든 생물, 곧 방주에서 나와, 너희와 함께 있는 새와 집짐승과 땅의 모든 들짐승과 내 계약을 세운다.

 

하느님께서 노아와 그의 모든 후손과 또 노아와 함께 방주에서 나온 모든 생물들에게 계약(언약)을 세우십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노아와 그의 모든 후손들과 모든 생물들에게 하신 계약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창세9,11-13) 11 내가 너희와 내 계약을 세우니, 다시는 홍수로 모든 살덩어리들이 멸망하지 않고, 다시는 땅을 파멸시키는 홍수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12 하느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내가 미래의 모든 세대를 위하여, 나와 너희, 그리고 너희와 함께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우는 계약의 표징은 이것이다. 13 내가 무지개를 구름 사이에 둘 것이니, 이것이 나와 땅 사이에 세우는 계약의 표징이 될 것이다.

 

하느님께서 노아에게 이 계약을 세우신 배경이 무엇입니까?

(창세6,5-6) 5 주님께서는 사람들의 악이 세상에 많아지고, 그들 마음의 모든 생각과 뜻이 언제나 악하기만 한 것을 보시고, 6 세상에 사람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하셨다.

 

하느님께서는 홍수 전에 사람들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세상을 심판하겠다고 하시고 심판하셨습니다. 홍수가 끝나고 난 다음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창세8,21) 21 주님께서 그 향내를 맡으시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셨다. ‘사람의 마음은 어려서부터 악한 뜻을 품기 마련 내가 다시는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으리라. 이번에 한 것처럼 다시는 어떤 생물도 파멸시키지 않으리라.

 

홍수가 끝이 나고 난 다음에도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바가 어려서 악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홍수의 심판이 있었어도 사람은 여전히 악합니다.

그러면 홍수 전에는 사람의 마음의 생각하고 계획하는 바가 악하기 때문에 심판하셨는데 왜 홍수 후에도 사람의 마음의 계획이 악함에도 불구하고 심판하지 않겠다고 하십니까? 지금의 세상이 노아 때의 세상보다 더 악합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노아 때와 같이 이 세상을 심판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현대인들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독일의 나치가 60만 명이나 되는 유대인을 죽였는데, 하느님이 왜 그들을 당장 심판하지 않았느냐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아프칸에서 이슬람에 의해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저렇게 많은데, 왜 하느님께서는 노아 때와 같이 심판하지 않으시느냐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사람들은 두 가지로 이야기를 합니다.

 

첫째는 노아홍수 이후에는 죄를 심판하시는 하느님께서 이제는 죄를 무조건 용납하시는 사랑의 하느님으로 변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야고1,17) 17 온갖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은사는 위에서 옵니다. 빛의 아버지에게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분께는 변화도 없고 변동에 따른 그림자도 없습니다.

 

노아 홍수 이후에도 하느님은 철저히 죄에 대해서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느님이십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모세가 하느님을 만나러 호렙산에 올라갔을 때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만일 이 산에 올라오면 내가 너희를 돌격하여 죽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신약성경에서 요한복음 316절에 나타난 하느님의 사랑을 잘못 오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세상의 죄를 묵인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으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만일 이 말씀이 하느님께서 죄를 묵인하시고 넘어가시는 사랑이라고 한다면, 이 말씀은 이렇게 바뀌어져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세상 사람들이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멸망하지 않고 그냥 뵈 주십니다.“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316절은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고 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독생자)을 내 주신 것은 하느님의 공의(公義)를 만족시켜 주기 위함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절대로 죄를 용납하시거나 묵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시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인류의 죄에 대한 심판을 하셔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 죄에 대한 대가(代價)를 하느님의 아들에게 돌리셨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십자가는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나타난 하느님의 사랑 이면에는 무시무시한 하느님의 공의(公義)가 깔려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분명히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나아갈 때 죄인의 모습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그 의()를 힘입어서만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히브10,19).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는 홍수 후에 죄를 용납하셨기 때문에 심판을 내리시지 아니하셨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느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철저한 공의의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은 죄는 결코 용납하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반드시 죄를 심판하셔야 하는 분이십니다.

