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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3.05.01)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3-05-01 조회수720 추천수4 반대(1) 신고

 

2023년 5월 1일

부화 제4주간 월요일

복음 요한 10,11-18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1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고

양도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는 양들을 물어 가고

양 떼를 흩어 버린다.

13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14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15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16 그러나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

17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

18 아무도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지 못한다.

내가 스스로 그것을 내놓는 것이다.

나는 목숨을 내놓을 권한도 있고

그것을 다시 얻을 권한도 있다.

이것이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명령이다.” 


국가의 한 연구소에서 일하던

공학도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수도원에 입회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수사의 능력을 수도회에서

잘 살려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수사가 수도회에서는

하는 일은 소위 ‘막노가다’였습니다.

힘쓰는 일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사람이 자기 능력과는

전혀 상관없는 막노가다

일만 하는 것입니다. 이 수사의

부모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왜 잘하는 일을 시키지 않고,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소임으로

아들의 훌륭한 재능을 수도회에서

썩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원장 수사님께 이점을

항의했습니다. 이에 원장 수사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세상에는 이성과 상식으로 이해되기

힘든 일들이 있습니다.

신앙만이 이를 깨닫게 해줍니다.

예수님께서 왜 자신이 가난한 이가

되기를 바라셨을까요?

왜 신성과 권능을 감추고

우리 가운데 그것도 가장 끝자리를

차지하며 살고 싶어 하셨을까요?

생명 자체이신 그분에게 십자가행,

골고타의 수난, 죽음의 치욕이

뭔 말입니까? 교회에서 필요한 사람은

공학도가 아니라, 있는 자리에서

썩을 수 있는 밀알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큰 공감이 가는 말씀이었습니다.

세상의 능력이 아닌 하느님의 능력으로

하느님의 일을 해야 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자기 능력을 살려서

일하는 것을 주님께서 과연 원하실까요?

오히려 자기 능력을 감추고 하느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모습을

더 원하실 것입니다.

이런 겸손만이 주님을 제대로 닮고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나는 착한 목자다’(요한 10,11)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 복음에서는

‘나는 문이다.’, ‘나는 착한 목자다’

라는 식으로 ‘나는 ~이다.’라는

표현이 모두 7번 등장합니다.

이는 주님의 신성을 사람들의 생명과

관련지어 말씀하시는 표현입니다.

즉, 주님께서는 사람들의 생명을 지키는 분,

특별히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을

‘착한 목자’로 말씀하시면서,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고

하십니다. 이는 실제로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확인되었지요. 그리고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요한 10,14)라고 하십니다.

이는 단순한 지적인 인지를 넘어

서로 마음이 통하여 마음의 일치를

이루는 친교를 말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무엇이든 바치는

사랑의 희생을 하는

상호 관계를 말합니다.

목자이신 주님의 겸손한

사랑을 알게 된 사람은

마찬가지로 주님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사랑을 겸손한 마음으로

봉헌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려고 합니다.

생명을 주시는 주님과 함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겸손을 묵상해야 합니다.

자기 영광이 아닌, 주님 영광을

드러내는 삶, 주님과 진정으로

하나되는 삶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다는 건

새로운 일을 전혀 시도하고

있지 않다는 신호다(우디 앨런)

(오늘은 노동자 요셉 축일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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