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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3.04.30)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3-04-30 조회수660 추천수5 반대(0) 신고

 

2023년 4월 30일 부활 제4주일

복음 요한 10,1-1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는 자는 도둑이며 강도다.

2 그러나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들의 목자다.

3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4 이렇게 자기 양들을 모두 밖으로

이끌어 낸 다음, 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

5 그러나 낯선 사람은 따르지 않고

오히려 피해 달아난다.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에게 이야기하시는 것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하였다.

7 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

8 나보다 먼저 온 자들은

모두 도둑이며 강도다. 그래서 양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9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10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올 뿐이다.

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성당에서 나와 마트까지 걸어가는

길에는 몇 개의 신호등이 있습니다.

이 신호등 때문에 약간의 불편을

겪기도 합니다. 차가 전혀 없는데도

신호를 한참 기다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몇몇 사람이 그새를 참지 못하고

눈치 보며 건너가는 것입니다.

누가 하면 나도 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저 역시 급한 마음에 그분을 따라서

무단 횡단을 하려고 한 발을 내딛는 순간,

갑자기 커다란 경적이 울립니다.

진행 신호를 보고 멀리서부터 속도를

높여서 차 한 대가 달려온 것입니다.

진짜 위험했습니다.

몇 초 빨리 건너가려다가 정말 빨리

하느님 나라에 갈 뻔했습니다.

적색 신호등은 분명히 정지 신호입니다.

당연히 멈춰야 합니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질서가 제대로

잡히지 않고 커다란 혼란이 다가옵니다.

문득 우리 삶도 그렇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즉, 우리 삶 안에서도 잠시 멈춰야

할 때가 있습니다. 특히 옳지 못한

길일 때에는 멈춰야 합니다.

그러나 눈치 보면서 멈추지 않고

앞으로만 가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요?

남들도 다 그렇게 한다면서 말이지요.

또 그 멈춤의 시간이 고통스럽다면서

그냥 앞으로만 가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적색 신호도 어느 순간에는

녹색 신호로 바뀝니다.

영원히 적색 신호만 있는

신호등이 없는 것처럼,

고통과 시련으로 멈출 수밖에 없는

그 순간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녹색 신호로 바뀌어서 다시 힘차게

나아가는 때가 분명히 옵니다.

그래서 기다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라는 멈춤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십자가 죽음으로

완전히 멈췄을까요? 아니었습니다.

부활이라는 녹색 신호로 우리에게

큰 희망을 주셨습니다.

따라서 세상의 모습을 따르는 것이 아닌,

주님의 모범을 따라야 합니다.

주님 안에서만 희망을 간직할 수 있으며,

지혜롭게 지금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주님께만 희망을 둘 수 있음을

오늘 복음을 통해 분명히 말씀해주십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양 우리에 들어가는

두 부류의 사람을 비교합니다.

하나는 양들의 목자이고,

문이 아닌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는

도둑이며 강도입니다.

도둑, 강도는 어떤 사람일까요?

성경에서는 유다 이스카리옷을

‘도둑’이라고 했고(요한 12,6)

예수님 대신 사면받은 바라빠는

‘강도’라고 했으며(요한 18,40)

성전을 정화하시면서 장사치들을

‘강도’라고 하셨습니다. 즉, 도둑,

강도는 모두 하느님 이름 밑에서

탐욕을 추구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가신다고 합니다.

이렇게 이름 붙여 부르는 당시

양치기 생활의 관습이었지요.

그만큼 양들을 소중하게

다루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런 사랑을 받은 양이

목자의 목소리를 외면할까요?

어떤 상황에서도 그 목소리를 알아듣고

모든 것을 내맡기고 우직하게 따라갑니다.

그러나 낯선 사람의 목소리를 들리면

산산이 흩어집니다. 우리는 과연

목자를 충실하게 따르는 양의 모습을

취하고 있을까요? 혹시 자신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탐욕을 추구하는

도둑과 강도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주님께서는 당신을 또 양들의 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을 통해서만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착한 목자이신 주님의 목소리를

따를 수 있는 충실한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성소주일인 오늘, 우리를 부르심을

묵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어떻게 말할까'하고 괴로울 때는

진실을 말하라(마크 트웨인)

(오늘은 성소주일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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