 

두 번째로, 하느님께서 공의의 하느님이신 것은 인정합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홍수 후에 여전히 세상에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노아 때와 같은 심판을 하지 않으십니까? 이에 대해서 하느님은 지금도 여전히 공의로우신 분인데, 이제는 심판을 베풀만한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치 하느님께서는 뒷방 늙은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손자가 겁 없이 할아버지 수염을 당깁니다. 할아버지는 분명히 그것이 잘못된 것인 줄을 압니다. 손자가 수염 당기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네 이놈! 누가 할아버지 수염을 당기느냐!"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할아버지는 분명히 그것이 잘못인 줄 알고, 용납하지 않지만 그에게 벌을 내릴 기운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에 대해서도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는 홍수 후에도 여전히 공의로우신 분이시지만, 죄를 심판할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자유주의 신학자는 하느님에 대해서 '죽었다'라고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과연 어제 힘이 있으셨던 하느님께서 이제 힘이 없는 그런 분이십니까? 만일 하느님이 그런 분이라면 이 지구와 천체는 어떻게 유지되고 있겠습니까?

()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합니다. 또 하느님은 지금도 심판 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면 왜 홍수 후에도 인류가 여전히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지 않으시는가? 그 이유는 노아의 제사를 받으시고 하느님께서 노아와 세우신 계약 때문입니다.(창세9,11). 그래서 노아언약은 마치 임금님 면사포와 같습니다. 옛날에 백성들이 임금님의 얼굴을 감히 보지 못합니다. 임금님 얼굴을 보면 죽습니다. 그래서 임금님은 면사포와 같은 것을 가리고 백성들과 만나는 것과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 세상을 바로 보신다면, 이 세상은 하느님의 공의 때문에 당장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나는 다시는 물로써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써 놓고 세상을 대()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이 노아언약은 인간이 죄악 됨에도 불구하고 노아 때와 같은 심판이 당장 내려지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그런데 이렇게 불의한 세상에 대해 당장 심판하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이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불의한 이 세상이 창조 때와 같이 그대로 보존되는 것을 설명해 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노아언약보존의 언약이라고 합니다.

 

(2베드3,7) 7 지금(노아 홍수 이후)의 하늘과 땅도 불에 타 없어질 때까지 같은 말씀(노아언약의 말씀)으로 보존됩니다. 불경한 사람들이 심판을 받아 멸망하는 날까지만 유지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노아언약은 인간의 죄악 됨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생명이 계속해서 유지되고 보존되는 것을 설명해줍니다. 그래서 창세기 5장에 나타난 아담의 족보를 보면 계속해서 죽었다. 죽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창세기 9장에서 창세기10장부터 나오는 인간의 족보를 보면 계속해서 낳았다. 낳았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9장에 노아에게 세우신 계약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육신의 생명이 계속해서 주어지게 된 것은 그냥 자연적인 현상이 아닙니다. 또 인간에게 죄가 없기 때문도 아닙니다. 인간이 계속해서 죽지 않고 태어나게 된 것은 하느님께서 노아에게 세우신 계약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노아언약을 일반적인 은총, 또는 일반적인 은혜, 일반 은혜라고 합니다. 이것을 일반 은혜라고 하는 것은 특별 은혜인 구원의 은혜와 서로 대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아버지가 딸의 이름을 하느님의 은혜라고 지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육아일기를 적었습니다. “딸아 왜 너의 이름이 하느님의 은혜인줄 아느냐, 너는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태어날 수도 없었단다. 그런데 노아언약으로 말미암은 하느님의 은혜로 네가 태어났단다. 그래서 너의 생명은 하느님이 은혜로 주신 생명이다고 했다고 합니다.

왜 우리가 낙태를 반대합니까? 인간에게 주어진 생명은 단순히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모두 하느님의 일반적인 은혜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해가 뜨는 것도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노아언약으로 말미암은 하느님의 일반적인 은혜 때문입니다. 왜 하느님께서 이 땅에 비를 내려주십니까? 그 이유도 노아언약으로 말미암은 하느님의 일반적인 은혜 때문입니다.

