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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 영근 신부님의 복음 묵상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3-05-07 조회수593 추천수2 반대(0) 신고

230507. 부활 제5주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

 
‘인생행로’ 혹은 ‘인생여로’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여로’라는 텔레비전 드라마가 대단한 인기를 얻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인생이 ‘나그네 길’임을 말해줍니다.
 
인생이 ‘나그네살이’라는 말은 우리가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길을 걷는 이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어떤 길을 걷고 있느냐?’ 곧 ‘참된 길을 걷고 있느냐?’ 그래서 물어야 합니다. 내가 걷는 길은 참된 길인가? 또한 중요한 것은 그 길을 어떤 마음으로 걷는가? 입니다.
 
간혹 길을 걸어가다 보면 묻는 이들이 있습니다. “도(길)를 아십니까?” “참된 길을 아십니까?” 오늘 우리는 이 물음을 우리 자신에게 던져봅니다. 
 
오늘 <말씀전례>는 우리에게 올바른 길을 보여주시고, 무엇이 참 된 삶인지를 깨우쳐줍니다.
 
<제1독서>에서는 초대교회에서 일곱 부제를 뽑는 과정을 통해,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가는 ‘믿음의 길’을 제시해주며, <제2독서>에서는 믿고 주님께 나아가는 이들, 곧 그분의 소유가 되는 백성에 대해 말해줍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이 지상을 떠나시기 전에 제자들에 하신 <고별사>의 시작부분입니다. 곧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시는 유언 말씀입니다. 유언이란 남는 이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가장 귀중한 가르침이라는 하겠습니다. 이 귀중한 예수님의 유언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요한 14,1)

그러니 먼저 물어야 합니다. 나는 하느님과 예수님을 믿고 있는가? 내가 믿고 있는 하느님과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자신이 참 하느님이심을 믿고서,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요한 14,1)고 하십니다. 장차 당신이 제자들 곁을 떠난다하여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히십니다. 곧 당신이 가시는 곳이 어디인지, 그곳에 어떠한 지, 그리고 그곳을 왜 가시는지를 밝히십니다. 그거은 당신께서 먼저 ‘아버지 집’ 가시어 ‘우리를 위한 자리’를 마련하시고, ‘우리와 함께 있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비로 이 세상이 ‘나그네살이’이지만 궁극에서 ‘이별이란 없다.’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벅찬 유언 말씀입니다.
 
“내 아버지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겠다.”(요한 14,2-3)

여기서, “거처”(μονη)는 ‘미련해(정해진) 둔’, ‘예비 된’이란 의미로, <요한묵시록>에서는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21,2)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 그분과 함께 거처할 자리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요즈음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거의 매일 ‘시노달리따스’에 대해 말씀하신다고 합니다. 바로 이 길을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분명 우리는 ‘길 위에 있는 교회’(ecclesia viatrix)입니다. ‘함께 걷는 길’의 ‘여정’을 갑니다. 믿음과 사랑과 희망으로 ‘함께 가야 하는 길’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알려주시지만, 알아듣지 못하는 토마스와 필립보에게 예수님께서는 알려주어도 알아듣지 못하고, 보았으면서도 보지 못함은 믿지 않는 까닭임을 깨우쳐 주십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요한 14,11)
 
그렇습니다. 참으로 믿음이 ‘도’입니다. ‘도’는 진리를 ‘아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진리를 ‘믿는 데’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 ‘믿음의 길’이 ‘참된 길’ 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
 
사실, 당신께서 “길”이라는 이 말씀은 황당하고 당혹스런 발언이요, 혁명적인 발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길”의 표상은 본디 이집트 탈출의 상징이요, 해방의 길을 표상했으며, 점차 주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영원한 보상을 위해 제시하는 삶의 방향을 가리켜주는 “율법”에 적용에 적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길”이라고 선언함으로써, “길”의 의미가 ‘율법’에서 ‘예수님의 인격’으로 옮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진리란 무엇이오.?”(요한 18,38)라는 빌라도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이론이나 이념, 혹은 진리에 대한 개념으로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신께서는 모든 교리나 이념을 초원하는 진리를 증언하셨습니다. 곧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살아있는 인격적인 진리를 증언하셨습니다. 바로 당신 자신 스스로를 두고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라고 증언하신 것입니다.
 
당신이 “진리”(áληθεια)라 함은 원어의 뜻이 ‘감추어진 보물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하듯이, 예수님께서는 성부를 완전히 드러내 보여주시는 분이심을 드러내며, “생명”이라 함은 당신은 단순히 구원에 인도하는 분이 아니라, 당신 자체가 구원의 원천인 살아있는 생명이심을 말해줍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지금 우리와 함께 살아있는 인격적인 진리를 증언하십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진리를 알고자 하면서도, 막상 그 진리를 따르고자 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진리를 아는 것은 우리의 지적 호기심과 만족과 허영심을 채워주지만, 그 진리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버리는 데는 믿음이 따릅니다. 그렇게 믿는 바를 따라 몸소 살 때라야 자유는 옵니다.
 
그렇습니다. 진리는 알게 될 때가 아니라, 그 진리를 믿음으로 따를 때 자유롭습니다. 곧 예수님의 인격을 받아들이고 지금 여기에 인격으로 살아계시는 진리이신 생명을 믿고 받아들여 함께 살아가는 데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약속하십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요한 14,12)
 
오늘, 여러분이 하는 일에 그리스도의 권능이 이루어지도록 믿음으로 실행하는 일이 되길 바랍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요한 14,1)
 
주님!
마음이 산란해지지 않게 하소서.
당신을 믿고 아버지를 믿게 하소서,
알면서도 안다는 사실을 모르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믿고 의탁하게 하소서. 제 자신이 아니라, 당신을 믿고 당신께 의탁하게 하소서. 

당신의 사랑을 믿고 그 믿음 안에서 당신의 한결같은 사랑을 알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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