우리가 쉼 쉴 수 있는 이 공기도 노아언약으로 말미암은 하느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그러면 노아언약으로 말미암은 일반적인 은혜는 믿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졌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믿든 믿지 않던 노아의 모든 자손들에게 주어졌습니다. 또 인간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살아 있는 모든 생물들에게 주어졌습니다.

 

(창세9,9-10) 9 “이제 내가 너희와 너희 뒤에 오는 자손들과 내 계약을 세운다. 10 그리고 너희와 함께 있는 모든 생물, 곧 방주에서 나와, 너희와 함께 있는 새와 집짐승과 땅의 모든 들짐승과 내 계약을 세운다.

예수님께서도 마태545절에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노아언약으로 말미암은 일반적인 은혜가 시간적으로 영원합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만일 노아언약으로 말미암은 일반적인 은혜가 시간적으로 영원하다면 이 세상에 하느님의 심판이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 의롭게 살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에 보면 노아언약으로 말미암은 일반적인 은혜가 언제까지라고 합니까?

 

(2베드3,6-7) 6 그때(노아홍수 때)의 세상은 홍수에 잠겨 물로 멸망하였습니다. 7 지금의 하늘과 땅(세상)도 불에 타 없어질 때까지 같은 말씀으로 보존됩니다. 불경한 사람들이 심판을 받아 멸망하는 날까지만 유지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노아언약으로 말미암은 일반적인 은혜는 최후의 심판의 날까지입니다. 또 개인적으로 보면 인간이 죽는 그 날까지입니다. 또한 노아언약으로 말미암은 일반적인 은혜는 시간적인 한계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기능상의 한계도 있습니다.

로마서 1장에 하느님의 일반적인 은혜가 모든 사람과 만물가운데서 나타났는데, 인간들은 어떻게 합니까?

 

(로마1,20-23) 20 세상이 창조된 때부터,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본성 곧 그분의 영원한 힘과 신성을 조물을 통하여 알아보고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변명할 수가 없습니다. 21 하느님을 알면서도 그분을 하느님으로 찬양하거나 그분께 감사를 드리기는커녕, 오히려 생각이 허망하게 되고 우둔한 마음이 어두워졌기 때문입니다. 22 그들은 지혜롭다고 자처하였지만 바보가 되었습니다. 23 그리고 불멸하시는 하느님의 영광을 썩어 없어질 인간과 날짐승과 네발짐승과 길짐승 같은 형상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세계 일류기업을 이룬 것은 모두 하느님의 일반적인 은혜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건희 회장 일주기를 맞이하여 부인과 아들 이재용 회장이 절을 찾아가서 감사의 표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또 우리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은혜를 받고도 우상을 섬기고 있는 세상 사람들에게 왜 일반적인 은혜를 주시는가? 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단 사람이라도 복음을 듣고 구원을 얻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만일 노아언약으로 말미암은 하느님의 일반적인 은혜가 없으면 이 땅에 더 이상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일반적인 은혜로 우리를 살려주시는 것은 단순히 우리가 이 땅에서만 잘 먹고 잘 살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구원의 복음을 듣고 구원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특별한 하느님의 은혜는 바로 구원의 은혜입니다. 일반적인 은혜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받은 은혜입니다. 심지어 동물과 식물들도 다 하느님의 일반적인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구원의 은혜는 일반적인 은혜와는 달리 특별한 은혜입니다. 이 구원의 은혜는 모든 사람들이 다 받을 수 있는 은혜가 아닙니다. 창세(創世) 전부터 하느님의 사랑으로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만 받을 수 있는 은혜(恩惠)입니다.

그래서 이건희 회장이 복을 많이 받았습니까? 우리가 복을 더 많이 받았습니까? 일반적인 은혜는 이건희 회장이 더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복은 죽음으로 끝이 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주어진 이 특별한 구원의 은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도 우리는 하느님의 특별한 은혜가운데서 구원의 은혜와 돌보심의 은혜를 받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 영원한 세상에서 하느님의 심판을 받지 않고, 영원히 주님과 사는 은혜를 받습니다.

우리가 이건희 회장보다 우리가 더 큰 복을 받았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는 성도들이 됩시다.

예수님은 언제오시며 이 지구의 종말과 심판은 언제 옵니까? 예수님은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르고 하느님만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마태복음 2414절에서 이 하늘나라의 복음이 온 세상에 선포되어 모든 민족들이 그것을 듣게 될 터인데, 그때에야 끝이 올 것이다.” 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천국복음이 땅 끝까지 다 증거가 되면 그때 반드시 이 세상의 끝이 오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노아언약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노아언약을 통해서 우리에게 자연과 생명을 보존할 사명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3절을 보면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이 너희의 양식이 될 것이다. 내가 전에 푸른 풀(채소)을 주었듯이, 이제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준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노아홍수 전에는 자연환경이 좋아서 인간이 채소만 먹어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노아홍수 이후에는 자연환경이 좋지 않아서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육식을 허락하십니다.

그런데 4절과 5절을 보면 4 “다만 생명 곧 피가 들어 있는 살코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 5 나는 너희 각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다. 나는 어떤 짐승에게나 그 책임을 물을 것이다. 남의 피를 흘린 사람에게 나는 사람의 생명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육식을 하지만 함부로 동물의 생명도 헤치지 말라고 하십니다. 또 사람의 생명도 헤치지 말라고 하십니다. 동물의 생명과 인간의 생명이 모두 하느님의 일반적인 은혜로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일반적인 은혜로 생명과 자연을 보존함과 같이 우리도 이 땅의 생명과 자연을 보존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자연을 보호해야할 사명이 있습니다. 자연을 보호할 사명은 믿는 사람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모든 자연이 하느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을 알기에 더 자연을 보존해야합니다.

왜 코로나가 생겼습니까? 인간이 박쥐와 같은 아무 것이나 다 죽이고 먹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노아언약을 생각하면서 산책(散策)을 하면서 할 수 있으면 쓰레기를 주우려고 합니다. 어떤 교우는 길거리에서 쓰레기를 줍고 그것을 사진으로 찍는 운동을 한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연이 다 하느님의 은혜로 주신 줄로 여기고 누구보다 더 자연과 생명을 사랑하는 모든 성도들이 됩시다.

 

2)노아언약을 통해서 우리가 생명이 있는 한 복음을 전해야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왜 노아 때보다 더 악한 이 세상을 왜 당장 심판하지 않으십니까?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느님께서 이 땅의 사람들에게 아직 생명을 유지시키시고 보존하느냐? 살아있는 동안 예수 믿고 구원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왜 하느님께서 어떤 이에게 사업의 복을 주시는 것은 단순히 인간적으로 잘 살고 잘 먹게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 사업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위드코로나가 되면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복음을 다시 증거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3)노아언약을 통해서 우리가 감정대로 살지 말로 말씀대로 살아야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노아언약을 보면 하느님께서는 절대 감정대로 하지 않으시고 말씀대로 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어린아이가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러면 엄마가 매를 들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말을 듣지 않아서 매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엄마는 아이에게 약속합니다. 아이야 절대 매를 들지 않겠다 이제 너에게 말로 타이르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엄마는 감정이 폭발하면 다시 매를 듭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절대 그렇게 하시지 않습니다. 만일 하느님께서 감정대로 하신다면 우리 인류는 당장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지금도 지구에 날아드는 큰 유성하나 궤도를 바꾸시면 지금이라도 당장 이 세상을 심판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하시지 않으실까요? 노아에게 세우신 계약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절대 감정대로 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은 감정보다 말씀대로 하십니다. 우리들도 감정대로 살지 말고 말씀대로 살아야합니다.

낙심하고 싶어도 말씀대로 희망을 가지고, 분노하고 싶어도 말씀대로 참고 살고, 미워하고 싶어도 말씀대로 끝까지 사랑하며 살아갑시다.

  

 

1월30일 - 기독교영화보기 "노아의 방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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